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익스트림무비 GV 시사회 후기
어쩌다 보니 올해 첫 관람하는 한국영화가 [남산의 부장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현재까지는 제게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인데, 아마도 연말에 가서 되돌아봐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올해는 제가 작년처럼 국내영화를 몇십 편씩이나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모더레이터 김종철 편집장 - 스페셜 게스트 김충식 원작 작가 - 우민호 감독
1. 영화에서 가장 먼저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지점은 장르적 선택이었습니다. 다카키 마사오 - 김재규 - 차지철의 삼각관계 권력 구도를 다루는 쫀쫀한 정치 드라마 속에 김형욱 사건을 하드보일드한 에스피오나지 장르로 연출하면서, 에피소드끼리 서로 잘 맞물리도록 교직되어 있습니다. 그 덕에 역사적 사실에 최대한 충실하면서도 탄탄한 내러티브를 갖출 수 있었던 동시에 각 캐릭터에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를 쫓는 재미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모두가 아는 1979년의 '그 때 그 사람들의 그 이야기인 덕도 있을 테고, 물론 원작이 논픽션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 원작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는 있겠습니다만, 우민호 감독이 똑같은 시대 다른 인물의 실화를 다뤘던 전작 [마약왕]에서 소홀했던 지점들이 이번 작품에서는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된 것은 분명 이런 선택이 주효했을 것입니다.
2.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등의 주연진은 모두 원하는 퍼포먼스를 뽑아낼 것이라고 맹신해도 되는 배우들입니다. 실존 인물과의 '닮음'을 연기해낸다는 표현이 GV에서 나왔는데(기자 간담회 때도 언급이 된 모양인데 특히 이성민의 '닮음'은 놀랍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그런 배우들을 기용하면서 배우의 연기에 많은 부분을 기대는 절제된 씬들을 자주 활용함으로써, 배우들을 돋보이게 만들고 교호적으로 캐릭터에도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특히 이병헌에게 온전히 내맡긴 라스트 씬은 백미입니다. 황망함의 끝에 오는 허망함(이 감정은 이병헌의 중정부장 캐릭터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고, 극 중 거듭 들어간 삽입곡에도 잘 묻어나옵니다.)을 표현해내는 데 있어서 이 씬에서의 이병헌의 연기에 필적할만한 사례는 좀처럼 찾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다시금 언급을 안 할 수가 없게 되는데, 기억해보면 [마약왕]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그러나 [마약왕]은 캐릭터의 설득력을 쌓는 데 부족했던 탓에 관객과 평단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그 전철을 밟지 않을 것만은 분명합니다.
3. GV 때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부름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만약 질문을 할 수 있었다면 이런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속에는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라며(캐릭터별로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되쏘는 대사가 유독 자주 등장합니다. '협박'이란 남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위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협'보다는 '내가 원하는 대로'입니다. [남산의 부장들]에는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싶어하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그래서 주요 캐릭터들이 각자 '내가 원하는 대로'를 관철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과 취하는 행동들에 집중해서 봐야 하는 영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걸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로 짐작하는 입장을 확인하고자 저 대사의 반복들의 의도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몇 번 곱씹어 봤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짐작 이상의 단계로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 스포일러를 적는 일의 부담이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 개봉 이후에 좀더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일반 관객 대상으로 하는 시사회로는 최초인 줄도 몰랐고, 주연배우 무대인사와 감독 및 원작자 GV까지 마련된 초호화 패키지가 될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좋은 영화를 최고의 구성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신 익스트림무비에 감사드립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았고
특정 색을 연출하지도 않아서 더 좋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