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가 기대되지 않는 이유 (feat. 하지만 무조건 본다.)
저는 연상호 감독의 찐팬이지만, <반도>는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고 늘 예측해왔습니다. 개봉일인 오늘 그 이유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번개처럼 극장으로 달려가 관람 예정입니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염력> 등 그의 최근 작품들에서 자신의 스타일과 예술성의 볼륨을 줄이고 대중성이라는 불륨을 크게 키웠습니다. 과거 그의 작품들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은 대중적인 스타일 덕분이 아니라, 그만이 가진 예술성과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파괴력 넘치는 극사실주의 연출 때문이었습니다.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이라는 상업영화를 연출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때, 그의 독보적인 스타일과 자본이 만나면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 것인가 너무나도 큰 기대를 하였지만, 신파를 들고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이 신파를?! 그의 단편 작품들 그리고 <돼지의 왕>, <사이비> 같은 대표적인 작품들을 기억하고 있는 찐팬들에게는 일종의 배신감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부산행>이 안 좋은 영화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좀비영화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며, 오락영화로서는 훌륭합니다. 다만,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진 감독들은 늘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 마련이지만, 연상호 감독은 거대 자본의 활용할 기회가 생기자 상업영화를 본격적으로 연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거대 자본의 기회가 생겼을 때 세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아리 에스터처럼 이를 활용하여 오히려 자신의 예술세계를 더 노골적으로 펼치거나. 조던 필 감독처럼 예술성과 오락성을 둘 사이의 균형을 다 잡거나. 아니면 그냥 자본의 노예가 되어 상업영화를 연출하거나. 연상호 감독은 맨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부터 상업영화를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지만, 연상호처럼 파격적이고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진 예술가가 갑자기 상업영화감독으로 스탠스를 180도 전환하니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부산행>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는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오락성 뛰어난 좀비영화입니다.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이는 사투도 신선했고, 현실공포라는 지점도 재미와 몰입감을 높이는 요소였습니다. 반면 <반도>는 <부산행> 이후 4년 뒤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일류 문명이 거의 멸망한 뒤의 세계관)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스테이크 랜드>, <매드 맥스> 정도의 세계관으로 전편보다 아주 크게.. 으아아아아아주 크게 확장하였습니다. 도전적이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은 갑자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같은 거대 스케일의 세계관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의 최근 작품들을 봤을 때, 갑자기 가능할까요? 혹시 지나친 상업영화의 욕망이 예술성을 통째로 삼켜버린 것은 아닌 걸까요?
<#살아있다>같은 영화도 180만 관객을 달성한 판국에 <반도>의 흥행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현 시국 + <부산행> 버프빨로 흥행에는 무난하게 성공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산행>과는 완전히 색채를 달리하는 작품이라 전편의 명성을 오히려 깎아 먹는 작품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제가 지금까지 봐온 바에 의하면 뛰어난 속편이 전편보다 힘을 뺐을 때 오히려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변의 기대에 잔뜩 힘이 들어가면 몸이 뻣뻣해지기 마련입니다. 호러영화팬으로서 <반도>의 흥행을 기원합니다. 물론 <반도>가 호러영화일지는 의문입니다. SF액션에 가깝겠죠?
'이성이 무너진 세상. 야만성이 지배하는 좀비 세상'을 '예술성이 무너진 세상. 상업성이 지배하는 세상'의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좀비액션영화 <반도>. 우리 모두 극장으로 달려가 감상해봅시다.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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