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렌스 맬릭 '어 히든 라이프'의 실제인물 프란츠 예거슈테터
프란츠 예거슈테터
테렌스 맬릭의 신작인 '어 히든 라이프'는 2차대전 당시 양심적 전쟁반대자로 나치에게 사형을 당한 프란츠 예거슈테터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프란츠 예거슈테터는 결혼한지 3년 째 되던 해인 1940년 자국 오스트리아를 강제병합한 독일군에 징집되어 1년 동안 기초군사훈련교육을 받은 뒤 고향으로 되돌아왔지만 전쟁이 치열해진 1943년 재차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되었고 그간 고심해온 신앙적 양심에 따라 히틀러에 대한 충성 서약과 징집을 거부하면서 곧 반역죄로 교도소에 갇히어 모진 고초와 핍박을 당하게 되죠.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사형을 언도받는 순간까지 나치에 굴복하지 않고 의연히 단두대행을 선택합니다.
그가 처형되기 전 수감돼있던 베를린의 테겔 감옥
슬하에 남겨진 가족들은 고향에서 가장이 명령을 거부하고 전쟁 반대자로 낙인 찍힌 나머지 당시 나치정부가 지급하던 보조금과 혜택도 몰수 당하며 이웃들의 박해와 멸시를 당하지만 사형을 언도 받으며 겨우 면회가 허락돼 찾아간 감옥에서 아내는 용서를 구하는 남편에게 슬퍼하고 탄식하긴 커녕 옳은 일을 하시라며 굽히지 않는 절개와 용기로 남편을 끝까지 응원해줍니다.
감방에서 굶주리는 동료수감자들에게 자신은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하다며 자기 몫의 음식을 내어주고 곧 사형을 앞둔 순간에도 다른 사형수가 연인에게 작별선물로 꽃을 보내고 싶어하자 아내에게 편지로 대신 꽃을 좀 보내달라 부탁할 만큼 자비롭고 다정다감하였던 프란츠 예거슈테터는 죽은 뒤 60여년이 흘러 2007년 10월 교황청의 베네딕토 16세로부터 복자(성인 전 단계)로 시복되죠.
1942년 나치의 전쟁과 광기에 휩싸여가는 고국의 현실을 애통해하며 언젠가 닥쳐올 재징집 앞에 신앙의 양심과 진실을 고민하던 그는 나치당에 충성해 수많은 기부금을 자발적으로 내다바치는 조국 오스트리아인들의 행태를 보고 침략자들에게 빼앗기는 건 돈이나 재물이 아닌 인간의 영혼이란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씁니다.
“나는 국가사회주의(나치즘) 기차에 올라탄 사람들에게 울부짖고 싶다. ‘당신의 생명을 바쳐야 하는 마지막 종점에 도착하기 전에 그 기차에서 뛰어내려야 합니다!’"
그는 그렇게 불의한 시대에 맞서 자신의 목숨을 내주면서 더 큰 영혼의 생명을 구해냅니다.
2007년 프란츠 예거슈테터의 바티칸 시복식 장면
2019년 '어 히든 라이프'의 바티칸 교황청 특별상영회
나치 군인이기를 거부한 복자, 프란츠 야거스타터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24
프란츠 야거슈테터: 감옥으로부터의 서신과 글들 - 안나 브라운
"말씀은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말들의 실제 의미를 보여주는 것은 개인의 모범이다.
사람들은 현대세계에서 … 모든 암흑 속에서도 명료함, 통찰, 그리고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 증오 한 가운데에서도 마음의 가장 순수한 평화, 용기, 헌신을 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싶어 한다."
"사랑이라는 겉옷은 예수의 제자들이 입는 '제복'이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들이 지닌 사랑으로 알려질 것이다."
ㅡ 1943년 8월 9일 처형 당하기 전 감옥에서 쓴 글들
그 이야기를 영화로 옮긴 테렌스 맬릭의 '어 히든 라이프'는 이미 2016년 촬영을 끝마쳤지만 그의 수 년에 걸친 기나긴 편집작업 스타일 탓에 영화는 2019년에야 공개되었습니다.
아직 국내에는 상영되지 않아 어떤 영화인지 확실히 알 순 없지만 그의 전작들에 비춰 볼 때 영화적 특징이 마치 다큐처럼 화면과 연동되지 않고 별개로 덮어버리는 보이스 오버와 영화 영상이라기 보다 잔영이라 불러야 될 것 같은 불규칙적이고 명상적인 이미지 서술방식은 그만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면 장면이 연계되지 않고 늘 점프컷하며 마치 영상을 서사라는 전시장 속에 전시해놓는 듯한 그의 독특한 영상연출과 편집방식은 잘 살펴보면 인간 기억의 형상을 따른 면이 있습니다.
어느 상황에 대한 인간의 기억이란 결코 녹화된 영상처럼 연속적이지 않고 특정한 감정적 순간에 의해 중폭되어 이어지는 움직임 보단 한 인상 혹은 순간으로 각인되기 때문이죠.
흔히 거장의 예술영화라 하면 정적이고 무게감있는 롱테이크가 기본 소양인듯 떠오르는데 오히려 그는 이처럼 정반대로 예측불가한 가변적인 상황 전개와 오히려 난삽한 것 아닌가할 정도로 다채로운 테이크의 향연들이 마구 펼쳐져 마치 교향악적 합주를 연상시키곤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 또한 테렌스 맬릭의 영화는 전혀 영화적이지 않은 독백의 보이스 오버를 위주로 서사를 전달합니다.
그는 이야기란 가공의 소설이나 대본극처럼 우리 실제 삶에 드러나는 모습(영상)과 실시간으로 일치하면서 나열되어 동시적으로 전달되는 연극이 아니라 편린처럼 나뉜 그 인상과 순간들의 이면에서 나름의 사유와 이해들이 독립적으로 전개되어 나타나는 한 표현이라 봅니다.
단지 언어냐 이미지냐의 차이지 이미지만 무슨 표현이 되고 언어는 논리이기만 할 수는 없다라는 거죠. 본질적으로는 다 같은 표현 양식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그의 영화는 장면 장면을 관람자로 보아주길 바라지 않고 그 속에 함께 자리해주길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화자의 독백 아래 가시적 인물과 장소 나아가 네러티브 너머 모든 공간과 기억과 인상들을 이야기 속의 새겨진 잔상인양 열정적으로 좇아 비추이고 그렇게 이미지와 언어 간의 서로 맞물리지 않고 양립하는 대구법을 통해 도리어 서사는 인물과 사건과 그 연계의 작위성이 아닌 인물 내면의 감정과 마음에 더 깃들도록 의도합니다.
영화로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닌 관계를 짓는 것이죠.
뚜렷한 대본 없이 현장에서의 즉흥성과 치밀한 계산보다 자연스런 상황연기를 요구하며 영화작법과 다큐촬영의 경계를 허무는 그만의 연출법이 발휘되었을 신작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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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