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단평(스포X)
<007 스펙터>에서 삐끗했던 샘 멘데스가 수작을 들고 왔군요. CGV 용산 아이맥스 관에서 관람했습니다.
아이맥스가 시네마스코프 일반관보다 상하 26% 더 많은 정보를 보여주죠. 더 완전한 미학적 의도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장점은 있습니다.이 영화가 줄곧 담아내고 있는 것은 전장, 배틀필드입니다. 포격의 상흔과 썩어 가는 시체들이 진흙범벅의 대지와 동화되고 있는 곳. 하단부를 13% 더 보여줌으로써 그 전장을 조금 더 관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왜 많은 전쟁영화에서 최후의 순간에 장병들은 어머니를 부를까. 그 심정을 감히 다 헤아리진 못하지만, 결국 근원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에게 생명을 준 잉태의 근원. 구슬픈 부름을 끝으로 꽃다운 생은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전쟁터란 개인의 자유의지가 사멸하고, 우연과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공간이죠. <1917>은 아주 가느다란 의지의 끈을 이어나갑니다.
앞에서 거의 집어넣지 않았던 총소리가 갑자기 터져 나올 때 효과적인 충격이 있습니다. 실제로 군대 등에서 라이플을 격발하면 공포스러울 정도로 소리가 우레 같거든요. 병기의 무서움을 관객들도 소리로 체험하게 됩니다.
의외로 이 영화는 편집점이 많습니다. 예민한 관객들은 끊어가는 포인트를 어렵지 않게 눈치챌 것입니다. 그걸 찾는 재미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겠죠.
이 작품이 전쟁영화사의 상석에 자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촬영에서의 탁월한 기술적 성취에도, 이야기 자체는 오랜 전통의 전쟁영화 클리셰로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익숙한 흐름입니다. 1차 세계대전에 대한 거시적 담론보다는, (진짜 리얼타임은 아니지만) 리얼타임에 가까운 체험을 감각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몇몇 순간은 경이적이기도 합니다.
샘 멘데스 감독은 이 영화를 1차 세계대전 전령이었던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바쳤습니다. <1917>은 배틀필드 위를 횡단하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어떤 믿음과 의지가 동반된 여정이라면, 그것 또한 순례일 겁니다.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가 헤르메스의 흔들리지 않는 동반자가 되어 줍니다. 의지하는 롱테이크로써.
“전장의 헤르메스와 함께 순례하는 카메라”
★★★☆
텐더로인
추천인 8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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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후기입니다. 내용 구조를 중시하는 제 취향은 아니지만 기술의 구현으로 관객의 유사 체험을 극대화한 영화같아요. 그런데 평은 저와 같은 3.5/5라 살짝 놀랐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