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6
  • 쓰기
  • 검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간략후기

jimmani
2881 5 6



전도연, 정우성 등 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보았습니다.

일본 작가 소네 게이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거액의 돈가방을 두고 벌이는

인간군상들의 피 튀기는 싸움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에 봐 온 범죄물과 다르지 않은 외형을 하고 있지만,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태도와 정서로 예상보다 경쾌하고 신선한 재미를 줍니다.

구구절절하게 들리는 제목의 첫 인상은 인물들에 대한 연민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게 연민이 아니라 오히려 조롱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돈가방을 둘러싼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사라진 연인 연희(전도연)로 인해 빚 독촉에 시달리는 태영(정우성),

가업이 실패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중만(배성우)과 아내 영선(진경), 어머니 순자(윤여정),

악하고 독한 고리대금업자 박두만 사장(정만식), 빚 때문에 남편의 외면과 폭력에 시달리는 미란(신현빈),

그런 미란에게 갑자기 다가온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까지. 저마다 돈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가 있는

이 사람들 사이로 돈가방의 행방이 럭비공처럼 이리저리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두뇌 게임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몇몇 인물들은 비범한 (혹은 극도로 비범한) 범죄자의 기질을 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단지 돈이 급했을 뿐인, 범죄에 발을 들이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이들이어서 두뇌 게임이 벌어질 환경이 아닙니다.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는 상황이 어쩌다 나타나긴 하지만 그게 다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테고요.

영화는 범죄 느와르라는 장르가 취할 수 있는 전형적 태도에서 한 걸음 떨어져,

우스꽝스럽고도 흉한 모습으로 표출되는 저마다의 욕망을 방관자적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간혹 범죄 느와르물들 중에서도 인물들이 지금 몹시 심각하고 비장한 상황임을 강조하고자

영화가 먼저 대사와 영상에 힘을 바짝 줘가면서 관객에게 어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좀 부담스럽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인상적인 것은 이런 얄궂은 비장미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마다가 돈이 필요한 상황임은 어련히 다 짐작되나, 영화는 그들의 상황에 몰입하지 않습니다.

전사를 친절하게 되짚어 주지도, 각자의 상황을 절절하게 토로할 시간을 딱히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돈가방을 향해 뿜어대는 욕망은 뭐라할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부정'이 될 수도 없습니다.

한번 똥을 밟거나 손에 피를 묻힌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하게 되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끝을 예고합니다.

타고난 싸이코패스부터 소심한 임시직 노동자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의 욕망이

드러내는 낯부끄러움은 영화에서 난데없이 속출하는 죽음들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영화는 부질 없는 욕망에 대한 냉소적인 드라마로만 보여지진 않습니다.

여러 인물들의 상황을 오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동시기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리는가 싶더니만

한 인물의 등장을 기점으로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 머리를 굴리게 만듭니다.

재조립되는 타임라인과 사건 속에서 이미 던져진 적 있는 단서가 있는지 되짚어 보게 되는데,

앞서 얘기했듯 돈가방을 둘러싼 인물들의 행보가 '짐승'처럼 무모한들 영리하진 않기 때문에

대신 이런 두뇌 플레이를 사건과 시간의 재배치로 영화가 도모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의지만 앞서도 생각은 덜하는 인간들의 행실에 헛웃음 짓다가 마지막에 이르는,

'야만적이고 부질없는 욕망'을 그리지만 그렇다고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듯한 결말은

꽤 센 캐릭터들과 사건이 등장하는 영화이면서도 비교적 부담 없는 오락영화처럼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인물들 저마다의 비중 차이가 좀 있습니다만, 머릿수만 채우지 않고 각기 다른 포지션에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배우들의 호흡이 만족스럽습니다.

얼굴을 여기서 전혀 쓰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정우성 배우는 '행정관'이라는 직함으로 불리면서도

그와 하등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보는 사람이 다 부끄러워지는 속물적 캐릭터를 한껏 힘 빼고 보여줍니다.

몇년 전에 나온 <아수라> 속 캐릭터와 비슷한 듯 하지만, 독기보다는 허영으로 똘똘 뭉쳐

먹고자 할 수록 먹히는 입장으로 향하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개인적으론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는 역시 연희 역의 전도연입니다.

영화 시작 후 50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때부터 영화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찌질한 욕망들의 싸움을 훨씬 더 예측불가능한 궤도에 올려놓는, 인물들 중 가장 힘을 빼고 있지만

가장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는 전도연 배우의 '연희'는 과장을 약간 보태자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배성우, 진경, 정만식, 신현빈, 정가람, 박지환, 윤제문 배우 등 각자의 고유 캐릭터 안에서

예측을 어렵게 하는 변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배우들의 날카로운 연기가 만족스런 앙상블을 만들어 냅니다.

중만이 일하는 호텔 지배인 역의 허동원 배우, 박사장의 심복인 메기 역의 배진웅 배우는

뜻밖의 순간에 극을 힘있게 뒤흔드는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하는 또 다른 공신들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짐승처럼 인정사정 없이 발현하는 욕망이 얼마나 허탈한 것인가

보여주는 듯 하나, 그렇다고 해서 헛헛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필요는 없는 오락영화입니다.

