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파이어 사가 스토리] 간략후기
새로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파이어 사가 스토리>를 보았습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파이어 사가 스토리>(이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긴 제목을 지녔지만 실상은 사정없이 웃기면서도 모양새가 잘 빠진 코믹 오락 영화입니다.
실제로 매년 열리는 '유로비전 노래 경연 대회'를 소재로 이국적인 배경과 기상천외한 캐릭터를 가져와
개연성은 저세상으로 보낸 듯한 스토리와 임팩트 있는 퍼포먼스를 함께 선보이는, 기이하게 즐거운 영화입니다.
유럽에서는 1년에 한번 연중 가장 큰 대중문화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유로비전 노래 경연 대회'가 열립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 한 곡을 들고 나와 경연을 펼치는 무대로,
유럽 전역에서 주목하는 대형 이벤트인 만큼 그 규모도 대단해서 유럽 가수들에겐 '꿈의 무대'라 할 만하죠.
아이슬란드에 사는 라르스(윌 페렐)와 단짝 친구 시그리트(레이첼 맥아담스)는 어려서부터
이 '유로비전'에 출전하는 것을 일생의 꿈으로 여겨 왔지만, 실력이 뛰어난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던 중 말도 안되는 우연과 기회가 연이어 닥치면서 라르스와 시그리트에게 유로비전 출전 기회가 주어지고,
난생 처음 아이슬란드를 벗어나 꿈의 무대에 당도한 그들에게는 좌충우돌 해프닝이 이어집니다.
시놉시스만 보면 '유로비전'을 무대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품은 젊은이들의 성취를 그리는 휴먼 드라마 같지만,
개연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당장 영화를 꺼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난데없는 상황들이 연이어 발생합니다.
관객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이야기가 우리를 어느 방향으로 인도하든 그에 의지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계획이나 전략을 찾아볼 수 없는 일방적인 노력과 보는 사람 헛웃음 나게 하는 우연, 그리고 약간의 기도가 더해져
일어나는 두 고향 친구의 유로비전 여정담은 또 다른 의미로 '예측불허'의 재미를 안깁니다.
어떤 커다란 목표를 향해 꿈을 안고 나아가는 이의 이야기가 지니는 특유의 전형성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전형적인 이야기를 완성하기까지의 흐름은 종잡을 수 없는데 그 구성을 또 나름 영리하게 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을 카메라가 담아낼 땐 자연 다큐를 연상시키듯 시원한 볼거리를 전하고,
요정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현지 문화의 일면을 코믹하지만 충실하게 옮기기도 합니다.
(극 중 요정의 존재를 믿지 않는 라르스 역의 윌 페렐은 공교롭게도 영화 <엘프>에서 요정을 연기한 바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공영 방송에서는 국위선양을 위해 유로비전에 국가대표 가수를 출전시키길 원하나,
규칙상 우승국이 내년도 대회를 주최해야 하는데 국고에 돈이 없으니 정부 은행은 가수가 나가도 죽을 쑤길 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배경으로 깔리는 등 일반적인 오디션 드라마의 설정을 뒤집는 장치들도 인상적입니다.
논리를 따진다면 코웃음만 칠 수 밖에 없는 당황스러운 사건들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유로비전 노래 대회 속 무대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간혹 부르는 가수들의 무대 매너가 괴이할 뿐 노래들 자체는 꽤 귀에 잘 감기는데,
과거에 큰 인기를 끈 유럽 팝 스타일을 연상시키며 현재의 레트로 트렌드와도 꽤 맥이 통합니다.
러시아의 톱 가수이자 유력 우승후보인 렘코프(댄 스티븐스)를 비롯한 경쟁자들의 화려한 무대에 비해,
라르스와 시그리트의 무대는 주최측에서 뭘 좀 연출해주려고 해도 못 받아 먹는 수준으로 소화력이 부족합니다.
그들이 무슨 뼈와 살을 깎는 노력으로 자신들의 테크닉을 성장시키거나 하지 않는데도,
설득당하리라 예상 못한 감정선에 설득당하며 다다르는 그들의 최종 무대는 심지어 꽤 소름 돋기까지 합니다.
무모하고 계획적이지도 않은 꿈이 간절함만으로 어떤 아름다운 지점에 이르렀을 때의 모습을 보여준달까요.
(라르스 역의 윌 페렐은 직접 노래했고, 시그리트 역의 레이첼 맥아담스는 대역 보컬이 노래했습니다.)
영화는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 <스텝 브라더스>, <스탠바이 캅> 등 윌 페렐이 곧잘 선보여 온
캐릭터 코미디에 기반한 콤비 플레이를 남녀 조합으로 보다 다채롭고 감수성 풍부하게 변주한 느낌입니다.
라르스 역의 윌 페렐은 세상에 대해서는 순진하면서도 음악에 대해서는 고집스러운 별난 음악인의 모습을
언제 터질지 모를 웃음의 시한폭탄으로 구현하면서도 밉거나 거북하지 않은 친근한 캐릭터로 그려냅니다.
북유럽 바이킹 상을 한 그의 근엄한 이목구비 또한 역할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인상을 줍니다.
한편 시그리트 역의 레이첼 맥아담스는 이 혼돈의 성공 스토리 속에서도 변함 없는 사랑스러움을 과시합니다.
과하게 망가지지 않고 사랑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캐릭터의 심정, 라르스와의 관계와 감정을
생기있게 표현하면서 자칫 통제 불능으로 질주할 수 있는 영화에 감수성을 불어넣으며 브레이크를 걸어줍니다.
이들이 (당연히 그러겠지 싶다가 설마 진짜 그러나 싶어지는) 러브라인을 연출하고야 마는데,
나중에 가면 그 감정선에 그만 설득이 되고 만다는 점이 이 배우들의 저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러시아 가수 렘코프 역의 댄 스티븐스는 전에 없이 느끼한 연기로 영화에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하며,
라르스의 '너무 잘생긴' 아버지 에리크 역의 피어스 브로스넌도 혼자 진지하고 중후한 코믹 연기로 웃음을 줍니다.
당장 극장에서 보고 싶을 만큼 빼어난 작품성을 지닌 영화부터 흘려 보내도 그만일 팝콘 무비까지.
스펙트럼도 참 다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에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위치는 좀 독특할 듯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볼수록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저세상 텐션의 코미디 영화인데 그 연출의 규모와 디테일이
예상보다 너무나 뛰어나서, 나중엔 이 영화에 누구도 좀처럼 기대하지 않았을 예술적 쾌감까지 주는 경우랄까요.
군말없이 따라만 가면 유쾌하고 기분좋은 엔터테인먼트와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즐거운 영화였습니다.
추천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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