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GQ재팬 '벌새' 리뷰 번역
일본 GQ재팬에 올라온 <벌새> 리뷰를 옮겨봤습니다.
코로나 시국 일본 극장가의 상황도 살짝 소개하고 있네요.
원문은 아래입니다.
https://www.gqjapan.jp/culture/article/20200703-modern-woman-30
소녀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 그려지는 한국사회
도쿄에서도 영화관 영업이 재개되게 된 지 약 한 달 정도. 3개월 만에 ‘영화를 극장에서 감상하는’ 체험이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감염 예방을 위해 좌석은 전후좌우를 비워두고 소독약과 비닐 시트를 설치하는 등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과연 이런 식으로 경영이 잘 될지, 충분히 안전하다고 할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걱정이지만, 원래 4월 개봉 예정이었다가 6월로 연기된 영화 <벌새>를 곧바로 보러 갔다 왔습니다. 시부야 유로스페이스 극장은 평일에도 매진이 될 정도로 성황. (극장 측에서는 거리두기 없이) 좌석을 모두 판매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겠죠.
<벌새>는 한국의 신예 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베를린국제영화제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서 50개 이상의 상을 수상한 화제작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른들은 가끔 이런 영화를 보면서 이 사회에서 미성년 아이들이 얼마나 갑갑하고 부자유스러운 입장에 처해있는지를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자신의 주변이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똑똑히 지켜보고, 마음 아파하고, 기뻐하고,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대는 1994년 서울. 주인공 소녀 은희(박지후)는 14살 중학생입니다. 베스트셀러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보다 두 살 위 연상이 되는 셈이죠. 결코 생활반경이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는 소녀의 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1987년 6월 민주화 선언이 나오고, 88년에 올림픽 개최도 이루면서 급속한 경제성장과 가치관의 변화에 흔들렸던 한국사회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여성들의 유대
은희는 작은 떡집을 운영하는 양친, 오빠, 언니와 함께 큰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습니다. 남존여비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사회에서 부모는 오빠만을 애지중지하고, 오빠는 폭력을 휘두르고, 권위주의적이고 위압적인 교사가 제멋대로 구는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주위 사람들은 ‘불량하다’는 낙인을 붙입니다. 하지만 은희의 일상은 불량스럽기는커녕 귀엽기만 합니다. 학교 밖 친구들과 덤블링을 하거나,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지하 디스코텍에 놀러가거나 후배 소녀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등. 숨 막히는 나날 가운데서도 반짝이는 순간이 있고, 그럼에도 역시나 갑갑한 십대의 생활이 꼼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은희를 둘러싼 다양한 세대 여성들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설 자리가 없는 은희에게 우롱차를 정성스레 끓여주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한문 학원 영지 선생님(김새벽)의 존재는 물론, 은희가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에 있었던 아줌마들처럼 ‘주요 등장인물’도 아닌 캐릭터들도 좋습니다. 은희를 귀엽게 여기면서 먹을 걸 건네주는 아줌마들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은희의 어색한 미소에 저 역시 얼굴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연령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젊은 사람들이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저도 실감하는 바입니다. 우연히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스쳐지나갈 뿐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스한 정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세상이 됐으면 하고 바랍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선의를 ‘성가시다’며 경계하는 것이 당연시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 영화는 억압받아온 여성들의 고통과 함께, 남성들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임을, 원만하지 못한 가정에서도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건 아니라는 것 또한 그리고 있습니다. 어느 특정 지역, 시대의 이야기여서 가능한 재미와 청춘의 보편성을 겸비한 출중한 데뷔작이 아닌가 싶네요. 김보라 감독은 1981년생으로 서울 동국대 영화영상학과를 졸업한 후, 뉴욕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수학했다고 합니다. 차기작이 기대되는 여성 감독이 또 늘었습니다.
작가, 번역가 노나카 모모
golgo
추천인 1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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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인터뷰등이 중요한데
지난 GV때 이야기론
감독판등의 블루레인 향후 5~10년뒤 생각하고,
차기작에 몰두하고 싶다고 해서
감독의 참여여부에 따라
잘못하면 블루레이 출시해도
북미등의 해외판과
한국판 구성이 똑같을수도 있고,
아니면 dvd로만 출시할 가능성도 크죠.
"우연히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스쳐지나갈 뿐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스한 정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세상이 됐으면 하고 바랍니다."
영화 본편 만큼이나 보석 같이 빛나는 후기 글입니다+0+
초큼 아쉬운 영화였네요 ㅠ
어느 특정 지역, 시대의 이야기여서 가능한 재미와 청춘의 보편성을 겸비한 출중한 데뷔작이라는 문구에서 이 영화의 특징을 잘 캐치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