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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아이리시맨' 간단 리뷰

수위아저씨
4689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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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영화에서 분명 갱스터 영화가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히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가 그 정점(혹은 시작)을 찍었고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도 그 시대의 어딘가에 있었다. 그리고 마틴 스코세이지가 만든 몇 개의 영화들도 갱스터 영화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다.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카지노' 등은 그의 대표적인 갱스터 영화다(여기에 '갱스 오브 뉴욕', '뉴욕, 뉴욕' 등을 포함해도 좋다). 마틴 스코세이지를 정의내리기 위해서는 '갱스터' 말고 하나 더 언급할 것이 있다. '뉴욕'이다.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한 곳이자 여러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곳이다. 그리고 뉴욕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뮤즈와 같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갱스터 영화만 만든 것은 아니다. 당연히 뉴욕을 배경으로만 영화를 찍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뉴욕'과 '갱스터'다. 만약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세계를 결산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작품이 나와야 할까? 당연히 뉴욕의 갱스터들 이야기다. 

 

2. '아이리시맨'은 50년대부터 현재까지 뉴욕 뒷골목에서 페인트공(마피아들의 은어)으로 지낸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니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병원에서 요양 중인 프랭크가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트럭 운전수로 지내는 프랭크는 운송하던 고기를 빼돌렸다는 이유로 회사에 고소를 당한다. 이때 도움을 받은 변호사 빌 부팔리노(레이 로마노)와 가까워지면서 그의 사촌 러셀(조 페시)과도 가까워진다. 러셀은 지역 내 여러 사업에 관여하는 큰 손이고 프랭크는 그의 굳은 일을 돕게 된다. 그러다가 러셀의 소개로 화물운송노조위원장인 지미 호파(알 파치노)와 알게 되고 그의 일을 도와주게 된다. 러셀과 지미는 가까운 듯 하지만 경계를 한다. 둘의 묘한 관계 사이에서 프랭크는 갈등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3. 이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할 수 있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실제사건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이다. 그는 미국의 화물운송노조위원장이자 노동 운동가로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인물이다. 영화 속 내레이션대로 그는 대통령 다음으로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실종사건이 영화의 핵심이라면 이 영화는 간단하게 끝날 영화였다. 그러나 지미 호파 실종사건은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프랭크다. 때문에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을 설명하는데 영화는 많은 부분을 할해한다. 당시 마피아와 노조가 권력을 쥐고 있던 50~60년대 미국 정치사를 배운 사람이 아니라면 영화만 봐서는 쉽게 따라가기 어렵다. "공부를 해야 하나" 고민도 해봤지만 결국 이 영화는 프랭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용없게 된다. 이 이야기는 마피아와 노조의 권력싸움 사이에 놓인 프랭크의 이야기다. 

 

4. 그렇다면 '프랭크'라는 인물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에서 전투를 한 적이 있으며 우직한 다혈질이다. 성격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으나 누가 딸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쫓아가서 박살을 내놓는 성격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는 러셀의 페인트공이었으나 지미의 신임을 얻으면서 노조 지부장까지 지내게 된다. 러셀과 지미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서 프랭크는 아주 바빠진다.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을 전해야 되고 설득도 시켜야 된다. 흡사 '아수라'의 한도경(정우성)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만큼 처절한 상황은 아니다. 그는 묵묵히 양 측을 설득하며 틀어진 두 세력을 봉합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도 알 수 있지만 프랭크는 신의가 두텁고 충성스런 사람이다. 자신과 관계를 쌓은 보스를 쉽게 배신하지 못한다. 그에게 그런 성격은 천성에 가깝다. 

 

5. 앞서 언급했 듯, 이 영화는 프랭크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다. 이야기가 끝나고 현재로 돌아왔을 때 프랭크는 혼자서 걷지도 못하고 약도 챙겨먹지 못하는 노인이 돼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이 정작 딸들과의 관계는 멀어졌다. 경찰들은 "이제는 지미 호파 실종사건의 진실을 말해도 되지 않냐. 당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은 모두 죽고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러셀과 안젤로(하비 케이틀), 면도날(바비 카나발레), 토니 살레르노(도미닉 롬바르도치) 등은 모두 늙어서 죽고 없다. 그럼에도 그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신부님 앞에서도 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가 끝까지 지키는 신의, 마피아들의 의리라고 말하던 그것은 이제 허망한 옛날의 것처럼 느껴진다. 