남의 싸움구경 하듯 돈가방에 이성의 끈을 놓고 달겨드는 속물들의 난장판을 재미나게 구경하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V자를 그리며 퇴장하는 승자의 모습을 유쾌하게 지켜보면 될 일입니다.

그 외에 어차피 이 영화에서 우리가 응원할 사람은 딱히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5


  • 소피아퐝
  • 우뢰매버릭
    우뢰매버릭

  • 無無
  • Krystal
    Krystal

  • 펄프무비

댓글 6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오 그렇고보니 바르뎀 만큼의 무시무시함은 아니지만 전도연 배우 캐릭터가 어딘가 모르게 안톤 느낌이 있었네욬ㅋㅋㅋㅋ
16:12
20.02.23.
jimmani 작성자
2작사
그렇더라구요 ㅎㅎ 바르뎀이 워낙 어마어마해서 그렇지 전도연 배우도 매우 무서웠죠 ㅎㅎ
16:16
20.02.23.
jimmani 작성자
우뢰매버릭
존재감이 대단했습니다 ㅎㅎ
22:03
20.02.23.
profile image 3등
너무 잘읽었습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네요! :)
19:40
20.02.23.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범죄도시 4] 호불호 후기 모음 2 익스트림무비 익스트림무비 1일 전08:38 11792
HOT 아놀드 슈왈제네거, 실베스터 스탤론과의 ‘라이벌 관계’가 ... 5 카란 카란 3시간 전15:24 548
HOT 시티헌터 넷플 공개(청불) 2 GI GI 34분 전17:58 339
HOT 앤 해서웨이, 할리우드에서 행하던 남성 배우와의 ‘궁합 테... 3 카란 카란 5시간 전13:29 1683
HOT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IMAX 개봉 확정 &... 2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6:56 301
HOT <스턴트맨> 4DX 효과표 공개 2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6:53 321
HOT CGV '스턴트맨' IMAX 포스터 증정이벤트 1 샌드맨33 2시간 전16:24 510
HOT 모르는 이야기 - 라이브러리 톡. 보러 오세요. 제가 진행합... 4 소설가 소설가 2시간 전15:54 242
HOT 남은인생10년 흥행감사 굿즈 수령했습니다 1 카스미팬S 2시간 전15:48 239
HOT 유태오 에스콰이어 1 NeoSun NeoSun 2시간 전15:35 323
HOT 챌린저스 노스포 짧은 후기 6 사보타주 사보타주 3시간 전14:45 743
HOT <악마와의 토크쇼> 메인 예고편 공개 3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13:58 808
HOT 범죄도시4 (2024) 한 획을 그은 액션영화. 스포일러 약간. 14 BillEvans 4시간 전13:33 1497
HOT 존 로건,코맥 맥카시 소설 '핏빛 자오선' 각색 2 Tulee Tulee 5시간 전13:32 445
HOT 케이트 베킨세일-스콧 이스트우드,드라마 <스톨른 걸>... 1 Tulee Tulee 5시간 전13:32 393
HOT 범죄도시4 불호 리뷰 - 돈에 미친 시리즈 5 Opps 5시간 전13:23 2184
HOT 박해수 인스타 - 연극 '벚꽃동산' 캐릭터 포스터... 2 NeoSun NeoSun 5시간 전13:00 602
HOT <아토믹 블론드 2> 현재 진행 상황은? 4 카란 카란 6시간 전12:10 867
HOT 넷플 5월 신작 4 NeoSun NeoSun 6시간 전12:02 1163
HOT Sweet smell of success (1957) 가장 느와르적인 걸작. 스포... 4 BillEvans 6시간 전11:46 504
1134024
normal
토루크막토 3분 전18:29 27
1134023
image
NeoSun NeoSun 26분 전18:06 98
1134022
image
NeoSun NeoSun 32분 전18:00 139
1134021
image
GI GI 34분 전17:58 339
1134020
image
NeoSun NeoSun 37분 전17:55 120
1134019
image
NeoSun NeoSun 52분 전17:40 610
1134018
image
카스미팬S 56분 전17:36 113
1134017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7:31 143
1134016
image
시작 시작 1시간 전17:16 684
1134015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7:08 173
1134014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6:56 301
1134013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6:54 264
1134012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6:53 321
1134011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16:52 134
1134010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16:51 264
1134009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16:48 138
1134008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6:43 265
1134007
image
서래누나나도죽여줘요 서래누나나도죽여줘요 1시간 전16:42 404
1134006
image
샌드맨33 2시간 전16:28 280
1134005
image
샌드맨33 2시간 전16:24 510
1134004
image
소설가 소설가 2시간 전15:54 242
1134003
image
카스미팬S 2시간 전15:48 239
1134002
normal
접속영화여행 2시간 전15:38 134
1134001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5:35 323
1134000
image
카란 카란 3시간 전15:24 548
1133999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5:18 227
1133998
normal
사보타주 사보타주 3시간 전14:45 743
1133997
normal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14:20 162
1133996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4시간 전14:19 349
1133995
normal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시간 전13:58 808
1133994
normal
BillEvans 4시간 전13:33 1497
1133993
image
Tulee Tulee 5시간 전13:32 445
1133992
image
Tulee Tulee 5시간 전13:32 393
1133991
image
Tulee Tulee 5시간 전13:31 160
1133990
image
Tulee Tulee 5시간 전13:31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