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단평(스포x)
이미 보실 분들은 다 본 영화일 텐데 뒤늦게 관람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한 번 더 울려 퍼지는 주술 같은 곡 ‘La Jeune Fille en Feu’을 듣고 싶어서요.
아래는 스포없는 단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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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뇌리에 강렬하게 자리 잡을 녹색의 옷이 나왔다. 작년 <지구 최후의 밤>의 완치원(탕웨이)이 녹색의 원피스를 둘렀다면, 올해는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녹색 드레스가 내 눈에 환영처럼 박힌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가 미세하게 놀리는 붓 터치처럼,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존재들을 매만지는 영화.
처음 그녀가 그렸던 엘로이즈의 초상화는 쇼윈도와 같은, 진실을 가려둔 채 박제될 이미지. 다시 그린 초상화에서 모델은 마침내 스스로 자리에 위치한다. 상대의 눈에 아로새긴 실루엣과 포갠 두 손. 서로를 응시하며, 기억하며, 진짜 주체가 캔버스를 채운다.
책을 낭독하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나온다. 오르페우스 신화의 슬픈 이별이야기. 이 이야기를 공유하는 세 인물은 세 가지 버전을 제시한다. 하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연인으로서의 실책. 그리고 기억하는 시인으로서의 선택. 또 다른 하나는 그 비극의 선택이 오르페우스가 아닌 에우리디케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어떻겠냐는 가정이다.
입고 있던 드레스의 색만큼이나 거리감 있던 두 여인은, 파도로 부서진 자연이 빚은 예술품인 기암괴석 아래서 서로의 마음을 좁힌다. 이 아름다운 해변은 그들의 격정적 본성을 발굴하고 두 존재를 자연의 곁으로 돌려보낸다.
인상적인 마지막이 준비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 계절 여름. 아마도 이들의 내면에서 폭풍우처럼 지속할 계절. 비발디의 ‘사계’ 여름 3악장이 휘몰아치며 롱테이크로 새기듯이 담아내는 클로즈업이다.
아마 그들의 인생에서 쉬이 지울 수 없으리라. 몰아치는 파도처럼, 타오르는 불꽃처럼, 시대와 제도의 굴레를 초월해 서로에게 자리한 격렬한 본심. 그 각인, 그 기억, 그 이미지.
'타오르고 파도치는 격정의 본성. 승화되는 존재의 이미지'
★★★★
텐더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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