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의 관심사' 초간단 리뷰
1. 인간이 이성을 갖기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해온 활동 중 하나가 창작이다. ...아니, 고대 원시인들의 동굴벽화도 창작이라고 본다면 인간 창작활동의 역사는 끝을 알 수 없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창작활동의 역사가 그토록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나올 이야기는 다 나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롭게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결국은 과거 누군가에 의해 나온 이야기에서 돌고 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시대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익숙한 것의 변주에서 시작된다. 오랫동안 트렌드를 주도한 이야기가 있다면 거기서 방향 하나만 바꿔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남연우 감독의 영화 '초미의 관심사'는 이런 변주에서 비롯된다.
2. '초미의 관심사'는 익숙한 버디무비의 모양새를 띄고 있다. 어떤 사건이 생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목적이 같은 두 사람이 뭉친다. 두 사람은 목적만 같을 뿐 성격에 환경, 여러 가지가 완전 다르다. 당연히 갈등이 생기고 싸움도 하지만 결국은 사건을 해결하며 힘을 합치고 서로 이해하게 된다. '초미의 관심사'는 이런 익숙한 버디무비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둘째 딸 유리는 어디에 갔는가"를 찾는 추리영화의 구조도 띄고 있다. 유리는 엄마(조민수)의 가게 월세 300만원과 언니 순덕(김은영)의 비상금을 들고 잠적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와 순덕은 유리를 찾기 위해 힘을 합치고 증언과 단서를 쫓아 이태원 곳곳을 누빈다. 영화가 성실하게 유리를 쫓아가는 덕에 관객들도 "대체 유리가 어디로 간 것일까?"라며 함께 찾게 된다. 이 가운데 이야기는 몇 개의 반전을 심어둬 더 흥미진진해진다. 이래뵈도 이 이야기는 나름 튼튼한 반전을 가지고 있다.
3. 두 주인공인 엄마와 순덕도 단순해보이지만 일관성이 있는 캐릭터들이다. 일단 주먹이 먼저 나가는 엄마와 꽤 차분한 순덕, 두 사람의 케미는 버디무비로써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다. 다만 엄마와 딸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가 가슴에 대못박히는 말도 막 던지다가 중요할 때 의기투합하고 허무할 때는 함께 웃고 이해하다가 싸우다가... 이 모든 것을 하루에 다 한다. 캐릭터는 일관성이 있어도 관계에는 당최 일관성이 없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애증'이 쌓인 가족이라면 보고 싶다가도 보면 으르렁대기 마련이다. 잘해주고 싶다가도 막상 해주다 보면 화가 난다. 불판 위에 돼지갈비 뒤집듯 뒤집어지는 관계로 이 모녀를 설정한 것은 '아들'인 나조차 공감할 정도로 탁월한 선택이다.
4. "왜 이 영화는 배경이 이태원일까?"를 생각해봤다. 이태원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엄마의 대사 몇 마디로 미뤄볼 때 그녀는 양공주의 딸이다. 험한 유흥가에서 태어난 엄마는 그 딸이 그랬던 것처럼 모성을 물려받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때문에 순덕이 가출한다 했을 때도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 마음은 걱정이 됐지만 그 걱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어떻게 딸을 보살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엄마 역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순덕과 유리는 엄마, 외할머니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딸들 곁에는 엄마가 미처 이루지 못한 음악이 함께 하고 있다. 음악에 더 가까이 있는 딸들은 외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지는 역사의 대물림을 끊어낸다. 이태원 밤거리의 불빛에 가려진 그림자에서 살았던 외할머니와 엄마를 지나, 딸 순덕에게는 화려한 조명이 감싸고 있다.
5.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서며 나는 "이게 '이태원 클라쓰'구만"이라고 말했다. 양공주의 자녀들에게서 시작해 정복이(테리스 브라운)라는, '외국인'의 경계에서 벗어난 한국인도 있고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 등 성소수자들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이태원역 앞 메인 거리를 지나 산 높은 곳 뒷골목까지 보여주면서 이태원 구석구석을 헤집는다. 만화같은 인생역전 스토리가 아니라 이태원의 근간이 되는 밑바닥부터 헤집으면서 그들의 유대와 삶을 보여준다. 이태원이 어떤 동네이며, 어떤 기반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성장했는지, 이 이야기의 구성과 인물들이 명확히 보여준다. 그래서 이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이태원 클라쓰'다.
6. 영화에서는 치타(김은영)가 노래하는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한다. 총 러닝타임이 92분임에도 체감상 거의 10분 이상은 치타가 노래하는 장면으로 꾸며졌다. 기분탓인지 몰라도 치타가 노래하는 장면은 유독 정성스럽다. 사운드부터 카메라, 배우를 감싸는 화려한 조명까지, 뮤직비디오에 가까울 정도로 치타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잉그리드 버그만을 찍을 때도 이렇게 정성을 들였나 돌아보게 될 정도의 장면들이다. 카메라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게 이런 기분인지 궁금하다. 게다가 영화에 삽입된 음악만 10곡 가량 되는 듯 보이는데 그 중 단 1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치타의 노래다(치타가 작사, 작곡에 참여한). 감독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연인에게 헌정하는 영화'라고 이해할 생각이다. ...남연우 감독....멋있네.
7. 결론: 엄마 캐릭터가 다소 과해서 편하게 못보는 사람도 있을거라 생각된다. 그런 엄마 캐릭터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된다. 마지막 노래가 나오기 전 대사가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그것만 빼면 꽤 재미있는 영화다. 특히 짧은 러닝타임에 걸맞게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추신1) 이 시국이 이태원 트랜스클럽이 등장하는 영화의 개봉을 밀어붙인 제작사의 패기에 박수!
추신2) 박종환, 임화영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이승원 감독이 조연출로 참여한('해피뻐스데이', '소통과 거짓말'의 그 이승원 감독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함) 이 영화를 보고 있으니 작년 부천에서 봤던 재미있는 영화 '팡파레'의 개봉이 더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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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덕의 탠션이 엄마와 동급으로 살아나는 장면은 블루가 되어 노래부르는 장면. 치타 본연의 가수가 되었을때 그 갭이 매워집니다.
탠션의 고저차가 아주 심하게 느껴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