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있음) 저는 다만악 실망했는데
다시 보고싶어져요.
저는 섹시한 영화를 좋아합니다.
에브리바디 깨벗고 물고 빠는 후방주의 영화가 아니라, 두고두고 언제 어디서나 문득문득 떠오르는 찝찝함과 공포를 남기는 영화를 섹시하다고 생각하구요. 그런 영화는 절대 편한 자세로 못봅니다. 바짝 긴장해서 보게 되지요.
다만악도 그런 영화이리라 기대했는데, 대따 편하게 반쯤 누워앉아 봤어요.
제 지성과 감성이 얄팍해서 영화가 보여주려던걸 미처 캐치하지 못했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요. 레이 외의 인물들은 어정쩡하달까, 도통 마음 줄만한 캐릭터가 없었어요. 특히 인남이는!!주인공임에도 매력을 못느꼈습니다.
액션도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어딘가 밍숭맹숭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만큼 영상매체 속 폭력에 대한 제 임계치가 높아졌다는 말일 수도 있구요.
제 눈엔 세련됨도 그렇다고 야성적인 강렬함도 안보였습니다. 슬로우모션의 타이밍은 갑자기요?였고, 색감이나 구도도 취향을 저격하는게 거의 없었어요.
그래도 좁은 방 안 격투씬은 이미 본 트릴로지가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다 보여줘서 새로움은 없었음을 감안하면 타격감이 괜찮았고, 칼과 총과 주먹을 이용한 액션 음향효과도 생생했습니다.
그런데 취소했던 표 다시 잡을까봐요.
레이는 다시 봐야겠습니다.
'이젠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대사처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닥치는대로 물어뜯으며 쫓아오는 그 굶주린 짐승같은 눈빛과, 목이 아니라 저 뱃속 밑바닥부터 끓어올라오는듯한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네요?
과장된 악함만큼이나 부담스러우리만치 화려한 패션도 배우의 힘 덕분인지마냥 멋졌습니다. 복장 참 화려했는데 하나도 짜치질 않더라구요.
순백의 롱코트 등장부터 혼을 빼놓더니, 쌈마이해지기 쉬운 목덜미 문신, 꽃무늬와 얼룩말 무늬가 요란스런 셔츠, 주렁주렁 목걸이&반지 레이어링도 모자라, 무심히 든 일회용 컵과 그 안의 아메리카노로 추정되는 음료를 빨대로 쪽 빨아먹는 동작까지 전부 레이라는 본투비 백정의 미장센에 완벽하게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시작은 형의 복수라 했지만 레이가 보이는 집착의 동력은 형재애 따위가 아니라는 점도 좋았어요. 그는 희생자들의 공포에 짓눌린 얼굴 그 자체를 보고싶어하죠. 가정폭력에 시달렸다는 전사가 스치긴 하지만 레이의 주장에 불과하고, 설사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레이는 흔한 '사연있는' 악인이 아니라 악을 즐길 뿐이며, 그 자체가 곧 폭력이자 혼돈이고 죽음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억에 남는 숏이 딱 둘인데.
하나, 닫힌 철창문에 칼을 마구 쑤셔넣으며 발악하던 레이. 사람의 눈아니었죠 그거??
둘, 현관문 앞에 겉옷도 벗지 않은 채 제몸을 구겨 죽은듯 누워 잠들어있던 인남. 일본으로 숨어들기 전과 후 그의 삶이 정확히 어땠는지는 몰라도, 그에게 단순한 생의 의지만 남아있을 뿐 삶의 의지는 없음을 뜻한다 생각해요.
개취로는 인남이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가 아니라 그저 제 한몸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인물이었다면 더 재미있게 봤을 것 같고, 혹 15금이라 잘라낸거라면 청불을 보고싶고, 그 최후의 수류탄클리셰에 특히나 아쉬워서,
기대에 비해 실망했다며 별을 3/5만 줬지만,
금방 다시 재관하고 싶어진걸 보면
저 감겼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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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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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시네요 ^^
무술감독님은 레이를 표범같은, 훈련이 아닌 본능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를 구축하셨다하셨는데 진짜 그 철창 씬의 표정에서 확 보였던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