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리뷰] 주동우 - 빛을 내어줄 수 있는 별처럼
나는 늘 "배우의 가치는 필모그라피로 증명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젊은 배우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필모그라피를 쌓을 수 없다. 일례로 배우 주원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 주원은 소속사에서 골라주는 작품과 자신이 추진하는 작품이 판이하게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주원 자신이 골라서 출연한 드라마가 '굿닥터'라면 같은 해에 소속사가 추진해서 출연한 영화가 '캐치 미'인 식이다. 자기 뜻대로 커리어를 쌓을 수 없는 게 배우의 운명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젊은 배우가 가야할 길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배우가 자신의 커리어를 가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위 말하는 '인생작품'을 만나는 길이다. 배우 박소담은 '검은 사제들'로 주목받는 신인이 됐지만 이후 그만큼 강렬한 영화/역할을 만나지 못했다. '검은 사제들'의 효과가 다 떨어져 가고 본인 역시 연기에 지쳐갈 즈음, 봉준호 감독이 내민 손을 잡아 완성된 영화가 '기생충'이다. '기생충'은 확실히 박소담의 가치를 높은 작품이다.
중국영화를 꽤 오랫동안 보지 않은 모양이다. 어떤 스타가 나타나고 사라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중국영화에서 등을 돌린 사이 중국에서는 한 배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 배우의 이름은 주동우다. 1992년 1월 31일 생이고 2010년 장예모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로 데뷔했다. 당시 장예모 감독이라면 그 감각이 거의 끝물에 이르렀을 시기다. '국두'와 '붉은 수수밭', '홍등', '귀주 이야기', '인생' 등으로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장예모 감독은 21세기가 될 무렵 '영웅'을 만들더니 메인스트림에 욕심을 낸다. 그 시기 '연인', '황후화'를 만들었고 '천리주단기'나 '산사나무 아래'같은 작은 영화도 만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블록버스터와 작은 영화 사이를 오락가락 하고 있다(누군가에게 동원된 것인지 본인의 욕심인지).
'이빨 빠진 호랑이'에 가까우나 여전히 세계 영화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장예모 감독의 작품에 신인배우가 출연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때부터 주동우는 차곡차곡 필모를 쌓는다. 그 필모 중에서는 해외스타(이준기)와 출연한 영화도 있고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 TV드라마도 있다. 2010년 데뷔 이후 비교적 꾸준히 작품을 한 것으로 보아 이 배우는 확실히 중국 내에서 스타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나는 이 배우의 출연작 중 딱 두 작품('소년 시절의 너',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을 봤다. 배우에 대해 온전히 얘기하기에는 텍스트가 부족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은 마치 주동우의 끝에서 끝을 본 기분이다. 나머지 작품은 모두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와 '소년 시절의 너'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두 작품은 주동우에 대한 충분한 텍스트가 된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모두 증국상 감독의 작품이다. 그의 장편 입봉작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이고 두 번째 영화가 '소년 시절의 너'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글에서는 단순히 '배우 주동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동우와 증국상의 시너지를 다뤄야 한다. 두 영화는 청춘의 빛과 그림자를 다루고 있다. 청춘에는 마냥 찬란한 빛만 존재하지 않고 터널처럼 어둡고 긴 시간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증국상의 영화 속 청춘은 어두운 시절이 있어서 빛이 더욱 빛나고 그 어두운 순간조차 빛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청춘도 결국 같은 삶이어서 희노애락이 모두 녹아있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다가 소중한 것을 찾는 게 청춘이라고 말한다. 주동우는 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주동우의 얼굴은 선이 뚜렷하지 않다. 가느다란 눈에 역시 가늘고 긴 코, 작은 입술. 온전히 감정을 담아내기에도 벅찬 이목구비다. 그런데 주동우는 이 이목구비에 감정을 온전히 담아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얼굴과 몸짓은 도화지 같아서 어떤 감정이건 잘 입혀진다. 흔히 배우의 얼굴이 도화지같다면 좋은 배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배우의 얼굴은 조금 덜 여문 마법도화지같다. 무엇이든 그리면 끝내주는 그림으로 바꿔주는 '스노우 필터'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배우의 얼굴은 관객에게 감정이 충분히 읽힐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배우를 보고 이야기를 쫓아갈 수 있다. 주동우가 이야기의 안내자라면 그들은 이미 축복받은 관객이다. 무엇을 보고, 듣고 무엇을 향해가도 믿고 따라갈 수 있다. 이것이 소위 '믿고 보는 배우'인지 장담할 순 없다(너무 본 영화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배우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는 결국 주동우에게 "참 유연하다"라는 칭찬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몸을 잘 써서 유연한 것이 아니라 작품과 캐릭터에 따라 태도가 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유연하게 연기하기'는 잘하고 못하고의 개념으로 나누기 이전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기다. 소위 '힘을 빼고 연기'해서 어떤 장면에 어떤 감정으로도 붙을 수 있고 감독과 스탭, 상대배우도 뭔가를 하기 편하다. 한 예로, 나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 출연한 마사순을 전혀 몰랐다. 여전히 내가 본 그녀의 영화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가 유일하다. 마사순과 주동우가 붙는 장면은 어느 방향으로건 감정이 꽤 진하게 묻어난다. 기뻐서 낄낄대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며 아파하기도 한다. 그 감정들은 켜켜이 쌓여 '애절함'이라는 절정에 올라야 한다. 이 절정으로 치닫는 감정은 어느 한 배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전히 두 배우가 상대방의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이 들어가며 만든 결과다. 역시 무림고수의 나라라 그런지 '일합(一合)'을 주고 받는 재주가 탁월하다.
새삼 주동우를 보면서 '한번도 연기해 본 적 없는' 내가 관객으로써 갖는 연기철학을 다시 되새겨본다. 연기는 배우가 한다. 그러나 캐릭터를 만들고 장면을 만드는 것은 배우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연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한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도 좋지만 때로는 자신을 감추는 것도 배우의 큰 덕목이다. 주동우는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와 감춰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아는 배우다. 중국에서 유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유연한' 재능을 가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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