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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수다 [페인 앤 글로리] 노스포 후기 (4.0/5)

'페인 앤 글로리'는 온 몸이 아프고 만사가 힘든 영화 감독이 오랜만에 다시 본 자신의 옛 작품을 통해 그 당시의 배우와 다시 만나고, 더 나아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이야기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이번 작품이 워낙 호평을 많이 받고 있었고, 다소 자전적인 영화라고 들어서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그의 대표작들을 많이 훑어봤다. 예상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그의 영화인으로서의 커리어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긴 했으나, 그의 대표작들을 순서대로 보며 알모도바르라는 영화인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자신만의 색깔과 강점과 목소리를 찾아가고 확립하는 과정을 본 느낌이 들었다. 그 덕에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현재의 알모도바르를 나타내는 아바타를 꽤나 오래동안 지켜본 듯한 인상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됐다.
 
알모도바르는 자신의 성장 환경과 성 정체성과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부터 언제나 영감을 받아온 감독이었다. 다시 말해, 그의 창작은 언제나 굉장히 개인적인 곳에서부터 시작했다. 그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진화했고, 다양한 장르들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그의 이야기에서는 언제나 비슷한 소재, 혹은 자기가 이미 다룬 이야기들에 대한 레퍼런스들이 많았다. 그런 것 또한 그의 영화를 보는 데에는 일종의 재미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 중 가장 사적이고 자전적으로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성장 환경, 성 정체성과 스페인이라는 알모도바르의 키워드들은 이번 영화에서 훨씬 직접적인 캐릭터들과 에피소드들로 표현되며, 알모도바르라는 인물과 연관짓기에는 익숙하면서도 그의 영화에서는 본 적이 없는 듯한 신선한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제 70대에 접어든 알모도바르는 세계적인 감독이 된 현재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며, 여기까지 오면서 그라는 인간과 정체성, 그리고 이들의 가장 그답고 예술적인 표현이었던 작품들이 어떻게, 특히 누구와 만들어졌는가를 사색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의 시간과 인생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그 물을 바라보며, 수면에 비춰진 자기 자신의 거울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수면 뒤에 있는 자신의 내면을 투시하며, 자신의 욕망, 열정, 그리고 생명성이 한방울 한방울 모여 이뤄낸 거대한 호수 속에서 명상을 한다. 어떤 기승전결을 가진 이야기보다는 소소한 사건들과 만남들이 계속 벌어지는 일상물 같은 이야기를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으로 전개하는 그의 느슨하고 여유있는 스토리텔링은 정말 일품이었다.
 
알모도바르 영화 중에서는 신선한 축에 속하긴 해도, 역시나 알모도바르 영화라고 느껴지는 지점은 바로 그의 트레이드마크 스타일에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유연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강렬한 원색 위주의 팔레트. 원색 중에서도 빨강을 제일 좋아하고 파랑을 그 다음으로 쓰는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빨강에 대한 사랑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그의 원색들은 욕망과 강한 열정을 표현하는 수단들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쓰이는 것 같다. 도화지처럼 새하얀 과거의 집을 조금씩 색깔로 채워가고 있는 반면에, 현재의 집은 이미 색으로 가득 차있지만 공허하게 느껴진다. 알모도바르는 노년에 이른 자신이 가진 예술적, 인간적 허무함을 그동안 이뤄낸 화려한 경력과 시각적으로 대비시키며, 오히려 그 화려함이 있기 전에 모든 것이 새로웠고 따스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는 단순히 한 노인의 허망함에 대한 신세 한탄을 담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자신의 뿌리와 원천을 다시 떠오르며, 이제 보니 더 깊게 이해가 되며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는 한 사람이 전진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알모도바르 영화 중에서는 흔치 않게 (어쩌면 처음으로?) 디지털로 촬영됐다. 사실 그의 영화들을 보며 이렇게 색깔을 좋아하시는 분이 왜 디지털 진영으로 안 갔을까 다소 궁금하긴 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디지털을 쓴 이유도 미래지향적인 이야기와 본인의 방향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알모도바르의 대표 뮤즈들인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페넬로페 크루즈는 모두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맡으며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좀 더 메타적인 감동을 더한다. '아이리시맨'에 로버트 드니로와 조 페시가 출연한 것과 엇비슷한 느낌이랄까. 특히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절제됐지만, 카리스마와 감정과 표현이 가득한 연기는 그야말로 월드클래스였다. 무기력한 늙은이를 연기하고 있음에도, 강한 자아와 꿈틀대는 열망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비록 폭발적이고 화려한 연기는 없더라도, 말 없이도 표정과 눈빛만으로 캐릭터 이상의 마법을 보여줬다. 조연들도 모두 정말 훌륭했으며, 특히 레오나르도 스바랄리아가 반데라스와 보여준 호흡은 정말 놀라웠다. 여기에 카르멘 마우라나 로시 데 팔마까지 출연했다면 완벽했을 것 같다.

 

4.0/5

추천인 3

  • nosurp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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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lgo
    golgo

  • 멜레니

에라이트 에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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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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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golgo 2020.01.21. 23:57

멋진 후기 잘 봤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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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nosurprise 2020.01.22. 00:04
재밌게 읽었습니다~
반데라스 진짜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겠네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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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2작사 2020.01.22. 00:58
알모도바르 감독 전작들 복습하고 관람하러 가야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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