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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맨] 간략후기

jimmani
3857 6 16

호러 명가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신작 영화 <인비저블맨>을 보았습니다.

톰 크루즈 주연의 <미이라>가 낙제점을 받은 이후 시들었던 유니버설의 '다크 유니버스' 세계관을

부활시킬 요량으로 <쏘우>, <업그레이드>의 리 워넬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1930년대부터 할리우드에서 다뤄 온 '투명인간'이라는 전통적 소재에 변형을 가합니다.

'투명인간이 된 사람'이 아닌 '투명인간을 느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주객을 바꾼 이 영화는

덕분에 익숙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매우 시의적절한 주제의식을 말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 심지어 아내까지도 - 자신의 통제 하에 두어야 하는 소시오패스 부호 남편으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는 얼마 후 남편 애드리안(올리버 잭슨 코헨)의

자살 소식과 함께 그가 거액의 유산을 자신 앞으로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세실리아는 애드리안이 죽은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형태로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애드리안과의 가정 생활로 인해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세실리아에게 이 상황은 실제일까요 환상일까요.

물론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답은 정해져 있겠습니다만, 영화는 극도로 불안정한

세실리아의 심리 상태에 주목하며 관객에게 심리 스릴러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문제는 세실리아의 심리 상태를 그 정도로까지 만든 존재가 다름 아닌 그의 남편이라는 건데,

여기서 <인비저블맨>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공포의 정수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공포영화 빌런이라면 대부분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존재들이겠지만, 특히 이 영화의 빌런인

애드리안의 경우 지금껏 본 공포영화들 속 빌런 중에서도 '상종 못할 쓰레기'로는 최상급에 들 만합니다.

애드리안이 세실리아를 괴롭히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세실리아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공포에 떨게 하고,

그 보이지 않는 형태로 세실리아가 아끼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해치며,

그 모든 걸 세실리아의 소행으로 몰아간 후, 결국은 세실리아를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만듭니다.

애드리안의 악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청하면 청할수록 악화되는 상황에

세실리아는 자기 때문에 타인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좌절감에 휩싸이고 자아는 점차 무너져 갑니다.

그렇게 세실리아를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려는 일련의 행각은 꽤 낯이 익은데,

바로 우리가 현실 속 뉴스들에서 만나는 '학대'라는 행위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짐작할 수 없으며, 쉽게 헤아리려 들지 않는 거대한 악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 세실리아가 겪는 고통과 현실에서 나타나는 학대 행위는 매우 비슷해 보입니다.

이렇게 <인비저블맨>은 투명인간이 아닌 투명인간에 맞서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고리타분한 고전 SF 스릴러의 리메이크가 아닌 시대에 걸맞은 화두를 던지는 사회파 장르물이 되었습니다.

당장 현대의 가장 유명한 투명인간 영화인 <할로우 맨>과 비교해도 좋을 것입니다.

당시에 나왔을 때에는 킬링 타임용으로 재미있거니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투명인간의 시선에서 관객의 관음증을 다소 노골적이고 저급하게 자극했던 이 이 영화와 달리,

<인비저블맨>은 학대를 가하는 존재가 눈 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두려움에 몸부림쳐야만 하는 학대의 피해자가 어떤 입장일지 어림으로나마 짐작하게 합니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져 투명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신묘함보다는 그 존재가 유발하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영화는 갑자기 허공을 떠돈다거나 하는 식의 의심스러운 카메라 워크와

예민하고도 둔중하게 대기를 둘러싸며 달팽이관을 때리는 음향효과로 뛰어나게 연출합니다.

한편, 미드 <하녀 이야기>로 잘 알려졌고 역시 블룸하우스의 작품인 <어스>에서도 모습을 비춘

엘리자베스 모스가 주인공 세실리아 역을 맡아 사실상 원톱 체제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남편으로부터 극심한 학대와 통제를 겪은 후 그 긴장 어린 공포감이 그만 몸에 배고 만 듯한,

외줄타기를 하듯 불안한 심정과 그것을 때로는 힘겹게 삼키고 때로는 힘차게 뱉어내는 태도까지

엘리자베스 모스는 세실리아가 처한 감정의 감옥을 생생히 표현하며 영화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인비저블맨>은 '보이지 않는 공포'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탁월한 서스펜스를 자아내지만,

그 보이지 않는 공포가 주인공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고 있자면 무서우면서도 즐겁기보다 도리어 열받습니다.

보이지 않기에 두려워 하면서도 무력해질 수 밖에 없는, 그런 마음에 휩싸이는 자신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되는

주인공의 수난을 보며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속 공포가 현실과 매우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가 끝나도 현실에 도사리며 사라질 줄 모르는 공포를 상기시키는, 사회를 향해 날카롭게 벼려진 호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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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6

  • NightWish
    NightWish
  • 최야2
    최야2
  • 진영인
    진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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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리 워넬도 파트너였던 제임스 완처럼 다재다능한 사람이네요.

09:30
20.02.28.
jimmani 작성자
golgo
<업그레이드>부터 다시 재능을 발휘하더니 이 영화로 만개하네요.^^
09:34
20.02.28.
profile image 2등
엘리자모스 연기가 죽이더라구요 영화가 좀 길었는데도 충분히 몰입되는
09:33
20.02.28.
jimmani 작성자
진영인
러닝타임이 긴 편인데 길다는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ㅎㅎ
09:34
20.02.28.
profile image 3등

업그레이드 재미있게 봤는데.. 인비저블맨도 잘 뽑혔나보군요^^

09:46
20.02.28.
jimmani 작성자
최야2
흥미로운 영화가 되실 겁니다.^^
10:40
20.02.28.
절대로 간략하지 않는데 ㅋㅋㅋㅋ

"고리타분한 고전 SF 스릴러의 리메이크가 아닌 시대에 걸맞은 화두를 던지는 사회파 장르물이 되었습니다."

오~ 아주 명쾌하며 논리적인 후기네요
진짜 잘 쓰셨네요
추천과 호감 댓글 받으시지요
09:50
20.02.28.
profile image
블룸하우스꺼 대부분 실망스러웠는데 그래도 항상 궁금하네요
10:07
20.02.28.
jimmani 작성자
베베베
걸출한 작품들이 더러 나오는데 이 영화가 그렇네요.^^
10:41
20.02.28.
profile image
크게 기대는 안했는데, 보이지 않는 공포를 제대로 맛본것같아요.
투명인간이 진짜 열받게 괴롭히더라구요 ㅋㅋ
10:45
20.02.28.
jimmani 작성자
NightWish
정말 어찌나 사람 빡치게 하던지 ㅋㅋㅋ
11:20
20.02.28.
오호 괜찮나보네요..

공포물을 잘 못보는편인데 관심이 갑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11:11
20.02.28.
jimmani 작성자
선바람
긴장감이 장난 아니더라구요 ㅎㅎ
11:20
20.02.28.
profile image
마냥 뜬금없는 호러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유관한 공포여서 좋았네요 ㅋㅋㅋ 후기 잘 읽었습니다
16:10
20.02.28.
jimmani 작성자
2작사
감사합니다^^ 블룸하우스의 사회 비판 의식이 잘 드러난 영화였죠 ㅎㅎ
16:55
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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