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너츠] 간략후기
1860년대 열기구 비행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에어로너츠>를 개봉 전 상영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감명 깊은 연기를 보여준 펠리시티 존스와 에디 레드메인이 다시 만난 이 영화는
실존인물인 열기구 비행사 아멜리아 렌과 과학자 제임스 글레이셔가 함께 열기구를 타고서
각자 인생에서 최초이자 최고의 성취에 이르는 과정을 스케일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열기구에서의 현재와 인물들의 과거를 오가는 가운데,
영화는 용기와 희망, 도전이 낳는 발견과 성취라는 보편적 메시지를 익숙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전합니다.
열기구 비행사 아멜리아 렌(펠리시티 존스)은 열기구 사고로 남편 피에르(뱅상 페레)를 잃은 뒤
실의에 빠져 다시 비행에 나서길 주저하고 있었지만, 과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에디 레드메인)의
거듭된 요청으로 대중이 주목하는 새로운 열기구 비행에 어렵게 나섭니다.
제임스가 그토록 아멜리아와 함께 비행을 하고자 했던 이유는 주류 과학계에서는 코웃음 치는,
과학적인 기상 예측의 단서를 하늘 높이 올라가 직접 경험하고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목표와 꿈을 가지고 이름처럼 초거대한 열기구 '매머드'에 올라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한편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전기영화의 일반적인 형식과는 사뭇 다르게, <에어로너츠>는 아멜리아와 제임스가 함께 열기구에 대한
특정 시점의 한 사건과 두 사람이 각자 겪어온 삶을 교차시키며 색다른 스토리텔링을 보여줍니다.
아멜리아와 제임스 각자가 걸어온 과거는 그들이 한 열기구에 탄 현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아멜리아의 과거에는 함께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던 남편을 잃은 기억이 있습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동시에 더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한 계산에 실패한 데 대한 뼈저린 대가로
아멜리아는 남편을 잃었고, 이 일은 그에게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죄책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한편 제임스의 과거에는 허무맹랑하다고 대접 받기 일쑤였던 주류 과학계의 괄시가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과학적인 기상 예측이 당시에는 점성술마냥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렸고,
이를 위해 직접 하늘에 올라가겠다는 제임스의 포부는 하늘을 나는 데 정통했던 이들마저 비웃기에 이릅니다.
두 사람은 이러한 각자의 과거로부터 서로의 못다 이룬 꿈을 발견하고, 함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현대의 비행기가 아니라 외부의 기압과 기온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열기구의 환경은
이런 내적인 도전 외에도 두 사람에게 갖가지 외적 위기를 불러오고, 두 사람을 수시로 생존의 기로에 내몹니다.
개인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역사적 업적을 거두는 이들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지만,
<에어로너츠>는 정적인 역사 드라마와 동적인 생존 드라마를 넘나들며 꽤 신선한 재미를 줍니다.
아멜리아와 제임스의 과거를 되짚을 때에는 영락없는 영국식 사극 톤을 띠는 반면,
거의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열기구 상황으로 넘어오면 한층 현장감 있는 카메라 워크와 근접 촬영으로
현대의 많은 이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열기구 안의 아찔한 공기를 제법 사실적으로 전합니다.
워킹 타이틀식 사극에 어울릴 법한 외모와 복장을 한 사람들이 극한 환경의 열기구 안에서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생소한 볼거리임과 동시에, 각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제약을 돌파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여 결국 인류의 진보에 이른다는, 영화의 지향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지 개인의 의지에 의해서만이 아닌, 기적적인 행운과 주변 사람들이 더하는 약간의 도움이 모여
도전의 기회를 만들어내고 성취와 진보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이미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 바 있는 펠리시티 존스와 에디 레드메인은
이번 <에어로너츠>에서는 절절한 사랑 대신 믿음직한 동료애로서 또 한번 감동적인 호흡을 보여줍니다.
무게중심은 에디 레드메인이 연기한 제임스보다 펠리시티 존스가 연기한 아멜리아를 좀 더 향해 있는 가운데,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쌓은 견고한 내적 장벽을 뚫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아멜리아의 모습을
펠리시티 존스가 특유의 진중하고 차분한 톤의 연기로 울림 있게 그려내는 한편,
시대의 편견을 뚫고 새로운 발견을 향한 추구를 멈추지 않는 제임스의 모습을
에디 레드메인은 사뭇 천진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캐릭터 묘사로 생동감 있게 보여줍니다.
극 중 아멜리아가 자신의 의지로 열기구에 새겨넣었다는 '하늘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는 문구는
<에어로너츠>가 보여주고자 하는 두 사람의 모험이 지니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이 탐험하는 무한한 하늘은 먼지에 지나지 않은 한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세계의 크기이자,
동시에 용기가 있다면 어디로든 탐험할 수 있음을 귀띔하는 기회의 크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를 가슴 벅차게도, 겸손하게도 만드는 하늘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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