 

6. 프랭크는 요양원 안에서 옛날 사진들을 보면서 가족과 과거를 추억한다. 그의 시대에 대단했던 인물인 지미 호파는 현재 미국 젊은이들에게 '누군지도 모르는 아저씨' 정도다. 그는 여전히 자녀들과 화해하지 못했고 의미없는 비밀을 지킬 뿐이다. 화려하게 시대를 누볐던 프랭크에게 주어진 공간은 억지로 열어놓은 문 틈 사이의 작은 공간뿐이다. 갱스터 영화의 엔딩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허망하다. 이 엔딩에는 어떤 극적인 것도 없다. 정확히는 극적인 것을 일부러 배제한 모양새다. 사실 갱스터 영화에서 극적인 요소를 주는 방법은 주인공이나 그의 최측근이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는 경우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대부분 늙어죽거나 늙어 죽기 직전까지 살아있다. 죽어서 멋있는 엔딩이 아닌 살아서 허망한 엔딩인 셈이다. 

 

7. 이 엔딩을 통해 영화는 수많은 세기의 영광을 벗겨낸다. '뉴욕'과 '갱스터'로 대표되는 마틴 스코세이지 자신의 필모그라피 속 영광과 케네디 시대의 풍요를 벗겨낸다. 더 나아가 이민자와 총기(=범죄)로 쌓아올린 미국의 풍요도 벗겨낸다. 이민자의 나라는 세계 최강대국이다. 이 나라에는 많은 우방이 있다. 그러나 그 우방은 언제고 사라질 허망한 것들이다. 언젠가 그들이 사라졌을 때 남은 것은 스스로 들어갈 관을 짜맞추고 문틈 너머 들어올 죽음을 기다리는 늙고 허망한 자신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3시간동안 뉴욕 속 이민자 갱스터의 성공을 보여준 모양이다. 이것은 마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라스트 미션'을 연상시킨다. '더티 해리'로 대표되는 영광의 매그넘 시대를 스스로 끝내버린 노인과 마찬가지로 마틴 스코세이지도 그 영광을 끝내려 한 모양이다. 

 

8. 이렇게 말을 했지만 영화는 끝내주는 몰입감을 자랑한다.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한 남자의 인생을 보는 맛이 있고 그 인생을 만들어내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맛도 있다.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 하비 케이틀 등으로 이어지는 '연기 거장'들의 향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를 완벽하게 만든다. 특히 자신이 돋보일 때와 조화를 이뤄야 할 때를 정확히 아는 연기는 감동스러울 지경이다. 넷플릭스라는 게 핸디캡이 아니라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유력후보라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도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나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보다 '아이리시맨'의 로버트 드니로 연기가 더 좋다). '아이리시맨'은 진정한 고수들의 향연이다. 

 

9. 결론: 난해한 미국 정치사를 공부하고 간다면 더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프랭크의 삶에서는 늙어버린 가장의 모습도 보이는 만큼 한국의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한 남자의 삶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이 영화는 '대부'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미국 근현대사에 종말을 선고한 영화다(그런 영화들에 종말을 선고할 수 있는 사람은 마틴 스코세이지 정도다). 그렇기에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어쩌면 이 영화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어제의 용사들을 잔뜩 모아놓고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한다. 지미 호파도, 케네디 대통령도, 마피아도 모두 잊혀진 새로운 시대. 

 

 

추신) 최근 마틴 스코세이지가 마블 영화들을 두고 한마디씩 한 모양이다. 내가 아는(=내가 본 영화들을 만든) 마틴 스코세이지는 오래된 시대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던 사람이다. 그는 늘 새로운 시대에 관심이 있었고 그 때문에 현재에도 도태되지 않고 거장으로 남아있다(20세기의 거장들 중 도태된 사람을 많이 봤다). 그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대에도 '시네마'가 이어지길 바라는 듯 하다. 영화가 줄 수 있는 무한한 즐거움과 매력이 CG액션과 '체험'에 국한되지 않기를 바라는 듯 하다. 히어로 영화가 세계 영화산업의 주류가 됐지만 그래도 '영화'는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작가들은 시대와 인간을 고민할 것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낼 것이다. 거기에는 과거를 빌어 현재를 바라본 마틴 스코세이지의 공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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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글 잘봤습니다. 간만에 따라가기 힘든 영화였지만 어느새 인물에 감정이입하게 되더라고요.
00:01
19.11.12.
2등
........
삭제된 댓글입니다.
00:09
19.11.12.
profile image 3등

대부 원스어폰어타임 카지노 등등은 비슷하면서도 볼때마다 그시대적 매력에 푹빠지게 되는 영화들 이라서 아이리쉬맨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00:12
19.11.12.
profile image

와, 정독했습니다. 더더욱 빨리 영화를 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07:11
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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