<다만악>은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올 여름 빅3 중에 평가도 괜찮은 편이고 흥행 성적도 가장 좋지만, 저는 뭔가 그 이상의 재평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아수라>나 <불한당> 같은 팬덤이 생기진 않을까 기대도 했었구요. (물론 흥행에 실패한 두 작품과 다르게 이건 충분히 성공했죠ㅋㅋ)
저는 이게 흔히 인터넷에서 가볍게 쓰이는 표현대로 '기대 안하면 볼만함', 'OO보단 볼만함', '킬링 타임용' 정도에 그치지 않고, 정말 훌륭한 장르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야기의 측면부터 살펴보면, 어두운 과거로부터의 죄의식에 얽매여 피폐해진 주인공, 피로 점철된 현실과 대비되는 막연한 이상향, 강렬한 동기를 부여하는 존재 (주로 여자아이),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악역 (들) ... 모두 클리셰입니다.
신선한 각본은 전혀 아니지만, 달리 말하면 장르의 클리셰에 안정적으로 탑승해 승차감이 꽤 괜찮은 영화죠. 주인공 황정민의 드라마는 이해하기 쉽고, 악역 이정재는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긋는 영화니까요ㅋㅋ
물론 안정적이기만 해선 안되겠죠. 저런 장르의 관습에 올라탔다는 것은 다른 볼거리나 재미로 정신없이 내달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정체성을 확립할 만한 차별화 지점이 있어야 할텐데, 저는 다만악의 여러 요소들, 홍경표의 경이로운 촬영, 모그의 의뭉스럽고 긴장감 넘치는 음악,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두 뭉뚱그린 '스타일'이라고 하고 싶네요.
무엇보다 영화를 통째로 좌지우지한 것은 단연 홍경표 촬영감독이었습니다. 다양한 색감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창조하는데, 영화 내내 조명 또는 자연광을 쓰는 방식이 참 좋았습니다. 특히 햇빛이 황정민 배우를 비추는 몇몇 장면은 정말 예술의 경지였어요.
두루 호평을 받는 액션까지 홍경표의 기여가 컸다고 할 수 있겠죠. 영화에서 몇차례 벌어진 수 차례의 액션 장면마다 다양한 구도와 각도로 인물의 움직임을 또렷하게, 하지만 간지나게 잡아줍니다.
그리고 그런 스타일을 받아들여 체화하고 관객들이 몰입할 자리를 마련한 것은 배우들의 몫입니다.
삶의 방향을 잃은, 황폐한 내면의 '인남'을 연기한 황정민 배우는 영화의 내면 연기를 혼자 도맡아 하는 수준인데, 극중 유이의 말마따나 'ㅈ같은 눈빛'으로 백 마디 대사보다 많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유독 어눌하고 느리게 대사를 치는 것마저도 이 인물의 오랜 해외 체류 생활,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툰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봤습니다.
황정민 배우의 내면 연기가 영화의 전반부 드라마를 책임진다면, 후반부를 책임지는 것은 박소이 배우의 말 없는 존재감입니다. 솔직히 두 배우가 함께 있었던 장면의 연출과 대사 자체는 딱히 좋았다고 하기 힘들고, 이들 사이에서 드라마가 축적되는 과정도 그렇게 길지는 않았죠. 그럼에도 제게 <다만악>의 엔딩이 제법 뭉클하게 와 닿은 이유는, 상당 부분 이 배우의 엄청난 얼굴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배우를 묘사할 때 종종 쓰는 표현 중에 '사연 있는 얼굴'이라는 게 있습니다. 구체적 상황도, 대사도 없이 그 존재 자체로 드라마가 형성되고, 관객들을 자기 편으로 사로잡을 수 있는 얼굴이죠. 이 아역배우는 웬만한 기성 연기자들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사연 있는 얼굴을 타고났습니다.
여담이지만 이후 개봉한 <담보>도 좋지 않은 수준의 각본을 갖고도 박소이 배우의 얼굴을 만능키마냥 적극적으로 활용해 성공한 케이스로 봅니다.
이정재 배우의 쓰임새는 조금 쉽고 편한 감이 있지만 역시 잘 어울렸죠. 딱히 서사가 있는 '인물'이라기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이닥치는 재앙 같은 존재인 '레이'를 잘 소화했습니다.
올해 한국 상업영화 최고의 씬스틸러로 꼽힐 만한 '유이' 역의 박정민 배우는 확실히 약방의 감초 같은 배우입니다. 시종일관 어둡고 심각하고 폭력적인 영화에서 굉장히 이질적인 설정으로 등장해, 적당한 유쾌함으로 분위기를 환기하고 산발적으로 웃음을 주면서도 전체적인 영화의 톤을 해치지 않았죠.
웬만한 블록버스터라면 위 같은 쓰임새의 감초 캐릭터가 한둘씩은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의 박정민을 보면서 그런 유형의 캐릭터로서 새로운 완성태를 제시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용적으로 뭔가 특별한 게 있지 않더라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영화가 있고, 제게는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좋은 이야기라고는 할수 없지만 참 공들여서 잘 만들었고 장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다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는 다만악이 한국 액션의 역사에서 손에 꼽을 위치에 오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볼품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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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설명할 필요없는 드라마에 대체 왜 개연성을 걸고 넘어지는건지.. 근접액션은 진짜 역대급이라고 생각해요. 그 미친 카메라 액션이.. 단연코 수작 반열에 드는 액션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정재는 겉도는 인물이 되버렸네요..
그로인해 뒷심이 좀 약했다고 봅니다
저야 다시 봐서 좋았지만, 추가 개봉까지 한 의미는 딱히 없었던 편집본 같습니다.
다 좋았는데
주인공들 액션 능력이 너무 마블히어로급이라..''
그것만 좀 과하게 안했으면 저도 참 좋아했겠는데..
액션영화 주인공이 다 그렇지 하기엔 너무 심했어요 ㅠㅠ
그냥 경찰들 수를 조금만 줄이고 총알 수좀 줄였으면 어땠을까요..
그냥 몇명이 쏘는것도 아니고 전쟁이나 다름없는 총알빗속에서 너무 여유롭게 차로 돌진하고 ㅠㅠㅠ
(잘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고개도 제대로 안 숙이고 막 운전했던걸로 기억)
너무 심해서 어이가 없어서 저한텐 감점 50% ㅠㅠㅠ
진짜 개인적으론 너무 좋았어요
몇몇 히어로처럼 묘사되는...? 부분은 영화적 설정이란거 감안하면 그냥 넘길만하고
기승전결 완벽하고 여운은 남지만 찝찝함은 없다고 느꼈네요
어제 파이널컷 보고 왔는데 파이널컷도 괜찮더라구요.
몇몇 추가된 장면들이 꽤 인상깊었고 영화 분위기도 해치지 않아서 저에겐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