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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수다 [인상적인 2019 한국독립영화] '윤희에게' 후기 (스포)

윤희에게.jpg

 

오래 전, 윤희(김희애 역)와 쥰(나카무라 유코 역)은 이별을 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윤희는 한국에서 남편과 이혼한 후 딸 새봄(김소혜 역)과 함께 살아가며,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쥰은 일본에서 고모(키노 하나 역)와 함께 살아가며, 수의사로 일하고 있다. 사는 곳도, 동거인도, 직업도 다른 둘은, 이제 영영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영영 다른 길을 걸을 것만 같다. 그래서, 영영 만나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기억하고, 또 추억한다. 둘의 만남이 과거의 일이 되었다고 해서, 서로에 대한 추억마저 과거로 남은 건 아니다. 오히려 추억은, 과거를 넘어 현재까지도 지속된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가끔씩 생각나는 그 추억의 기억을, 우린 막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윤희에게>는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영화며, 나아가 과거와 현재를 이으려는 영화다. 과거와 현재는 서로 다른 시간대지만, 실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과거의 일이 지나갔다고 해서 그 일이 현재 없어지거나 잊혀지는 게 아니다. 과거란 끊임없이 현재에 의해 회고되고 소환된다. 그렇게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잇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동원하는데, 크게 세 가지의 장치가 있다.


첫번째 장치는 '편지'다. 편지는 다른 공간에 있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할 뿐 아니라,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과거를 공유하면서 그들의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기도 한다. 쥰이 윤희에게 보낸 편지에는, 쥰의 현 상황도 담겨있지만, 윤희에 대한 쥰의 마음도 담겨있다. 그 마음은 과거의 추억에서 비롯된다. 단지 편지를 주고받는 행위만으로, 발신자와 수신자의 서로 다른 시공간이 연결된다.


두번째 장치는 '사진'이다. 사진은 과거의 순간을 찍어 현재까지 지속시키는 물건이다. 그래서 사진은 현재의 인물에게 지나간 과거를 보여줄 수 있다. 현재의 관찰자가 사진을 보는 행위만으로, 사진 속 과거의 대상은 현재에 소환된다.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윤희는 앨범의 지나간 사진들을 펼쳐보고, 쥰은 기억하고 싶은 대상을 액자에 끼워 보관한다. 사진은 대상과 관찰자의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한다.


중요한 건 세번째 장치이다. 쥰은 윤희에게 보낼 편지를 쓰지만, 그걸 쉽게 부치지 못한다. 그렇게 책상에 머물러있던 편지는, 쥰의 고모에 의해 우체통에 들어간다. 윤희는 홀로 딸을 부양하며 생계를 유지하느라, 쥰의 행방을 진작에 잊어버리고, 쥰을 만나러 갈 여유조차 갖지 못한다. 그렇게 무기력한 윤희를, 미리 편지를 읽은 딸 새봄이가 일본으로 데려간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세번째 장치는 바로 '현재의 인물'이다. 과거의 중요함을 아는 사람 말이다. 공교롭게도 윤희와 쥰의 재회를 계획하는 새봄이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그리고 새봄의 연인인 경수(성유빈 역)는 망가진 옛것을 다시 수리하는 ‘리폼’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다. 옛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과거를 수리할 수 있다. 그렇게 새봄이는 과거의 윤희와 쥰의 단절을 다시 이어보려고 한다.


사실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과거를 그저 과거로 치부하고 살면, 과거는 그저 잊혀지고 말테다. 과거를 후회하되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그저 기록으로만 남고 말테다. 하지만 과거를 현재에 다시 불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는 지나간 과거를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봄이는 과거를 다시 불러내는 자다. 그는 엄마의 외로움의 근원을 어떤 편지에서 찾아내고, 그 외로움을 해소시키기 위해 과거의 연인을 소환시키고자 한다. 이건 윤희나 쥰이 스스로 해내지 못할 일이다. 둘은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너무 늦었고, 또 과거를 너무 먼 존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새봄이에게 둘이 재회하도록 하는 역할을 준다. 잘못된 과거를 수리할 수 있는 자는, 과거의 존재보단 현재의 존재이기에.

 

 

 

 

-

작년에 인상적인 한국독립영화 중, <윤희에게>에 대해 썼던 후기를 뒤늦게 공개해봅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는데, 일단은 당시 썼던 후기 그대로 올려봅니다.

추천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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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댓글을 많이 달아야 레벨업을 할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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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스톰루이스 2020.04.05. 21:53
과거와 현재를 이을려는 영화라는 평이 정말 좋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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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펜슬 작성자 2020.04.07. 14:05
스톰루이스
글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이 영화가 퀴어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했고, 그 의미가 새봄이라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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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Landa 2020.04.05. 23:07
저도 며칠전에 넷플릭스로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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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펜슬 작성자 2020.04.07. 14:05
Landa
왓플과 넷플에서 너무 빨리 올라와서 놀랐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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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피프 2020.04.06. 01:40
저도 참 좋게 봤었네요.
저는 다시금 다가오는 사랑을 밀어내는 쥰의 이야기가 안타까웠는데.. 과거의 상처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그녀의 상처는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고 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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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펜슬 작성자 2020.04.07. 14:07
피프
영화가 인물들의 그 안타까운 처지와 현실을 위로하려는 태도가 너무 인상적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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