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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화 (1958) 신상옥 감독의 진짜 느와르

Bill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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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옥화같은 영화만 계속 만들었다면 예술영화 감독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겠지. 하지만 대중들이 과연 날 지지해주었을까?" - 신상옥  

 

한국형 느와르니 홍콩 느와르니 하는 지저분한 수식어 말고 진짜 정통 느와르가 바로 이 영화 지옥화다. 이중배상이니 선셋대로니 그들은 밤에 산다니 하는 필름 느와르들 말이다. 시대도 느와르가 만들어지던 시기 맞다. 이 영화가 만일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면 두 말 없이 필름 느와르 우수작 목록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많이 감상되었을 것이다. 필름 느와르 대표작이 아니라 우수작만 되어도 전세계적으로 대접이 대단하다. 이 영화 지옥화는, 불멸의 걸작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필름 느와르의 우수작에 꼽히는 영화들보다 못하지 않다. 

 

극히 암울하고 어두운 사회 묘사, 비정한 사람들, 살인, 에로티시즘, 잔인하고 건조함 등 필름 느와르의 특징을 다 갖고 있는 정통 필름 느와르다. 사실 세계에 통할 느와르라고 생각한다. 신상옥 감독은 정말 영화를 징그럽게 감칠 맛 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신상옥 감독이 대중친화적인 목적이 아니라 리얼리즘을 추구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자신은 반 대중적인 영화로 생각하고 예술적인 영화로 만든 듯하다.

 

무대는 기지촌이다. 미군부대에서 물건을 훔쳐내 파는 도둑들이 주인공이고. 느와르영화답게 주인공들이 다 나쁜 놈들이다. 나쁜 놈들이 모여있으면 뭐다? 서로 죽고 죽인다. 치사하고 더럽고 비열하고 잔인한 도시이다. 1950년대 영화답게 사회는 촌스럽고 고통스럽고 어둡고 암울하다. 그 중에서도 미군부대 곁 기지촌은 더하다. 추잡하고 욕망에 얼룩져있고 황량하고 공허하다. 실제 미군기지와 기지촌에서 찍어서 그 황량함과 공허함, 비정함이 날 것 그대로 보여진다. 우리나라 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이다. 

 

영화는 시골에서 형을 찾아 상경한 어느 순수한 청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형은, 찾고 보니 미군부대에서 물건을 훔쳐 파는 도둑들 두목이었다. 

주인공 청년은 자연스럽게 형을 따라 도둑들 일원이 된다. 사실 느와르는 비정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도덕적 완고함이 있다. 그리고 순수한 사람이 등장한다. 

주인공 청년 동식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형 영식의 애인인 양공주 쏘냐를 알게 된다. 

 

쏘냐를 연기하는 배우가 바로 최은희다. 최은희는 이 영화에 처음 등장하면서 마릴린 먼로 워크를 보여준다.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엉덩이를 한껏 흔들며 걷는데

어째 좀 주눅이 든다. 머리가 비었고 충동적이고 도덕으로부터 자유롭게 자기 욕망을 쫓는 여자다. 현실적인 인물이 아니라 캐리커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도덕한 빔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페이크다. 쏘냐는 도둑떼들과 어울려 단물은 빨지만 사실 그들을 경멸한다. 죽이고 싶도록. 아마 자기가 속한 기지촌 양공주 사회도 혐오할 것이다. 하지만 철저히 이것을 숨긴다. 그리고 빔보 행세를 한다.  

 

 

 

 

 

 

 

쏘냐는 동식에게서 순수한 청년을 발견하고 동식을 유혹한다. 그리고 동식의 형 영식 및 다른 도둑들을 자기 인생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미군부대에 영식의 도둑질 계획을 밀고해서 다 총에 맞아 죽게 만든다. 쏘냐가 도둑들을 얼마나 혐오했는지 알 수 있다. 형을 배신할 수 없었던 동식은 이를 알고 

형을 구하려 하고, 동식에게서 쏘냐의 배신을 들은 형 영식은 쏘냐를 개펄에서 칼로 찔러 죽인다. 

 

이 장면은 굉장히 길고 자세하다. 그냥 칼로 찔러 으악 하고 죽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발버둥치며 칼로 찌르고 도망가고 서로 부둥켜안고 때리고 다시 칼로 찌르고 하는 식으로 아주 길게 펼쳐진다. 클라이맥스다. 이 장면의 처절함과 박력은 정말 뛰어나다. 아마 신상옥 감독이 특별한 비중을 두고 계산해서 찍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을 빼는 것은, 프렌치 커넥션에서 카 체이스 장면을 빼는 것과 같다. 역대급이자 대가급이다. 

 

 

 

 

 

이 영화는 최은희의 영화다. 결국 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최은희 혼자다. 빔보처럼 굴지만 교활하고 잔인하게 등장인물들을 조종하고 조율해서 비극을 만들어간다. 주인공 동식이나 영식, 그리고 다른 도둑들은 실상 무력하게 조종당하고 죽는다. 자기 욕망을 위해 눈 하나 깜빡 않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떼죽음시킨다. 우리나라 영화사 몇 손가락에 꼽힐 강렬한 팜므 파탈이다.

 

왜 내가 최은희의 팜므 파탈을 높이 평가하느냐 하면,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최은희는 자아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 자아라는 것 대신 그 자리에 투명한 욕망을 갖고 있다. 순수한 욕망 그 자체다. 유명한 여배우들 가령 김혜수나 전도연의 팜므 파탈 연기를 보면 배우들의 자아가 앞에 있다. 하지만 최은희의 쑈냐 연기는 다르다. 자아라는 것을 철저히 지워버린 순수한 욕망과 악 그 자체 - 이것이 내가 최은희의 팜므 파탈 연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왜 흥행에 실패했나 아리송할 정도로 재미있다. 최은희로서는 자기가 요조숙녀 전문 배우가 아니라 폭이 넓은 배우라는 것을 증명했지만, 영화 개봉 이후 사람들로부터 왜 이런 역할을 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라 대중이 강요해서 요조숙녀 전문배우가 된 케이스다. 

 

P.S. 최은희가 진흙밭에 뒹굴어 죽는 유명한 장면이 있는데, 다 찍고 일어나 보니 등에 한가득 거머리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자기는 쏘냐 역이 마음에 들었는데 대중들로부터 왜 이런 영화를 했냐는 비난이 쏟아져서 그것이 영화 흥행 실패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하더라. 

 

P.S. 최은희는 영화 감독을 세 편 했는데, 신상옥 감독이 인정했을 정도로 명감독이었다. 민며느리라는 대표작은 신상옥 감독이 "이것은 걸작이다"라고 단언할 정도로 잘 된 작품이고. 본인은 감독이 너무 힘에 들어 포기했다고 한다. 내가 보니 굉장히 섬세한 타입에 서정성을 베이스로 한다. 그리고 신상옥 감독 영향을 받았는지 감칠맛나게 영화를 만든다. 세부까지 구석구석 흥미있게 만든다. 민며느리, 공주님의 첫사랑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여자가 주인공이고, 인습에 항거하는 여자보다는 인습 속에 순종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애쓰는 여자들을 그렸다. 아마 본인 이야기 같다. 불륜을 저질러 신상옥 감독과 결혼하는 대담함이 있었지만 동시에 조선시대 여자같은 소극성 또한 있었으니.

 

여류감독도 드물지만, 걸작을 만들어낸 여류감독은 더 드물 것이다. 최은희는 여류감독이 드물던 시절 걸작을 만들어낸 여류감독으로서 그 위치가 평가받을 것 같다. 여류감독 계보를 그린다면 그 시대 최은희는 안 들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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