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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CGV 기획전 - 캐리] 간략후기

jimmani
2810 16 12

20200703_001320.jpg

 

전설적 호러 클래식으로 꼽히는 1976년작 영화 <캐리>를 CGV 시네마 어덜트 베케이션 특별전으로 보았습니다.
'호러의 제왕'이라 불리는 거장 소설가 스티븐 킹의 첫번째 출세작을 바탕으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연출한,
첫번째 스티븐 킹 소설 원작 영화인 <캐리>의 명성은 과연 극장에서 보니 피부에 와닿게 실감되었습니다.
자신도 원하지 않았던 비극의 결말로 폭주하는 캐리의 모습에서는 스티븐 킹 소설의 스산한 에너지가,
결정적 폭발의 순간까지 서두르지 않고 긴장을 쌓아올리는 치밀함에서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극중 인물들의 헤어나 패션 스타일 정도를 제외하면 45년 전 영화라는 걸 믿기 힘들 정도로 세련되기도 했고요.

고등학생 캐리 화이트(씨씨 스페이식)는 집에서는 광신도 어머니 마가렛(파이퍼 로리)로부터 학대 받고,
학교에서는 내성적인 성격을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받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뒤늦게 찾아온 초경에 죽는 줄만 알았다고 느꼈을 만큼, 캐리는 세상과 철저히 차단되어 살아왔죠.
그런 캐리를 괴롭히던 친구들이 어느날 선생님으로부터 근신 처분을 받고, 두 친구가 서로 다른 길을 택합니다.
괴롭힘을 방관했던 수지(에이미 어빙)는 그동안의 잘못을 참회하는 의미로 남자친구인 토미(윌리엄 캇)에게
캐리와 졸업 파티에 함께 가 줄 것을 부탁하고 토미는 이를 수락해 캐리와 가까워지려 합니다.
한편 근신 처분에 앙심을 품은 또 다른 친구 크리스(낸시 알렌)는 캐리의 졸업 파티 참석 소식을 듣고는
남자친구 빌리(존 트라볼타)와 함께 캐리에게 엄청난 굴욕을 선사할 계략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선량한 계획과 악마적 계략 사이에서 점점 파티 날은 가까워지지만,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습니다.
행복은 늘 눈 앞에서 팔 벌리며 다가오는 반면 불행은 늘 차마 보지 못한 새에 뒤에서 덮치고,
이 경우 끝은 어떤 방향으로 귀결될지 이미 능히 짐작되기 때문일 겁니다.
 
<캐리>는 호러 영화계의 레전드로 추앙받고 이번 CGV CAV 기획전에서도 마스터피스 자격으로 상영되지만,
이 영화 속 이야기의 최종 종착지는 앞서 얘기했듯 '졸업 파티'라는 비교적 작은 이벤트입니다.
그마저도 물량 공세로 압도하는 식의 연출을 보여주지 않는데 이 영화의 공포가 거대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쌓아 올려 가는 불안한 긴장감과 그 뒤에 도사린 구슬픈 비애감 때문일 겁니다.
먼저 제시되는 것은 캐리의 불안한 현재입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이 버티고 있는 학교도,
심심하면 딸을 골방에 가두어 기도를 강요하는 어머니가 있는 집도 캐리에겐 쉴 곳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갖게 됐다는 초능력은 불안과 분노를 연료 삼아 분출되는 듯해 불행한 앞날을 예고합니다.
그런데 이런 캐리를 중심에 두고 극명하게 상반되는 두 개의 힘이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수지의 뜻에 따라 캐리에게 다가가는 따뜻한 관심은 어쩌면 캐리의 삶이 변화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합니다.
그러나 뒤이어 캐리를 무너뜨리려는 이들의 비열한 행보가 나타나면 그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는 듯 흩어지죠.
그렇게 캐리에게 다가올 불행을 짐작하고 있는 관객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행복에 기대를 품는
캐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긴장감과 동시에 막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불행이 오지 않길 바라는 슬픔에 젖습니다.

영화는 중간중간 캐리가 만나는, 또는 캐리 바로 곁에 있는 순간들을 무척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캐리가 초경을 하기 전 탈의실의 풍경이나, 캐리와 토미가 졸업 파티에서 만끽하던 잠시동안의 즐거움과
이어서 왕과 여왕으로 선출되는 순간들이 그러한데 이때는 어느 하이틴물의 한 장면으로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함께 깔리는 음악도 서정적이기 그지 없는데, 이 영화가 호러 장르라는 걸 이미 알고 보는 상황에서 만나는
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감수성 충만한 연출은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캐리를 재앙을 불러오는 '악의 화신'이 아닌,
그가 여느 10대처럼 누렸어야 할 바로 그 하이틴물 속 풍경 같은 순간들로부터 외면당한 '희생양'임을 일깨웁니다.
따라서 캐리가 졸업 파티에서 일으키는 대사건의 순간에도, 그 사건과 마주하는 파티 속 사람들의
아비규환에 빠진 표정과 달리 관객은 일말의 후련함과 서글픔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그의 삶을 짓밟은 자들을 쓸어버리는 후련함과 이제 그의 삶은 더 이상 평범해질 수 없다는 서글픔 말이죠.
 
속편을 자처하는 영화와 리메이크가 이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1976년작 <캐리>의 권위가 여전한 것은
순수하면서도 음산하고, 광기 안에서도 비애를 발견하게 되는 캐리의 초상을 연기한 씨씨 스페이식 덕이 클 겁니다.
졸업 파티에서 친구의 따뜻한 관심을 받으며 얼굴에 가득차던 웃음이 순식간에 싸늘한 원한으로 돌변할 때에는,
굳이 캐리가 일으키는 재앙의 면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이 재앙의 공포를 능히 가늠하게 됩니다.
웬만한 호러 영화 속 살인마만큼 소름끼치는 악역 연기를 보여주는 마가렛 역의 파이퍼 로리도 잊기 힘듭니다.

글로 싹을 틔우고 영상으로 꽃을 피운 45년 전의 호러 레전드로서 <캐리>는 과연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합니다.
클라이맥스의 분할 화면과 같은 참신한 연출로 예산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형을 깨는 영상과 음악의 구현으로 괴담 이상의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며,
꼭 자극을 키우거나 이야기를 배배 꼬지 않아도 위대한 호러가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부조리한 현실에 섬뜩한 철퇴를 가하며 관객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호러 장르의 의의를 생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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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어제 봤는데 연출이 대단하더라구요..그시대에 ㄷㄷ 리뷰완전 좋네요. 집중해서 잘 읽었습니다
20:12
20.07.05.
profile image 3등
보러가는데 기대되네요..!! 극장에서 처음보는거라
02:41
20.07.06.
jimmani 작성자
토마디
확실히 극장에서 보니 색다른 경험이었네요 ㅎㅎ
08:40
20.07.06.
스삼함. 불안한 긴장감, 비애감 그리고 순수와 광기
정말 클래식이 영원한 이유 같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하는 리뷰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10:08
20.07.06.
jimmani 작성자
BradPitt!
감사합니다! 마침 포티 이미지 좋은 거 찾았네요 ㅎㅎ
17:18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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