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v페라리] 관람평(스포없음)
익무의 은혜로 관람했습니다.
별개로 대규모 모집 시사회는 다시 한 번 꺼리게 되는 경험입니다. 줄 관리가 형편없어서 못 볼 꼴을 많이 봤습니다.
저는 시사회로 본 영화는 더 냉정하게 평가하려 노력합니다. 아래는 스포일러 없는 관람평입니다.
--------------------------------------------------------------------------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를 본 관객이라면 ‘제로의 영역’이란 개념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포드v페라리>에도 그걸 떠올리게 하는 ‘경지’의 순간이 있다. 계기판이 7000RPM의 빨간 영역을 넘어갈 때다.
이 영화는 2.39:1 시네마스코프 비율이다. 관람하기로 결정했다면 반드시 이 비율의 스크린으로 보시라. 요즘 21:9 와이드 게이밍 모니터가 시장에 많이 나와 있다. 뜬금없이 무슨 얘기? 잠시만 들어보시라. 21을 9로 나누면 2.33333....수치가 나온다. 이 모니터로 가장 몰입감 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 장르가 있다. 바로 레이싱 게임. 납작한 레이싱 카들과 가로로 드넓은 트랙을 우리 눈앞에 들이밀 수 있는 이상적 비율이다.
<포드v페라리>가 가진 강점은 여러 장르로 분리해서 놓고 봐도 각각 준수한 영화라는 것. 가족영화로 놓고 봐도, 버디 무비로 놓고 봐도, 전기영화로 봐도, 스포츠 드라마로 봐도 훌륭하다. 고로 남녀노소 누구나 각자의 관심사대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뻔한 얘긴 잠시 접어두자. 영화를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다. 영화 자체로서도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사회상임을 여러 차례 알리고 있지만, 유럽문명과 신대륙 문명이라는 두 세력 간의 또 하나의 세계대전 성격이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포드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페라리란 이름의, 이를테면 엔지니어링 테크놀로지를 통한 대리전.
포드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량.생.산. 경영전략 참고사례집으로도 이 영화를 접근할 수 있다. 비대한 조직은 틀림없이 위기를 맞는다. 초반부터 회장인 헨리 포드 2세를 임팩트 있게 등장시킨 것은 조직의 드라마도 보여주겠다는 의중. 보수적인 거대 조직의 혁신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결코 돈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공룡이 된 디즈니가 참조했으면 좋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한국 배급사는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진부한 표현이 있지만, 그렇기에 스포츠는 ‘드라마’를 풀어내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다. 스포츠 중에서도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의 스포츠, 레이싱이다. 레이싱 중에서 가장 악명높은 레이싱들이 있다. 먼저 떠오르는 건 프랑스 파리와 세네갈 다카르 사이를 며칠동안이나 달려 ‘죽음의 랠리’로 불리는 ‘다카르 랠리’, 그리고 하루를 꼬박 달리며 인간과 머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100년 가까운 전통의 내구 레이스 ‘르망24시’. 영화에서 이 레이싱은 굉장하다. 특히나 악천후를 뚫고 폭주하는 자동차를 로우앵글로 따라잡으며 보여주는 장면들은 말 그대로 ‘뼛속까지 느껴지는 베이스’ 그 자체다. 먼저 보여주는 데이토나24를 잘 훈련된 준마의 경주처럼 그렸다면, 이후에 나오는 ‘르망24시’는 야생마들의 질주다. 제작비를 여기에 많이 뿌렸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만큼 순수한 속도의 쾌감이 있다.
투톱을 이루는 캐릭터들의 앙상블이 돋보인다. 캐롤 셸비(맷 데이먼)는 더 펼치지 못한 꿈의 대리인으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을 점찍었고 훌륭한 조력자이자 팀장, 때론 중재인이 된다. 켄 마일스에게선 거의 순결하기까지 한 아마추어리즘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갑자기 감동한 순간이 있는데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말하면, 사이드 미러를 잠깐 비출 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선택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초연함을 볼 수 있다.
캐릭터의 성격구분이 명확히 갈리기도 하며, 어느 정도는 정석적인 드라마 진행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은 보게 될 것이다. 남자대신 엔진이 우는 그 때를. 영화를 만든 제임스 맨골드의 엔지니어링은 탁월했다.
‘뼛속까지 느껴지는 트랙의 베이스, 순결한 집념의 드라마’
★★★★
텐더로인
추천인 8
댓글 13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사실...저희 집안이 차에 관심이 많습니다ㅎ 아버지가 자동차 회사를 정년퇴임하셨고, 저도 어릴때부터 차에 관심이 많았고 군대는 운전병, 제 동생도 현재 자동차 회사에 재직중입니다. 관심이 많기에 순수한 쾌감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번 더 보고싶어지는 영화였습니다
Cj 슈퍼레이스, 나스카, F1은 각각 한번이라도 직관 간 적이 있는데
르망은 가본적이 없어서 좀 덜 와닿는게 아쉬워웠습니다
같은 경지에 도달한 남자들의 뜨거운 사투죠!
사포를 예로 들다보니 켄이 하야토, 캐롤이 아스라다 느낌이 나네요.
흡사 내가 달리고 있는 듯 짜릿한 연출의 영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