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올드가드' 초간단 리뷰
1.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유일하게 열정적으로 하는 취미생활이다. 그런데 어떤 영화들은 글로 옮기는 게 정말 어렵다. △뚜렷하게 잘 만들거나 못 만들지도 않은 영화 △이야기와 연출이 촘촘해서 끼어들 틈이 없는 영화 △나름 이야기꺼리가 있지만 "굳이 이런 것까지 쓸 필요가 있나" 싶은 영화 △당최 이게 뭔소린지 알 수 없는 영화 등이다. 주로 무난한 수준의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들이 여기에 해당되지만 가끔 '어른도감' 같이 잘 만든 영화도 리뷰를 포기 하게 된다. 그리고 '인랜드 엠파이어' 같은 경우도 도저히 내 어휘력으로 담아낼 수 없는 초현실주의적 영화경험을 한 바람에 리뷰를 포기했다. '올드가드'는 좀 다른 의미로 리뷰를 포기할까 했다. 잘 만들거나 못 만들지도 않았고 뭔가 이야기꺼리는 있는데 굳이 이런 것까지 쓸 필요가 있나 싶은 영화다. 이런 이유로 리뷰를 포기한 영화가 많았지만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 영화들은 대부분 그럴만 했다. 그런데 '올드가드'는 뭔가 써보고 싶게 만든다. 도저히 쓸 말은 없지만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키는 영화다.
2. 우선... 재미있는 영화다. 저 옛날 '하이랜더'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면서 판타지와 전쟁액션에 적당한 스릴러가 결합됐다. 태클을 걸 지점이 없을 정도로 꽤나 잘 짜여진 이야기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리더가 있고 여러 등장인물이 있다. 이들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약점이 된다. 인물들의 서사도 충분히 존재하지만 당장은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정체성이 모호하고 개성이 없다. 당장에 샤를리즈 테론이 멋있기는 하지만 '올드가드 샤를리즈 테론'은 쉽게 각인되지 않는다. 샤를리즈 테론은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재능이 탁월하다. 어떤 캐릭터도 그녀가 연기하면 한껏 무게가 실린다. 그런 그녀의 커리어에 비하면 '올드가드'의 샤를리즈 테론은 좀 재미가 없다.
3. 캐릭터의 부재는 샤를리즈 테론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실 팀원들 대부분 캐릭터에 개성이 보이지 않는다. 만약 "리얼리티를 위해 그랬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비겁한 변명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애시당초 '영원히 사는 주인공' 자체가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만화적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만든 '다크나이트'에서도 캐릭터성을 살리려는 시도는 이어졌다(그 결과는 무려 '조커'다). 굳이 이 영화에 '파워레인저' 수준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차라리 그쪽으로 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어차피 이것도 만화 원작이 아니던가). '올드가드'에서는 그나마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가 제약회사 보스(헤리 멜링)다. 그는 역대 빌런 중 가장 찌질하게 생겨서 무서운 빌런이다.
4. 이야기에 매몰된 것은 캐릭터성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조금 스타일리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꽤 정석적이고 무난한 촬영을 하지만 이것 역시 다소 심심하다. 맨몸액션을 가장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정석적인 촬영을 하는 것도 좋다. 편집으로 잘게 썰어서 끊던지 카메라를 마구 흔들어서 액션을 화려하게 보이도록 하는 꼼수를 쓰지 않는 건 좋지만 적어도 미술에서라도 온갖 장난질을 쳐볼 수 있다. 우리는 액션에 미술을 더한 영화('존윅' 트릴로지)를 잘 알고 있다. 굳이 '존윅'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올드가드'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다. '스타일리시'라는 지점에서 '올드가드'는 '하이랜더'보다 쳐진다.
5. 결론: 워낙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실사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야심'이라고 할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림을 실제로 옮기는데 충실하겠다'라는 의도만 보인다. 만약 그것도 야심이라면 영화는 성공적인 결과물일테지만, 그런 야심은 '내가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서 이번달 안에 500g을 빼겠다'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내가 이 영화의 글을 쓰는데 고민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드가드'는 이야기의 재미는 있으나 영화적 재미는 크지 않다. 시청각적 즐거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미다.
추신1) 프리먼을 연기한 키키 레인을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의 여주인공이다. '캡티브 스테이트'에도 나왔다고 하는데 워낙 유명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존재감이 희미하다. 이 배우는 여러모로 봤을 때 주목해야 할 가치가 있다. ...그러고 보니 한국 관객들은 키키 레인이 제대로 극장에서 볼 기회가 없다.
추신2) '꾸인' 역할의 베로니카 응오 얼굴이 낯이 익어서 검색해보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분노'의 주인공이다. ...이 누나 싸움 겁나 잘하던데.... 속편은 피바람이 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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