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을 기다리며 (뻘글 주의)
오늘 <메멘토> 이동진 GV를 허무하게 놓치고 나서 여기가 놀란의 나라냐! 싶어서 써보게 되었습니다. 저 비싼 스카이박스의 매진은 <엔드게임>이후 처음 보네요.
이 글은 시네필로 살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을 봐온 이야기입니다. 자료를 찾아보긴 했지만 거의 기억에 의존한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메멘토>는 시사회에서 엄청난 신인이 나왔다며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데뷔작은 <Following>이란 작품이던데 우리나라처럼 놀란을 좋아하는 나라에서 개봉조차 안 했고, 작품이 언급도 잘 안되는데, 놀란의 동네 친구들이랑 같이 만든 작품으로 메인스트림까지 진출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미지로 보면 예술 계통에 쭉 있으면서 탄탄대로를 걸은 이미지인데 저도 좀 의외였습니다. <메멘토>는 저로선 흔치 않게 n차를 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인데 지금처럼 설명해주는 미디어가 발달되어있지 않은 시대에 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잡지에서 크게 다뤄주거나 스스로 n차를 할 뿐이었지요. 하지만 이 영화부터 영화 커뮤니티에서 상당히 불을 지펴준 시작점이라 보시면 됩니다.
<인썸니아>는 제가 놀란이 거품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가진 실망으로 나중에 <프레스티지>를 극장에서 관람하지 않게 됩니다. 이번에 보니 해외 평점은 괜찮은 편이었네요. 국내 평점은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한 작품입니다. 이렇게 놀란 작품 중에 상당히 언급 안되는 작품 중 하나기도 합니다. 알파치노, 로빈 윌리엄스 출연임에도 흥행도 실패했어요.
<배트맨 비긴즈> 지금이야 DC는 놀란 3부작처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작은 규모의 어두운 영화만 찍던 이 젊은 감독에게 대작을 맡김에 팬들의 불만이 많았습니다. 특히 또다시 브루스 웨인에 비실비실하고 선이 얇은 배우를 캐스팅한 데에 불만이 엄청났죠. 마이클 키튼도 호리호리한 배우여서 반대 여론이 심했던 걸 알고 있는 건 나중에 다큐로 본 거고요. 그럼 개봉하고 나선 여론이 바뀌었을까요? 아닙니다. 리암 니슨이나 킬리언 머피의 빌런은 뛰어났고, 작품마다 몸을 바꾸기로 유명하신 베일신도 벌크업을 하셨지만 코믹스 원작이란 걸 느끼기 힘든 현실성을 더한 새로운 해석과 진지한 분위기 덕에 튀는 코믹스 설정들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었습니다. 게다가 액션 신도 비판의 대상이었고요. 하지만 대형 블록버스터 작품임에도 안정적으로 연출하고 전작이 <배트맨 앤 로빈>인걸 감안하면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시작으로서 신선한 히어로물이라는 평이 상당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히어로물은 코믹스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프레스티지>를 안 보게 됐지요. 실제로 씨네21 별점도 썩 좋지 않았고, 크게 화제 되지 않았었습니다.
<다크나이트>는 그다지 기대받지 못했습니다. 워너는 <슈퍼맨 리턴즈>(2006)을 제대로 말아먹고, 팬들은 여전히 코믹스스럽지 못한 <배트맨 비긴즈>를 싫어했습니다.(전체 의견은 아닙니다.) 드디어 조커와 투 페이스가 나온다는 이야기에 기대가 높아졌지만 히스 레저 캐스팅은 다시금 불타오르는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당시 히스 레저는 가벼운 10대 청춘물을 주로 찍고 밝고 약간 백치미 있는 이미지였습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이미지 변신을 하긴 했지만, 사실 이미지만 보면 조금 과장 보태서 잭 에프론이 조커에 캐스팅됐다고 상상하심 됩니다. 그리고 2008년 1월 비극적인 부고가 뜹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다크나이트>의 역할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서 그랬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 게 노이즈 마케팅이 되고 맙니다. 촬영 시기상으로도 맞지 않는 이야기인데도요.
같은 해 개봉을 앞두고 씨네 21에 별점이 뜹니다. 별 5개를 준 평론가들이 상당히 많았고, 해외 언론에서 극찬이 쏟아지는 기사들의 번역이 올라옵니다. 특히 히스 레저의 연기를 극찬하는 기사가 많았고, 무조건 아이맥스로 봐야 한다고 호평뿐입니다. 전 당시 용아맥(지금의 용산점 4관)에서 봤던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습니다. 아직도 이 영화는 감독의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관람해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같은 해에 할리우드의 어떤 배우가 홍보를 위해 내한했지만 공항에 팬이 나오지 않아 이런 썰렁한 모습이 찍혔던 어떤 작품이 개봉합니다. 내한의 영향과는 관계없이 볼만한 히어로물이 나왔다 정도의 반응과 흥행도 제법 된 작품이 있었습니다. 찾아보니 놀랍게도 그 작품이 430만 명이나 들고 <다크나이트>는 422만 명입니다. 2008년에는 <다크나이트> 한 작품만 있었던 것 같았는데 말이죠. 히어로물은 밝고 유머가 있어야 한다고 외치던 케빈 츠지하라가 생각나네요. 그리고 아카데미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상을 몰아줍니다.
