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분기 TOP 7
2019년 4분기 TOP7
2019년 4분기(9월~12월)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 중에 7편을 골라보았습니다.
작성 순서는 관람 순서입니다.
1. <조커> - 토드 필립스, 미국
이 영화, 생각보다 뜨겁고 고전적입니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올해 가장 화제가 된 영화입니다. 기대를 많이 하고 보았는데 기대만큼 좋았어요. 물론 윤리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위험한 지점에 서 있긴 하지만, 예술을 통해서 그런 도발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택시 드라이버>, <코미디의 왕>, <싸이코>, <너는 여기에 없었다> 등등 다른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굉장히 많아서, 무언가 새롭다기보다는 이미 있었던 것을 잘 활용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무엇보다 호아킨 피닉스의 미친 연기가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현존하는 배우 중에 계단 춤 장면을 그렇게 찍을 수 있는 건 이 배우밖에 없을 겁니다.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였어요.
2. <그녀들을 도와줘> - 앤드류 부잘스키, 미국
올해 놓치면 아쉬울 영화 1위입니다.
<텐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찍은 션 베이커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에 쉽사리 동정하거나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그 속으로 쑥 들어가 같이 살아보는 느낌. 이 영화는 탱크톱을 입고 음식을 서빙하는 스포츠 바 ‘더블 웨미’의 매니저 ‘리사’라는 인물의 어떤 하루를 다뤘습니다. 이런 열악하고 위험한 작업환경과는 별개로, 리사가 얼마나 유능한 상사이자 사람인지 내내 감탄하면서 봤어요. 그래서 안타까움도 같이 느꼈구요. 조연 배우들의 톡톡 튀는 협연과 쉴새 없이 움직이고 따라가는 카메라 연출도 아주 좋았습니다. ‘이들의 삶을 바꿔야 해.’라고 호소하지 않음에도 호소력이 있는 좋은 영화입니다.
3. <우리집> - 윤가은, 한국
성장과 이별은 참 얄궂은 단짝입니다.
9월에 때를 놓쳐서 못 보고 있다가, 10월에 굿바이 GV 표를 잡아서 보고 왔습니다. 덕분에 감독님, 배우분들 모두 만나고 왔어요. 다들 말씀을 워낙에 잘하셔서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왔습니다. <우리들>처럼 이 영화 속 아이의 말간 얼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어떤 장면은 너무 맑고 고와서 시간이 멈춘 느낌까지 들었어요. 그런 맑은 아이들의 세계에도 물론 고난과 모순이 있습니다. 주인공 ‘하나’는 자꾸 혼자 남의 짐까지 짊어지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 문제뿐만이 아니라, ‘유미’, ‘유진’ 자매의 문제도 자기가 해결하려 들죠. 그런데 영화를 가만히 보다 보면 그 짐이 ‘유미’에게 옮겨가는 인상을 받았어요. 결국 이 짐은 가장 착한 사람이 지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가장 약한 사람이 지게 되는 걸까요. 따스한 터치에 가려져 있지만 서늘한 그림자가 끝내 사라지지는 않는 영화였습니다. 올해 본 한국 영화 중에는 <기생충> 다음으로 좋았어요.
4. <경계선> - 알리 아바시, 스웨덴/덴마크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영화입니다.
시종일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그냥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야기의 힘을 이토록 절실하게 느낀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스포일러가 참 중요한 영화라 이 이상 설명하기 힘드네요. 다만 제목의 의미가 아주 크다는 것, 이 경계가 단순히 국경뿐만이 아니라, 여자와 남자, 인간과 비인간, 나와 타인, 윤리와 자연 등등 모든 경계를 아우릅니다. 이 경계를 넘나들어 결말에 다다를 때쯤에 주인공의 선택은 어떤 감동을 넘어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어떤 분들에겐 불쾌하거나 기분 나쁜 영화일지도 모르지만, 저에게는 올해 최고의 영화였어요.
