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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스 아웃] 간략후기

jimmani
3585 6 12

익무의 은혜에 힘입어 영화 <나이브스 아웃>을 개봉 전 시사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제이미 리 커티스, 마이클 섀넌, 토니 콜레트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크레딧만 읽어도 아찔해지는 이 영화는 흔히 '후더닛'(whodunnit, 누가 그랬나?)이라 부르는
전통적인 추리극의 형태를 하면서도, 그 안에 풍부한 캐릭터성과 동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알차게 버무려
실로 품격과 실속, 감각을 모두 갖춘 클래식 엔터테인먼트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고풍스런 대저택에서 85세의 저명한 추리 소설가 할런 트롬비(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생일날 숨진 채 발견됩니다.
일주일 후 당시 생일 파티에 참석했던 할런의 가족 및 지인들이 경찰의 호출을 받아 조사에 임하는데,
경찰의 곁에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유명한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으로,
그는 이 사건에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범죄의 가능성에 있음을 직감합니다.
영화는 브누아 블랑과 경찰들이 할런의 가족 및 지인이자 용의자인 사람들을 한명씩 불러
심문하는 것으로 시작해 전통적인 추리극의 형태를 비교적 충실히 따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너무 튀지 않게, 그러나 교묘하게 추리극의 전통적인 형태를 비트는 재주를 선보입니다.
인물이 주장하는 바와 실제로 겪은 바를 나란히 보여줌으로써 비교적 친절하게 단서를 제시하고
그럼으로써 관객이 이야기에 서두부터 어느 정도 마음을 열어두게끔 유도하기도 하고,
탐정 외에는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감정을 이입하지 않는 보통의 추리극과 달리
초반부터 탐정 외의 특정 인물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워 관객의 주의를 흐트려 놓기도 합니다.
탐정과 마찬가지로 사건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관객도 신경을 곤두세운 채 추리에 임할 텐데,
영화의 이런 장치는 관객의 몰입을 불러일으켜 방심을 유도하고 그로 인해 더 놀라게 하는 효과를 얻습니다.

일반적인 밀실 추리극의 방식에서 벗어난 시공간 운용도 <나이브스 아웃>의 영리한 부분입니다.
한 공간에 용의자들을 모두 몰아넣고 자초지종을 들으며 사건 추리에 임하는 보통의 밀실 추리극과 달리
이 영화는 범인은 찾아야 하나 시간을 흘러가게 놔 두고, 이는 반전의 파급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 사건의 진상을 쫓는 와중에 등장하는 반전은 단지 기억과 타임라인을 재구성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사건을 등장시킴으로써 기존에 쫓던 사건에 새로운 사건이 더 생겨나는 형태로 발전하고,
이는 사건의 국면을 완전히 전환시키거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뒤바뀌게 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밀실 추리극의 원칙을 취할 것은 취하고, 바꿀 것은 바꾸면서 극의 역동성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런 '후더닛' 장르가 어려운 것은 비단 사건의 구조를 탄탄하게 구축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한정 주어지지 않은 시간 안에서 작품은 우리가 처음 보는 인물들, 그 인물들이 형성한 관계에 대해
효과적으로 소개하여 짧은 시간 안에 우리가 그 관계를 이해하고 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고 인물들의 이면이 밝혀질 때 가능한 한 큰 정서적 파장을 줘야 하죠.
<나이브스 아웃>은 출중한 역량을 지닌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각자의 비중이 크지 않아도,
할애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도 트롬비 가족의 역사에 깃든 뒤틀린 그림자를 어렵지 않게 소환해 냅니다.
동시에 인물들 사이에 감도는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사뭇 불편한 공기도 재기발랄하게 포착해내죠.
이를 통해 영화는 이런 류의 추리물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동시대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빈부격차, 계층갈등, 트럼프 시대의 이민자 이슈까지, 동시대 미국의 민감한 부분을 잘도 건드립니다.
감독은 오랜 역사와 전통의 세계관을 지닌 프랜차이즈에 이런 정치사회적 이슈를 불어넣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전작에서의 착오 또는 실수에서 벗어나 <나이브스 아웃>에서 그러한 의도를 성공적으로 장르와 결합시킵니다.
 