<인셉션>을 필두로 이제 언터처블 한 감독이 됩니다. 놀란의 나라답게 이 복잡하고 모호한 영화에 590만이나 들고, 엔드 크레디트에 팽이가 비틀거리자 모든 관객들이 크게 소리를 지른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박수가 터져 나오고 관객들 저마다 영화를 분석한다고 논문 수준의 글이 올라오고 2010년도 영화가 <인셉션> 한편만 있었던 것처럼 내내 게시판을 뜨겁게 달굽니다. 나중에 놀란이 좀 정리를 해주고 나서야 조용해진 거지 <블레이드 러너> 이후 가장 수많은 해석이 쏟아져 나왔던 작품이었던 거 같습니다. 아카데미는 <킹스 스피치>에 상을 주지만요.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3부작의 훌륭한 마무리였지만 현실성을 강조한 액션은 여전히 논란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한정이긴 한데 미식축구 슈퍼볼 MVP 수상자 하인스 워드가 이 작품에 카메오로 출연해서 우리나라 한정으로 홍보에 써먹고 그랬습니다. 하인스 워드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혼혈인 미국인이었는데, MVP를 타고 나서 한국계 어머니가 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 와서 예능도 찍고 가고 기부도 하고 그랬습니다. 영화에선 앞모습은 잠깐 나오고 축구장이 무너질 때 공을 들고 마지막까지 혼자 살아남는 선수가 하인스 워드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까는 건 세상 의미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전 해에 이 작품이 개봉했기 때문이죠.
<인터스텔라>의 흥행은 아직도 이해가 안 갑니다. 저는 이 영화를 n차한 이유는 단 하나 뭔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가서였거든요. 두 번 봐도 이해는 안 갔는데 미디어의 발전으로 해석이 꽤 많아집니다. 하지만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설마 그 천만 관객의 반절이 다 그런 이유였을까요? 어떤 흥행 분석 기사 중엔 물리학 공부에 도움이 된다며 학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본 관객 수가 많았다는 이상한 분석기사도 있었습니다. <여기가 놀란의 나라입니까?>는 밈은 이 작품이 천만이 넘고 나서 나온 걸로 기억합니다.
<덩케르크>에 개봉에 맞추기 위해 CGV는 용산점을 리뉴얼하고 세계 최대 아이맥스 극장을 만들며 레이저 영사기를 도입합니다.(농담) 90년대에 <타이타닉>을 극장에서 볼 때 극장 앞에서 당당히 표 있어요를 외치던 아저씨들을 본 게 마지막인데 그때 이후 처음으로 인터넷 암표상을 목도합니다. 저도 이 영화 본다고 하루 휴가까지 냅니다. n차하고 싶어도 블록버스터 시즌이라고 아이맥스에 며칠 못 올리고 내립니다. 차후 개봉한 영화들이 부진하면 교차 상영으로 다시 올리고 다시 올리고 하는데 중블은 깨끗이 매진돼서 볼 수가 없습니다. 취소도 안 나옵니다. 역시 놀란의 나라다워요.
<테넷>의 개봉을 앞두고 허튼소리 좀 써봤습니다. 메가박스는 이 영화 개봉일에 맞춰 돌비시네마 오픈을 하려고 공사 만료일까지 맞췄는데, 미국인들이 마스크 안 쓰고 다닌 덕에 개봉일에 밀려버립니다. 그놈의 <알라딘>을 또 트네요.
<메멘토> GV는 못 잡았지만 극장에서 보긴 할 겁니다. <메멘토>와 <인셉션>을 <테넷> 전에 보여주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놀란을 사실 그렇게 좋아하진 않습니다. <다크나이트>를 치켜세우지만 그 영화도 저에겐 별 5개짜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타오르게 만드는 묘한 떡밥을 잘 던진단 말이죠. 항상 개봉 뒤에 시네필들끼리 전쟁은 나지만 덕분에 2000년대 시네필에 있어서 가장 재미있는 감독이고 같은 세대였던 게 재미있어요. 개봉이 미뤄진 덕에 별 글을 다 써보게 되는데 이 작품도 보고 나서 한동안 즐거울 거 같아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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