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은총으로] 간략후기
작년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곰상)을 수상한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신작 <신의 은총으로>를 보았습니다.
프랑스의 한 저명한 신부가 오랜 기간 저지른 아동 성학대 사건과 이를 알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만든
공동체인 '라 파롤 리베레'(해방된 목소리)에 관한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그간의 작품들에서 보여 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연출 스타일을 구사하는 가운데,
인간의 존엄을 기만하는 사건에 대해 한시도 흥분하지 않은 채 한 사람의 고독했던 외침이
공동체의 큰 움직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침착하게 추적합니다.
시끄럽게 감정을 일으키는 대신, 조금씩 동요하여 솟구치는 동요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인물을 중심 축으로 삼아 전개됩니다. 시작은 알렉상드르(멜빌 푸포)입니다.
알렉상드르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어린 시절 자신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프레나 신부가
아직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와의 대면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프레나 신부는 단지 그 모든 것을 과거로 치부하려 하고, 결국 알렉상드라가 신부를 고발하면서
한 명에만 국한되지 않았던 프레나 신부의 추악한 행적이 드러납니다.
이어서 등장하는 프랑수아(드니 메노셰)와 에마뉘엘(스완 아르라우드)이 프레나 신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의 모임인 '라 파롤 리베레'를 조직하고 여기에 참여하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개인의 외로운 투쟁에서 공동체의 연대로 나아갑니다.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소재와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연상케 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런 끔찍한 사건이 비슷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새삼 비극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다만 <신의 은총으로>는 사건을 실제로 겪은 사람들의 시점에서 전개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현대인의 숨겨진 욕망을 발칙한 컨셉 안에서 들춰내던 기존의 연출 방식을 버리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어떤 형태로든 전시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한 채 고통 받는 그들의 현재에 주목합니다.
어쩌다 플래시백으로 나타나는 사건 당시의 순간도 고스란히 재현되는 대신
피해자들을 현재까지도 망령처럼 쫓아다니는 (굳이 그 순간까지 파고들지 않아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그때 그 시공간의 기운, 분위기를 소환하는 것까지만 수행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관객이 피해자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사건으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서슬퍼렇게 살아 있는 종교 권력의 위선과 그로 인해 아물 줄 모르는 상처의 크기 때문입니다.
프레나 신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은 사람들은 '해방된 목소리'라는 이름의 공동체로 비로소 목소리를 내지만,
그 목소리를 들어주겠다고 나선 종교계는 그들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허탈하게 목소리의 기세를 꺾습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진심으로 이해한다면서도 끝내 가해 신부의 단죄는 거부하는 교구가 내세우는
'용서'라는 단어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열쇠가 아닌, 피해자들을 무릎꿇게 하기 위한 흉기가 되어 돌아옵니다.
아이였던 피해자들이 생각하기에 '신에게 가는 가교'와 같이 절대적인 존재였을 신부는
그 아이들로부터 유년의 순결을 폭력적으로 빼앗은 것을 넘어, 그 모든 행위의 명분으로
신을 들먹임으로써 신을 향한 믿음 자체를 빼앗아 갔다는 점에서 더욱 검고 짙은 악의 그림자를 가늠케 합니다.
그들에게 '신의 은총'이라는 말은 그 어둡고 큰 그림자를 위한 허울 좋은 가림막에 불과한 것이었을까요.
신을 향한 믿음은 그렇게 산산조각 났지만, 공동체를 이룬 피해자들은 사람을 향한 믿음 안에서 다시 일어섭니다.
영화는 신의 이름을 빌린 인간들로부터 참혹하게 기만 당한 이들이 인간으로 인해 다시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언뜻 다행스러운 흐름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이 지점에서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한번 더 예리한 지적을 합니다.
침묵 당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지만 그 속에서 종교를 향해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아직도 신을 믿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미처 흩어지지 못한 채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개인의 삶을 무너뜨린 것은 물론 한 세계, 우주에 대한 신념을 무너뜨린 이 반인륜적인 사건 앞에서
감독은 사회를 향한 분노에도, 연대하는 사람들에서 기인한 휴머니즘에도 섣불리 의지하지 않은 채
냉엄한 시선을 보내고 그 시선은 관객에게로 향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의 향방을 주시하게 합니다.
영화에서 누군가는 무례하게도 "신의 은총으로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들먹이는 '신의 은총'이라는 것이 악한 자들의 허물을 가리기 위한 요행이 아니라,
부디 약한 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비추기 위한 축복이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감독의 신중한 연출에 힘입은 침착하고 이성적인 접근, 동요할수록 감정을 곱씹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신의 은총으로>는 그렇게 왜곡되어 뿌리 내리려는 '신의 은총'을 절실하게 바로 잡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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