하나같이 보통이 아닌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출중한 활약도 영화를 빛나게 하는 부분입니다.
탐정 '브누아 블랑'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정말 기대 이상으로 빼어난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에게 어김없이 오버랩되는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미국 남부 사투리 같은 억양과
과하지 않은 허세로 부드럽게 날려보내며 기이한 몰입감을 자아내는데, 탐정극이 늘 그렇듯
몰아치듯 활약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그는 제임스 본드 때보다도 더 화면을 매섭게 장악합니다.
그가 보여주는 탐정 브누아 블랑의 활약은 차세대 '셜록 홈즈' 혹은 '에르큘 푸와로'로 꼽혀도 손색 없어 보입니다.
캡틴 아메리카의 모범성을 완연히 털어낸 크리스 에반스, 차분하고도 강인한 캐릭터를 소화한 아나 디 아르마스,
가족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제이미 리 커티스, 신경질은 던져버리고 능글맞은 며느리가 된 토니 콜레트,
그 외 마이클 섀넌, 돈 존슨, 캐서린 랭포드 등 잠깐이라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습니다.

<나이브스 아웃>은 고풍스런 추리극의 품격을 딱 갖춰 입었으면서도 풍성한 캐릭터와 이야기의 재간으로
실속 또한 챙겼고, 그로부터 시대와 사회를 향한 예리한 감각까지 뽑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영화란 꾸준히 새로운 것을 좇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대중예술이라고 하지만,
오랜 영화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저마다의 전통이 주는 매력에 아직 끌리는 관객들도 많습니다.
<나이브스 아웃>은 그런 관객들을 위해, 자신 또한 그런 관객이기도 한 감독의 손에서 탄생한 결과물인 듯 합니다.
 

익무 덕에 좋은 영화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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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6

  • Fi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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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lf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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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영화를 보면서 제일 신선했던 배우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숱하게 봐왔던 다니엘 크레이그였죠ㅋㅋ
구수하다 못해 지독하고 과장된 남부 억양에 능청스러운 캐릭터를 재밌게 소화하더라고요

11:48
19.11.23.
jimmani 작성자
알폰소쿠아론
다니엘 크레이그가 저렇게 능청스러울 줄 몰랐네요 ㅋㅋㅋ
11:57
19.11.23.
profile image 2등
괜찮은가봐요!! 요새 아가사 크리스티 영화들이 그저그랬던 터라 이 작품이 기대돼요
12:30
19.11.23.
jimmani 작성자
빨강구두
오리지널 시나리오라 더 흥미진진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13:11
19.11.23.
profile image 3등
배우분들의 연기가 하나같이 좋고 말씀하신 것처럼 추리에 시간의 흐름이 얽혀드는 게 진짜 잘 만든 영화였어요.
12:56
19.11.23.
jimmani 작성자
백택
많은 요소들이 어지럽혀지지 않고 아주 잘 조화됐죠.^^
13:12
19.11.23.
영화 보고 꼮 다시 읽으러 오겠습니다... 토니콜렛 처돌이라 이 영화 너무 소중하네요 ㅋㅋㅋ
14:10
19.11.23.
jimmani 작성자
엘도
토니 콜렛 여기서도 존재감 대단합니다 ㅎㅎ
15:45
19.11.23.
profile image
유전의 토니클레트하고 나이브스 아웃하고 완전 다른사람 ㅋㅋㅋ 춤추는 장면에서 크게웃었습니다
15:09
19.11.23.
jimmani 작성자
Fiello
아 <뮤리엘의 웨딩> 주인공이었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ㅎㅎ
15:46
19.11.23.
profile image
분명히 보게 되겟지만 후기 읽으면 읽을수록 더 기대가 되네요 ㅎ저도 보고 다시 후기남길게요 ㅎ
16:22
19.11.23.
jimmani 작성자
영화광광광
영화 기대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23:10
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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