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an] '냠냠' 초간단 리뷰
1-1. 태초에 '지구 최강의 좀비영화 감독'인 조지 로메로가 있었다. 그는 1968년 없는 살림에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 아름아름 모아서 동아리 활동 하듯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 영화는 좀비영화의 기념비적 작품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이 영화는 없는 살림에 찍다보니 장소가 제한적이다.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나가서 찍었으며 클라이막스는 오두막 같은 작은 집에서 이뤄진다. 태초의 좀비는 '걸음이 느린 아이'(Song by 고유진)였다. 어그적 어그적 걷는 녀석은 마음만 먹고 달리면 멀리 따돌릴 수 있었다. 흉측하게 생겨서 사람을 뜯어먹는 녀석이지만 제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웠기에 극적 긴장감은 떨어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영화는 생존자들을 한정된 집에 가둬두고 좀비로 주변을 포위해버린다.
1-2. 그때부터 좀비영화의 중요한 화두로는 '제한된 공간'이 등장했다. 조지 로메로는 '좀비 3부작'을 만들면서 모두 제한된 공간(집, 쇼핑센터, 지하벙커)을 등장시켰다. 이는 좀비가 달리기 시작한 시대부터 조금 무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공간이 넓어져도 좀비가 뛰어와서 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관적 견해지만 공간에 제약이 없는 좀비영화는 별로 재미가 없다. 공간이 넓어져도 폐쇄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격적으로 좀비가 달리기 시작한 '28일후'는 런던에서 시작해 교외로 떠났으나 장소를 이동하며 폐쇄성을 부각시킨다. '28주후'도 공간은 넓어졌지만 결국 폐쇄돼있다. 좀비영화팬들에게 크게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었던 '월드워Z'조차 질병관리본부 씬은 폐쇄성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한국 좀비드라마 '킹덤'도 시즌2 클라이막스에서는 공간을 폐쇄시킨다. 이와 같은 좀비영화의 아이덴티티를 감안한다면 라스 다모아쥬 감독의 영화 '냠냠'은 대단히 모범적이다.
2. 벨기에산 좀비영화 '냠냠'은 다소 가볍게 시작한다. F컵 가슴이 콤플렉스인 주인공 알리슨(마이케 네빌)은 남자친구 미카엘(바트 홀랜더스), 엄마 실비아(아니크 크리스티앤스)와 함께 교외 유명한 외과클리닉을 방문한다. 알리슨은 이 클리닉에서 가슴축소수술을 할 예정이고 엄마 실비아는 복부지방제거 및 항문미백시술(그런 것도 있나)을 할 예정이다. 기괴한 듯 친절한 병원 분위기와 미카엘의 어리버리함은 영화의 전반부를 가볍게 만든다. 그러나 우연히 병원에서 연구 중인 좀비바이러스 감염자가 탈출하게 되고 병원은 아수라장이 된다. 영화는 인물들이 병원에 들어온 직후 후반부까지 병원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자세한 사정을 알 순 없지만 1층은 좀비에게 점령당한 듯 하다.
3. 좀비영화의 미덕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폐쇄된 공간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고어묘사도 중요하다. 일단 걸어다니는 시체가 등장하고 그 녀석이 사람을 뜯어먹는다면 고어묘사로 할 일이 굉장히 많다. '냠냠'은 고어묘사에 대단히 성실하다. CG뿐 아니라 분장까지 적절히 활용해 피와 내장이 난무하는 좀비영화를 만들었다. 오히려 최근 좀비영화들이 고어묘사에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것을 '냠냠'이 상기시켜주고 있다. 좀비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사실: 이 녀석들은 사람을 뜯어먹는다. 좀비영화의 또 다른 미덕은 인간 캐릭터 중 '발암캐'가 등장하는 것이다(저 옛날 '부산행'의 김의성 같은). 이미 왓챠에서 수입·배급하는 작품인 만큼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지만 이 영화에서도 발암캐가 등장한다. 주인공들 사이에서 판을 흔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그에 걸맞는 죽음도 맞이한다. 태초에 좀비영화는 속이 개운해지는 작품이 아니었다.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자비따위는 없는 법이다.
4. 덕분에 이 영화는 최근 본 좀비영화 중 가장 합리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거기에는 인물들의 잘못된 선택도 한몫했지만 이 결말이야 말로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일어날법한 결말이다. 조금만 언급하자면, 해피엔딩은 절대 아니다. 서두에 언급한 내용을 다시 상기시켜보자. 이 영화는 F컵 여자주인공이 가슴축소수술을 받으러 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일일 수 있지만 스크린 너머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크게 심각해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남자친구 미카엘은 좀비가 등장한 초반부에도 한결같이 어리버리하다.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가 좀비영화에 걸맞게 끝을 맺었다. 무드의 전환이 자연스러우면서 극단적이다. 이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다.
5. 결론: 좀비영화의 전통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오랜만에 좀비영화의 정체성을 확인한 기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구 최강의 좀비영화 감독'은 조지 로메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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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이질적이었어서 그 수많은 좀비들과 특이한 캐릭터들 속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