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에덴] - 예술가라는 존재의 보편적 초상(약스포)
아마도 [마틴 에덴]에 대해 국내 시네필에게 가장 크게 어필이 된 지점은 봉준호 감독의 극찬을 받았다는 보도일 겁니다. 다만 그 내용의 원전인 BFI의 월간지 '사이트 앤 사운드'의 올 3월호 속 기사를 자세히 톺아보면, 해당 기사는 봉준호 감독이 앞으로 20년 간 주목해야 할 기대주 20명의 감독을 선정한 리스트였고 바이라인에는 그 달 객원 에디터로 참여한 봉 감독과 기존 '사이트 앤 사운드' 에디터들이 올라있습니다. 여기에 [마틴 에덴]의 감독인 피에트로 마르첼로가 포함된 것인데, 원문을 읽어본 제 입장에서는 기실 이 기사에서 [마틴 에덴]을 두고 내린 '지난 10년 간 최고의 작품 중 하나(one of the best films of the last decade)'라는 평가는 꼭 봉 감독 개인의 직접적인 워딩을 통한 평가라기보다는 '사이트 앤 사운드'라는 매체 필진들의 종합적인 의견으로 보입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마틴 에덴]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을 이유가 굳이 반드시 '봉준호 감독의 추천'일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자칫 우리 세대의 거장의 극찬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의 시야가 제한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틴 에덴]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제일 성공적이었던 사회주의 성향의 작가 잭 런던이 1909년에 출간한 동명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영화는 명확히 서술하지는 않고 있으나 추정컨대 시간적 배경을 1920~30년대로 옮겨온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와 이 영화가 제작된 이탈리아라는 공간의 역사적 맥락이 서로 조응하는 시기를 맞추려는 의도였다고 생각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주의의 물결이 점차 거세지면서 개인주의 내지는 자유주의가 설 자리가 좁아지던 혼란상의 시대에 '마틴 에덴'이라는 예술가의 행로를 수놓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작 소설이 출간된 1909년의 20세기 초반은 인류가 아직 전체주의가 어떤 끔찍한 파국을 가져다줄 것인지를 경험하지 못했을 때입니다. 영화 [마틴 에덴]이 그리고 있는 20세기 중엽은 그 전체주의의 악령이 제대로 발호하기 직전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감상했거나 또는 곧 감상할 2020년의 관객들은 대부분 이미 무슨 결말에 도달했는지를 역사적 사실로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이 원작 소설의 시간대를 소거하다 못해 타임라인이 붕 떠 보이는 듯한 영화를 지금 시점의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던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도출해낸 결론은 이렇습니다. '마틴 에덴'의 이야기에서 시대를 초월하면서 유효한 메시지를 발굴해냈고 이를 전달하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수퍼 16mm 촬영이나 푸티지 활용법 등에서 엿보이는 고전적 스타일에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등 특정 시대의 향취를 콕 집어 느낄 수 있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제게는 이마저도 영화의 시대적 위치를 모호하게 만드는 의도의 산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마르첼로 감독은 관객이 '마틴 에덴'의 서사를 시대적 보편성을 부여한 채 받아들이기를 원했던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보편성'이야말로 [마틴 에덴]이 획득한 제일 가치있는 속성이라고 믿습니다.
아직 영화를 감상하지 못한 분들을 위한 글이니만큼,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주인공의 행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나 최대한 제 논지를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까지만 일정 수준의 스포일러를 각오하고서 말씀드리자면, [마틴 에덴]은 교육을 받지 못해 문화적 소양을 전혀 쌓지 못했던 빈민 출신의 '마틴 에덴'이 우연찮게 상류층 여성 '엘레나(원작 소설의 경우 '루스')'를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그 사람과 문학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열정과 재능은 충분했으나 그가 빈민의 삶을 토대로 쓴 글들은 번번이 반려당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이후 등단에 성공하여 돈을 버는 직업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이데올로기적 혼란상의 시대에서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위치를 고수하려 번민하던 가운데 결국 '엘레나'와의 사이에서 계급적 간극으로 인한 파열음이 극에 달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 그와 결별하고 맙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훗날 작가로서 아주 큰 성공을 거둔 '마틴 에덴'의 말년의 이야기로, 유명세를 얻은 작가가 권태와 환멸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온갖 상황에 마주친 끝에 쓸쓸한 결말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런 줄거리 속에서 '마틴 에덴'이 줄곧 고수하던 특성은 자신의 개인주의적 세계관 내지는 가치체계에 대한 것에서만큼은 타협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 양태가 가장 순수하게 개인주의 혹은 자유분방함(저는 이 쪽 표현을 더 선호합니다)에 가까운 예술가의 자세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세는 제도권 교육 바깥에서부터 시작하여 일가를 이루는 데 성공한 케이스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혹은 적용되어야 하는 특질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작가'가 아니라 '예술가'라 지칭한 것도 이는 모든 예술 영역에 보편적으로 해당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본다면,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이 '예술가'라는 존재의 '이데아'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서 '마틴 에덴'을 육화시킨 것이라고도 말하더라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술가의 보편적인 이데아의 현현을 앞서 언급한대로 시대적 보편성을 수반한 매개체를 통해 표현한 것이 영화 [마틴 에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가 올해 우리가 스크린에서 관람할 수 있는 영화들 가운데 가장 빛나는 작품 중 하나로서 거론됨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LinusBlan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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