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an] '성형수' 초간단 리뷰
1-1. 2018년 본 영화 '상류사회'는 여러모로 실망이 큰 영화였다. 내가 기억하는 변혁 감독은 1991년 이재용 감독('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여배우들', '죽여주는 여자' 등)과 함께 센세이션한 단편영화 '호모 비디오쿠스'를 만든 사람이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단편을 내놨던 그는 첫 장편 입봉작 '인터뷰'에서도 세련된 감각을 증명했다. 2004년 '주홍글씨'와 이은주 배우의 죽음으로 한 차례 시끄러웠던 그는 2009년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에 참여해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세련된 영상미를 선보인다. 그로부터 10년 뒤 내놓은 영화 '상류사회'는 '세련', '센세이션'이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촌스럽고 유치한 영화였다. 이 사람의 감각이 퇴화한 것인지 변하는 시대를 그가 못 따라온 것인지 궁금했지만 별로 고민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상류사회'는 엉망인 영화였다.
1-2. '상류사회'가 마음에 안 드는 지점이 한둘이겠냐만은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지점은 재벌과 정치권에 대한 1차원적 묘사에 있다. 편의상 이들을 '나쁜 놈'이라고 정의내리는 건 그럴 수 있지만 그 '나쁜 놈' 캐릭터에 입체감이 없고 재미가 없다. 오래전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구장창 봐왔을 '나쁜 놈'의 범주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야기가 심심하고 재미도 없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재벌과 정치인을 조금 가까이서 본 입장에서 느낀 점은, 나쁜 놈은 나쁘다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재벌은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모나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자신을 사랑해왔기 때문에 모두가 자신을 사랑할거라 믿고 잘 대해준다. 그러다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먼저 회유해서 자기 편으로 만든다. 그 과정이 실패하면 재기불능으로 밟아버린다. 그 모든 과정은 돈으로 이뤄진다. 재벌집 자녀에 대해 그나마 잘 묘사한 영화가 김태용 감독의 '여교사'에 등장한 혜영(유인영)이라고 생각한다.
2. 애니메이션 '성형수'를 이야기하는데 앞서 '상류사회'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성형수'는 '상류사회'의 폐해를 고스란히 답습하기 때문이다. 연예계는 비밀스런 곳이다. 보여지는 것과 달리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고, 생각보다 별 거 없는 곳일 수 있다. 일하다 보면 소위 말하는 '찌라시'가 돌 때가 있다. 전에 알던 연예부 선배들은 이 '찌라시'에 대해 "90%는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연예인 마약사건이나 성범죄 등 파렴치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회사 다니듯 평범하게 연기하고 노래하기도 한다. '성형수'가 묘사한 연예계 시장은 단순하고 1차원적이다. 게다가 거기에 부합하듯 캐릭터 역시 단순하다. 어떤 고민도 없이 나쁜 놈은 나쁘고 착한 놈은 대놓고 의심스럽다.
3. 그나마 재미있는 캐릭터가 주인공 예지였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그녀는 어릴 때 발레를 했으나 못생긴 외모 때문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트라우마를 묘사하는 과정은 극단적이지만 성형수를 만난 후 그녀의 심리묘사는 이 작품에 등장한 모든 캐릭터들 중 가장 입체적이다(그렇다고 공감의 여지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예지 외에 지훈이나 원하, 예지 부모 등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대체로 단순하다. 다시 말해 캐릭터와 이야기를 쫓는 재미는 없다. 그것만 쫓았으면 진작에 '상류사회'가 됐을 판이다.
4. 다행스럽게도 '성형수'에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 클라이막스에 이를수록 고어 묘사가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하고 눈뜨고 볼 수 있는 기이한 상상력은 원작 웹툰의 제목처럼 (기)기괴(괴)하다. 심약한 사람은 애니메이션이라 하더라도 고어 묘사가 트라우마로 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성인용 애니메이션'의 씨가 마른 한국에서 이런 시도 자체만으로 박수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고어 애니메이션'이라면 일본에서도 '우로츠키 동자'나 '요수도시' 이후로 찾아보기 어렵다(그쪽도 '고어 애니메이션' 시장은 죽은 듯 하다). 고어 묘사뿐 아니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준도 탁월하다. '선택과 집중'이 있다면 이 작품은 '공포'에 집중하고 있다. 적어도 어떤 지점에서는 만족할만한 여지가 있다. 이는 어떤 개성도 찾아보기 힘든 '상류사회'에 비하면 나름의 성취다.
5. '성형수'를 극장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원작 웹툰의 인기도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겠다. 다만 극장 관계자들이 이 작품에 많은 관을 배정할지 의문이다. 애니메이션인데다 공포 장르이고 전문성우들이 참여해 스타도 없다(스타라면 이 작품 안 하겠지). 마케팅 측면에서 어떤 꺼리도 없다. 만약 내가 마케팅 관계자라면 이 작품을 어떻게 포장할지 고민이 많아질 것 같다. 감독과 제작자는 원작이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만큼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이럴 때 좋은 대안이 된다. '극장보다 넷플릭스가 어울리는 영화'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이 영화는 넷플릭스가 잘 어울릴 것 같다. ...아, 넷플릭스는 중국에 서비스 되지 않는다.
6. 결론: '성인용 공포 애니메이션'으로는 놀라운 성취가 있다. 다만 그 성취를 목격하기 위해서는 온갖 오글거리는 인물과 배경 묘사를 참아내야 한다. 다행히 러닝타임은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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