5. <아이리시맨> - 마틴 스콜세지, 미국
3시간 20분이 2시간처럼 지나갑니다. 정말 대단해요. 마틴 스콜세지.
갑자기 마블에 대한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라버린 스콜세지 옹. 그래서 넷플릭스와 손 잡고 만든 차기작에 온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굉장한 영화가 나왔습니다. 연기면 연기, 편집이면 편집, 연출이면 연출, 모든 게 완벽합니다. 마피아, 조직 폭력배, 그들의 우정과 배신 등을 다루는 영화가 정말 취향에 안 맞는데(그래서 <신세계>도 안 봤어요.), 이 영화는 그런 제 취향마저 넘어서더군요. 어림잡아 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미국 역사, 그 중에서도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중심 잡아 마피아들의 의리, 암투, 배신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인 저로서는 당연히 잘 모르는 이야기인데, 홀린 듯 잘 따라갔습니다. 그만큼 편집과 연출을 너무 잘했어요.
+) 나오는 배우들이 죄다 연기를 잘하는데, 조 페시의 연기가 아주 인상 깊습니다. 이분이 정녕 <나 홀로 집에> 그 도둑이 맞나요.
6. <결혼 이야기> - 노아 바움백, 미국
드디어 노아 바움백이 대표작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노아 바움백은 지금까지 좋은 영화를 줄곧 만들어왔습니다. <오징어와 고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프란시스 하> 등등. 그래도 동년배 감독들, 예를 들어 절친 웨스 앤더슨 같은 감독과 비교하더라도 약간씩 밀리는 감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런 생각이 쏙 사라지게 만듭니다. 노아 바움백이 잘하던 것, 즐겨 다루던 것, 잘하고 싶었던 것, 어쩌면 놓쳤던 것들이 모두 이 영화에 있습니다. 각본과 캐릭터 만들기는 원래 잘하던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연출도 한껏 성장했습니다. 능수능란하게 롱테이크와 짧은 쇼트들을 교차시키고, 연기에 눈이 돌아갈 즈음에 카메라의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아름답게요.
+) 배우들 연기는 <아이리시맨>과 마찬가지로 그냥 미쳤습니다. 스칼렛 요한슨, 로라 던 둘 다 그냥 날라 다니고, 아담 드라이버는 경이로운 느낌까지 들었어요. 이번 아카데미에서 호아킨 피닉스와 남우 주연상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일 것 같습니다.
7. <포드 V 페라리> - 제임스 맨골드, 미국
진짜 극장에서 이런 체험은 한 적이 없습니다.
<아이리시맨> 보기 전에 마피아 느와르 영화가 취향이 아니라고 밝혔던 것처럼,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자동차, 스포츠, 레이싱, 이런 소재를 안 좋아하는 편입니다. F1은커녕 <분노의 질주>도 한 편도 안 봤어요. 그런 제가 극장에 들어갔다 나오고 7000RPM을 부르짖으며 방방 뛰었습니다. <매드 맥스> 이후 스크린 속 차를 보면서 심장이 같이 질주하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래도 <매드 맥스>는 SF다 보니, 약간 판타지를 본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이 영화는 정말이지 묵직합니다. 심장을 저 밑바닥에 탁 잡아두고 안 놔주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레이싱 장면 못지않게 굉장한 건 장르 영화답지 않은 독특한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두 남자는 각자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게 참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여운을 짙게 남깁니다.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중, 예상외로 좋았던 영화 1위에요.
4분기에서 1편만 고르라면 역시 <경계선>입니다. 처음에 받은 그 충격이 너무 크고 좋아서, 그 느낌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에요. 좋은 영화들이 올해도 참 많았네요. 이제 내년이 되기 전에 즐겁게 올해의 베스트 10을 고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익무 여러분은 4분기 영화 어떻게 보셨나요?
추천인 5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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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을 도와줘 정말 극장에서 못본게 너무 아쉽습니다ㅜㅜ
경계선은 한번 찾아봐야겠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