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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간단 리뷰

수위아저씨
1736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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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소위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불리는 20세기의 문화는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소녀들은 예쁜 노트를 사서 알록달록 꾸민 일기를 교환했고 소년들은 연인에게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종이학을 접거나 못난 글씨체로 꾸역꾸역 편지를 썼다. 그것은 애정이나 우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에 해당됐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당첨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튀어 보이는 편지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오색찬란한 펜으로 편지를 꾸미거나 온갖 문장력을 총동원해 편지를 썼다. 스승의 날이나 어버이 날이 되면 색종이를 오려붙여 카네이션을 만들고 심지어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도 직접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불편했던 그 시절에는 '불편'을 '정성'으로 메꿨다. 오랜 시간 손과 발, 머리를 써가며 정성껏 한 어떤 일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흘러 디지털 시대에 이르렀지만 아날로그 시절의 기억은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이 되고 10대들에게는 신기한 옛날 문화가 된다. 

 

1-2. 오래전 '건축학개론'을 봤을 때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이 아닐까?"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다소 논쟁적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그 감정 때문에 울다가 웃다가 아파하다가 행복해한다. 정성을 쏟아야 할 손편지는 사라졌고 메신저와 SNS가 그 자리를 대체하지만 감정은 다른 길을 따라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나 역시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고 사랑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랑은 아날로그'라는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조금 불편했던 시대의 감정은, 디지털 시대의 그것과 다르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조금 불편했던 시대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시간과 감정을 쏟아 함께 했고 배신 당하다 아파한, 흔해 빠진 청춘들의 우정과 연애담에 이 영화는 시대를 담는다. 

 

2. '시대를 담는다'라는 말에 오해가 없도록 하자. 이 영화는 정치적 색을 전혀 입히지 않는다. 언급한대로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을 담은 영화다. 그렇다고 '건축학개론'처럼 그 시절 노래와 대중문화들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타국의 관객인 나는 영화의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 두 사람이 만났던 시대를 정확하게 알지도 못할 정도다. 1983년생인 칠월(마사순)의 생년이 등장하고 나서야 두 사람이 1996년에 처음 만났음을 짐작했다. 우리나라였다면 딱 '건축학개론'의 배경이 되는 시기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마을은 그보다 훨씬 시골 분위기를 풍긴다('건축학개론'의 배경이 된 당시에도 서울을 벗어나면 그런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만큼 시대상을 철저히 숨긴 이 영화는 몇 가지 단서로 시대의 정서를 드러낸다. 칠월의 어머니는 "여자라서 이동할 자유가 많지 않다.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갈 뿐", "여자는 아파할 일이 많다. 하지만 내 딸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정확한 워딩은 아니다)을 던진다. 그리고 브래지어에 대한 갑론을박을 벌이는 칠월과 안생(주동우)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는 과거에 대한 태도를 조용하지만 명확하게 드러낸다(이 갑론을박에 '브래지어'가 포함돼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것은 '시대의 논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났다). 

 

3. 제약이 많은 삶에서는 극단적인 다른 선택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돌연변이를 억압하는 사회에 대해 누군가는 학교를 세워 돌연변이들을 가르치고, 누군가는 권리를 찾기 위해 저항한다. 민족이 억압받는 시대에서 누군가는 시를 써서 민족을 위로하고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총을 들어 항거했다. 그들은 삶의 한 순간을 나눈 사이지만 자라온 환경이 달랐고 경험도 달랐다. 그래서 공유한 순간에 대해 각자 다른 태도를 취했다. 칠월과 안생도 그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매그니토와 프로페서X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함께 공유한 경험이 다른 환경이 마주하면서 갈등하게 된다(다시 말해 매그니토와 프로페서X는 대단히 보편적인 관계의 갈등이다). 중국 역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지금보다도 제약이 많고 혼란스러운 시대일 것으로 추측해본다(장쩌민 당시 중국 주석과 차오스 상무위원장의 권력 다툼이 극심했던 시기). 불안하고 폐쇄된 시대에서 더욱 폐쇄될 수 밖에 없는 소녀들의 우정 이야기를 다룬 이유는 이것이 시대의 보편적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4. 청춘은 시대와 상관없이 실수하고 실패한다. 처음 겪어보는 낯선 것들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청춘의 모습은 시대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다만 불안한 시대는 청춘의 고난에 기름을 붓는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서 시대와 환경은 얼굴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영화 내내 칠월과 안생, 그리고 소가명(이정빈)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각자의 시대와 환경이 삶에 관여하고 있다. 거대한 정치사를 의식하지 않아도 시대에서 벗어날 순 없다. 시대와 환경은 집단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개인을 결코 배려하지 않는다. 때문에 관계의 실패에는 늘 시대가 반영된다. 그러나 관계의 성공에는 시대가 반영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가 이룩되고 결실을 거둔다면 그것은 시대를 이겨냈다는 의미다. 칠월과 안생은 주저앉은 듯 보이지만 기어코 시대를 이겨냈다. 

 

5. 아날로그 시대는 뭐든 불편한 시대였다. 그래서 정성을 쏟아야지 오해와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에서도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있는데 먼 거리를 돌아서 온 엽서 속 활자라면 얼마나 갈등이 생길까. 그런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와 어떻게 합의할까. 사실 인터넷 소설이 디지털 시대의 산물이라고 볼 순 없다. 그것 역시 유행이 지났다. 디지털 시대에 텍스트는 구차한 것이 돼버렸다. 텍스트는 미디어로 대체됐고 스토리텔링은 유튜브를 통해 업로드된다. (중국도 나름의 동영상 플랫폼이 있겠지만) 영화에 등장한 인터넷 소설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의점이다. 텍스트를 읽지 않는 시대의 텍스트,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는 이 영화가 '오래됐지만 소중한 것'을 찾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겠다는 선언과 같다. 때문에 이 영화는 '흔한 청춘물'로 정의내리게 된다. 이것은 평범한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다.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나올 이야기다. 그러나 거기에는 우리 모두가 살았을 시대의 정서와 감정을 담아낸다. 이 영화는 그래서 흔하지만 꽤 소중하다. 

 

6. 결론: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말을 아직도 믿는다(그것은 사랑이나 우정뿐 아니라 복수와 분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의 사랑은 아날로그 시대의 그것과 다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카카오톡이나 화상채팅은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줄 수 없다. 5G가 상용화되고 6G를 준비하고 있으며 인공지능이 점차 똑똑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어떤 첨단기술도 인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줄 수 없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끝이 나려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때가 와야 할 것이다.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갈등하다 오해하고 눈물흘린 다음 다시 감정을 확인하는 먼 길을 돌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감정에 정성을 쏟고 있었다. ...나만 그걸 인지하지 못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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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1등

익무에 어울리는 글이란 이런 글을 말하는 건가요?

수위아저씨 님의 글은 아무리 읽어봐도 전부 이런 유형의 글 뿐인데.... 익무에 어울리는 글을 쓰려면 이런 종류의 글을 써야 하는 건가요?

02:26
20.08.12.
profile image 3등
아 정말 인생영화입니다ㅜㅜㅜ 이번에 리메이크 되는 것도 기대돼요~!
09:38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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