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츠》 스포일러 후기 : 장난으로라도 보러 가지 말 것
24일에 보러 갔습니다. 평론가들의 엄청난 혹평을 접한 후였던 터라 미리 무료 쿠폰으로 영화를 예매했고, 교통수단은 일체 사용하지도 않고 걸어서 갔고, 팝콘도 VIP 무료 쿠폰으로 사서 영화가 끝나기 전에 다 먹어치웠습니다. 그렇게 전 흉가 체험 공짜로 한다는 기분으로 영화를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저는 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서울 가서 포드 대 페라리를 한 번 더 볼 걸.’ 그래서 끝나자마자 카톡을 열어서 영화광 모임방에다가 보지 말라고 영화에 대한 온갖 욕을 했고, 부기영화 팬카페에도 혹평을 남겼고, 키노라이츠에도 (화를 꾹꾹 참아가며) 리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도 화가 안 풀리더군요. 그래서 브리 라슨의 캣츠 감상평을 보고 이거다 싶어서 익무에다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좋게 보신 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에 CGI 업그레이드 버전이 굳이 안 들어와도 괜찮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본전도 못찾고 망할테니까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더 안 하고 다른 이야기로 본격적인 시작을 하려 합니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모든 게 총체적 난국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심각하다고 느꼈던 세 가지만 딱 집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촬영 구도, 음악의 사용, 인물 묘사. 이 정도면 되겠죠?
캣츠의 촬영 구도를 잡는 게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는 거 잘 압니다. 원작 뮤지컬이 T. S. 엘리엇의 고양이 연작시를 모아서 만든 거라 줄거리에 딱히 큰 사건도, 큰 활약을 하는 캐릭터도 없거든요. 유명한 캐릭터라면 Memory를 부른 그리자벨라 정도려나요. 그래서 촬영감독의 고민이 매우 깊었을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촬영 구도가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는 건 직무유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름 원작 뮤지컬을 따라한답시고 한 시퀀스에 여러 캐릭터를 짧게짧게 잡아주는데, 이게 화려한 게 아니라 오히려 관객들 집중도만 떨어뜨리는 결과만 초래했습니다. 안 그래도 먹을 거 없는 잔친데 배분한답시고 찔끔찔끔 보여주기만 하니 뭘 어떻게 집중할 지도 모르겠고, 집중할 마음도 안 들더군요. 그래서 될 대로 되라 하는 식으로 참아야 했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은 좋습니다. 문제는 음악을 어떻게 사용했냐는 거죠. 저는 초반 5분 만에 성스루 뮤지컬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반주가 1초라도 안 들리면 죽는 것마냥 한 노래가 끝나자마자 또 한 노래가 들려오는데 그게 어떻게 성스루가 아닐 수 있죠? 끝까지 보니 영화 내내 노래를 부르진 않았지만 (중간에 댄스 타임 몇 분 가집니다) 톰 후퍼가 《레미제라블》로 큰 재미를 봤으니 이것도 비슷하게 연출하면 되겠지란 생각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캣츠의 빈약한 서사구조를 성스루로 보충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나올 법하죠. 근데 앞서 말했던 촬영 구도의 부재와 형편 없는 인물 묘사와 만나버린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음악도 멜로디가 좋은 거지, 그 멜로디를 표현하는 반주의 퀄리티가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초반에 클럽에서 들릴 법한 댄스곡 반주에서 어딘가 구리구리한 싼티를 맡았습니다.
제일 심각하게 까고 싶은 건 인물 묘사입니다. 고양이 인간이 끔찍하셨다고요? 넘어갑시다. 저는 고양이 인간의 모습에 딱히 큰 혐오감이나 공포감을 느끼진 않았어요.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나 멍커스트랩은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고요. (CGI 전문 유튜버들이 ‘디자인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 게 이해가 갔습니다.) 오히려 CG 털로 뒤덮힌 고양이 인간이 어설프게 고양이 연기를 하며 섹시한 척 하는 장면에 토할 거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제니애니도츠가 누워서 허벅지를 긁적거리는 것도 꼴 보기 싫고, 럼텀터거가 코트 벗는 장면은 그냥 내 눈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고, 쓸데 없이 허벅지를 강조하거나 이상한 숨소리 내면서 우유 할짝이며 먹는 장면에서는 그냥 속으로 욕만 했습니다. 안 그래도 비호감인 캐릭터에게 어설프게 섹슈얼함을 부여하려는 생각은 대체 어떤 양반한테서 튀어 나온 건가요? 그리고 누가 그걸 대체 왜 승인한 거고요? 이 세 가지 요소로 점철되어 이도 저도 아니게 된 영화를 끝까지 보려니 진짜로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맥캐버티가 후반에 코트 벗고 알몸으로 나오는 장면에서는 지금이라도 나갈까 말까 하고 고민을 엄청했네요. 결국 못하고 끝까지 보긴 했지만요. (올드 듀터로노미를 맡은 주디 덴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습니다)
제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이해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근데 이건 취향을 따지기 이전에,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영화 중에서는 최악입니다. 여러분, 이 영화는 절대 장난으로라도 보러 가지 마세요. 평론가들은 자기네들만 눈이 오염되는 게 억울해서 그렇게 평을 쓴 겁니다. 보고 온 제가 평론가들 심정을 절절하게 깨달았어요. 무료 쿠폰으로 볼 거면 그냥 《포드 대 페라리》를 보든가, 아니면 《미안해요, 리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집 이야기》같은 훌륭한 비주류 영화를 보고 입소문을 내주시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진짜로요. 굳이 노래 들으러 가실 거면 유튜브에 영화 OST 전곡 다 올라와 있으니까 그걸 들으세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위에 다 올라와 있습니다.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댓글은 언제나 환영하니 부담 갖지 말고 막 써주세요.
밀리어네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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