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영화수다(엔니오 모리꼬네)
유튜브에서 우연히 찾은 커버곡인데 나름 매력적이라 올려봅니다.
가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다른 사람과 오열포인트가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태풍이 지나가고'는 누가 봐도 오열할 지점이 없는 영화였으나 개인의 경험이 영화에 오버랩되면서 나는 깊은 밤 광화문 씨네큐브 앞에서 나라 잃은 애국자처럼 펑펑 울었다. '오열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가장 무섭게 본 영화는 '공포영화'라는 장르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영화는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레퀴엠'이다. 흔히 "울어"라고 등 떠미는 지점에서는 눈물이 잘 나오지 않거나 그냥 찔끔 나오는 편인데 담담한 척 "괜찮아"라는 영화를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 공포영화도 마찬가지로 깜짝 놀래키는 영화보다는 "생각해보니 무섭네"라는 영화가 정말 무섭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옛날옛적 서부에서' 메인테마곡은 내게 그런 음악이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옛적 서부에서'는 끝내주는 서부영화였다. 촬영이나 편집, 연기 등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웨스턴에 딱 들어맞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이 메인테마곡은 이상할 정도로 슬프다. 만약 영화를 보지 않고 음악만 들었다면 그 감정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가겠지만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은 본 영화인데도 그 음악은 처연하고 슬프다. 무엇이 그리 슬펐을까? 하모니카(찰스 브론슨)의 쓸쓸한 뒷모습? 맥베인 부인(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애절한 눈빛? 음악은 보여지지 않았던 인물들의 쓸쓸함을 드러낸다. 그때 서부에는 화려한 총격전과 멋진 영웅이 없었다. 황량한 사막의 외로움과 기다림이 있을 뿐. 엔니오 모리꼬네는 음악으로 그걸 표현한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이 음악을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 중 최고'라고 표현한다. 두 말 하면 입 아픈 명곡들이 즐비한 그의 필모그라피지만 이 음악만큼은 참 오래 남고, 오래 슬프다.
워낙 연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그의 음악만 머릿 속에 맴돈다. '세상을 떠났다'라는 느낌도 희미하다. 사람은 죽어도 작품은 영원히 남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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