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 래치드] 시즌 1 간략후기 + 비교체험 악 대 악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래치드> 시즌 1을 보았습니다.
드라마의 타이틀롤인 '밀드러드 래치드'(사라 폴슨)는 1975년작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등장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캐릭터로, 미국 영화 연구소가 선정한 '영화 사상 최고의 악당' 5위에 들기도 한 인물입니다.
'정신병원의 간호사'라는 인물이 어째서 이토록 전설적인 악역 캐릭터로 언급이 되는지 궁금하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래치드>는 그 인물이 어떻게 사회에 스며들어 자신의 역할을 갖게 되었고 그 역할 안에서
자신만의 악마적인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들여다 보는 듯 해 흥미로웠습니다.
이야기는 래치드가 '루시아 주립 정신병원'에 취직하면서 시작됩니다.
취직 과정부터가 범상치 않은 래치드의 취직 시점은 공교롭게도 장안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된 시점과 겹치는데, 래치드의 병원 근무에는 뭔가 계획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직후, 인간 존엄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정신질환을 지닌 이들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로 야만적이었던, 그리하여 질병과 혼란이 가득했던
정신병원에서 예측대로 되는 계획은 좀처럼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야기는 예측불허로 흐릅니다.
빈틈과 그에 따른 당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래치드의 첫인상은 시청자의 태도에 중요한 영향을 줍니다.
래치드는 '우수한 간호사'라는 목표한 역할에 충실히 임하면서도 자신만의 계획을 냉철하게 실행해 나가는데,
그러다 보니 래치드의 지금 태도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의도된 것인지 우연한 것인지 계속 의심하게 됩니다.
살인마 에드먼드 털리슨(핀 위트록) 등 정신병원의 환자들은 물론 원장 하노버 박사(존 존 브라이언스),
수간호사 벳시 버킷(주디 데이비스) 등 병원 구성원들과 주변인물들까지도 그 속을 알기가 힘들기도 하고요.
이쯤 되면 단련될 대로 단련됐다고 생각한 래치드가 전후 혼란에 휩싸인 미국 사회에서 겪는 생존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문제는 그 주인공인 래치드가 생존의 방식으로 '악'을 선택했다는 점에 있겠지만 말이죠.
래치드는 밖으로는 '자비의 천사'라고 불릴 만큼 옳은 방향을 추구하려 애쓰는 간호사의 모습을 하지만
한번 목표로 삼은 자는 철저하고 치밀하게 파괴시키고, 그 과정에 당위성을 부여하며 공동체를 설득시키니다.
이처럼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득히 영화 속 세계에만 존재하는 요란스럽고 유별난 악이 아니라
탐욕에 휩싸인 숱한 사회와 제도 속에 숨쉬고 있을, '평범한 악'을 응축한 얼굴인 것만 같아 더 무서웠습니다.
악역에 구구절절 서사를 부여하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래치드의 서사는
세계에 교묘하게 스며든 악의 모습으로써 연구하고 해부해 볼 만한 명분을 제공하는 좋은 재료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흥미는 래치드 역의 사라 폴슨이 보여주는, 시청자도 초면에 무릎 꿇게 하는 강력한 연기 덕이 큽니다.
의외로 래치드만의 독무대가 아니어서 살인마 털리슨 역의 핀 위트록, 수간호사 버킷 역의 주디 데이비스,
원장 하노버 박사 역의 존 존 브라이언스, 주지사 공보 담당 브릭스 역의 신시아 닉슨, 오스굿 부인 역의 샤론 스톤,
샬럿 웰스 역의 소피 오코네도 등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개성의 배우들이 신경 곤두서게 하는 열연을 보여줍니다.
<래치드>는 하나같이 멘탈이 불안정한 인물들과 그에 대비되는 지극히 질서정연한 비주얼이 대비를 이루며,
시청자로 하여금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한 인물들의 의식 세계에 기묘하게 빠져들도록 만듭니다.
1950년대로 들어서는 미국의 시대적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면서도 그에 괴리되게 날뛰는 인물들의 정신 세계는
향후 일어날 래치드의 세계, 미국 사회 속 더 큰 카오스를 예고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더욱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로 걸어들어 갈 다음 시즌 이야기가 무척 기대됩니다.
+ '비교체험 악 대 악(?)'
래치드를 보면서 이 인물과 견줄 만한 다른 캐릭터가 계속 생각났는데, 바로 <SKY캐슬>의 김주영(김서형)이 떠올랐습니다.
(JTBC 드라마이지만 넷플릭스에서도 현재 서비스 중입니다.)
인간의 어떤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위치에 있다는 점, 그러나 그 '솔루션'을 빌미로 인간을 철저히 파괴할 수 있다는 점,
그 파괴 행위에 기가 막힌 당위성을 부여함으로써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
자신의 진짜 감정을 절대 남들 앞에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 등 여러 부분에서 이 인물이 겹쳐 보였습니다.
미국 드라마도 아니고 한국의 현실을 다소 극단적으로 반영한 한국 드라마에서 비슷한 인물을 발견했다는 점도 새삼 섬뜩하네요.
배우들 정말 좋은 드라마였어요.
스카이캐슬 김서형.. 느낌 정말 비슷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