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에릭 클랩튼 팬이 본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 (약스포)
※ 가급적 스포일러가 없도록 돌려 표현했습니다만, 영화의 전개에 대한 서술이 상당 부분 있으니 관람 예정이신 분들은 유의해주세요.
에릭 클랩튼을 사랑하게 되었던 2007년 1월 23일의 'Layla',
그로부터 꼭 13년이 흘렀네요.
에릭 클랩튼을 스크린에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2010년 씨너스 이수에서 특별상영했던 <제프 벡 로니 스콧 라이브>에 잠깐 얼굴을 비추었던 이후로 처음인데요. 에릭 클랩튼의 팬으로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의 개봉을 기다렸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다큐는 썩 매끄럽게 만든 편은 아니에요. 락과 블루스의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초반에 몰려드는 인물명과 그룹명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에릭 클랩튼의 음악 세계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고 할 수도 없는데요. 다큐는 그의 삶 전반을 시간 순서대로 훑어가다가 중요한 부분에 이르자 이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방식을 택합니다. 중반부터는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 명 - 어머니와 한 여인, 그리고 아들 - 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타의 신'이 아닌 인간 에릭 클랩튼을 조명하기 시작하죠. 그 과정에서 편집이 뚝뚝 끊기거나 인과 관계가 모호하게 묻히는 점이 아쉽습니다. 에릭 클랩튼의 삶을 뒤흔들었던 스캔들 및 사고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아실 테지만, 아예 백지 상태로 관람하신다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음악 부분을 살펴볼까요. 초반 몸담았던 밴드를 차례차례 소개하면서 각기 대표곡들이 흘러나오고요. 중반부로 접어들고부터는 특정 상황에 집중한 곡 선정을 보여줍니다. 전체적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저의 최애곡 'Layla'의 제작 과정을 상세히 풀어놓으면서 그에 맞추어 감각있는 곡 전개를 해줘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지만요.
어찌 보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의 에릭 클랩튼의 사진이며 소소한 영상, 공연 실황, 녹음분을 비롯하여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음성들까지 귀한 자료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마치 그의 지난 삶을 바로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느낌이 드는데요. 누구보다 굴곡있는 삶을 살았지만 그 삶의 모습과 방식이 일반 관객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는 모르겠어요. 팬인 저조차도 아이고야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게 한두번이 아니던데... 이제 와서 숨길 것이 있겠냐만은 너무 솔직하십니다 하하.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음악이 아니었다면 에릭 클랩튼은 삶의 끈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겠죠.
저처럼 에릭 클랩튼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만 봐도, 기타 리프만 들어도, 지판 위를 거니는 손가락만 봐도 황홀하다 하시는 분, 크림색 자동차를 사서 이름을 크림으로 붙여야지 하는 분은 만족하실 겁니다. 관람 전엔 '블랙키 배지 만들어줘여 징징' 했는데 음... 다큐를 보고 나면 음악과 함께 살아온 한 사람만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재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 관련 전시가 진행중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이대로는 아쉬우니 요 아래로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 몇 가지. 궁금하신 분들은 긁어주세요.
* 객관적으로... 그리고 사심으로...... 'Sunshine Of Your Love' 틀어줘여~ 'White Room' 틀어줘여~
* 유년 시절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 간단하게 언급되고 끝나나? 했는데 뒤에 다시 나오긴 하더군요. 이렇게 시간을 넘나드는 편집은 처음 한 번은 괜찮았는지 몰라도 그 이후로는 영 별로였어요. 딱히 효율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뒤죽박죽인 느낌을 주더라고요.
* 지미 헨드릭스의 사망에 이어 듀언 올맨의 사고가 나오면서 에릭 클랩튼의 방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겠거니 했는데 의외였달까요. 이후 패티 보이드와의 관계도 상당히 모호하게 처리된 부분이 있고요.
* 음악에 관해서는 대중에게 친숙한 'Slowhand'라는 별명에 대해 언급이라도 하고 넘어갔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솔로 전향 후 음악 이야기는 거의 없는 듯... 'Tears In Heaven' 이후에 크로스로드 센터 이야기로 넘어가는 패턴은 익숙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