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블럭버스터 포드 vs. 페라리를 소개합니다
익스트림 무비와 20세기 폭스 코리아 초청으로 신작 포드 vs. 페라리를 먼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 어떤 캐릭터의 감정을 분명히 담고자 노력한 클로즈 업을 보고 나서 올해 1억 불 이상 예산을 들인 영화들 가운데 눈에 띄는 블럭버스터가 뭐가 있었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결론은 엔드게임 그리고 포드 vs. 페라리가 전부였습니다.
마블 스튜디오가 연출자의 영역을 제한하고 제작자 지시 대로 양산하는 공산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비판을 한창 듣고 있지만 루소 형제는 스토리 진행을 위해 존재 목적이 있는 마블 세계관 영화들에서 어떻게 하면 연출자의 시각을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엔드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영화 초반, 인류의 절반이 사라지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살아남은 자들을 묘사하기 위해 루소 형제는 뉴욕에 있는 메츠 구단의 홈 그라운드인 시티 필드를 텅 빈 적막한 장소로 드러냅니다. 이 인서트 컷 뒤에 이어지는 재활 프로그램 장면에서는 몇 년 전 사라진 자들을 기억하는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드러내 보여주는 한편, 민간인이 아닌 수퍼히어로들 또한 선명하게 새겨진 상흔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취약한 대상임을 일깨웁니다. 조카뻘인 피터 파커를 잃은 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해 결국 연구에 연구를 반복하는 토니 스타크, 샌드위치를 씹으면서도 옛 동료와 재회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타샤 로마노프, 그리고 삶의 방향을 잃고 돼르가 되어버린 토르. 이 모든 감정과 상황 설명을 오로지 단 시간에 효율성 있게 전달하기 위해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진 그라운드 제로의 여파를 연상케 하는 어두운 시티 필드 장면이 필요하였던 것인데 18년 전,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 911이 아니었다면 엔드게임이라는 블럭버스터는 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영화였음을 이 영화의 각본을 쓴 두 사람 크리스토퍼 마커스와 스티븐 맥닐리는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이 현실 세계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건을 블럭버스터에 이식하여 담아내자 엔드게임은 작지만 분명한 생명력을 부여 받습니다. 이전 페이즈의 주역 인물이었던 토니 스타크에서 차세대 페이즈의 중심축인 스티븐 스트레인지로 세대 교체 과정은 이 흐름에서 순조롭게 이루어집니다. 블럭버스터의 매끄러운 결말인 동시에 재시작인 셈입니다.
마블 영화는 캐릭터의 남발로 한 인물 당 출연시간이 6분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영화 전체가 2시간짜리 예고편이라고 말했던 제임스 맨골드는 지금은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거대 예산이 들어간 작품을 주로 맡고 있지만 지난 세월 동안 연출자로서 자기 색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필름메이커였습니다. 미스터리 스릴러 아이덴티티를 보면 사람들은 맨골드가 안젤리나 졸리에게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안긴 [처음 만나는 자유]의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그건 리즈 위더스푼에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가져다 주었던 [워크 더 라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이 영화를 필름으로 봤지만 자니 캐쉬로 분한 와킨 피닉스가 교도소에서 공연을 여는 오프닝 장면에서 죄수들의 열기와 앰프의 출력이 유리벽 너머로 전달되어 잔 속에 담긴 와인이 떨리며 파동을 일으키는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정지 화면이나 마찬가지지만 운동을 일으키는 바로 그 이미지가 자니 캐쉬의 과거를 반추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주얼의 시각화와 음향의 증폭이 감정의 고양으로 연결되어 관객에게 공감각적 반향을 일으키는 과정이 바로 마틴 스콜세지가 말하는 시네마의 정수입니다.
포드 vs. 페라리는 단순 실제인물의 바이오그래피를 재현하려는 몸부림에서 그치거나 질주하는 도로를 보여주는 데 한눈 팔린 레이싱 액션물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실제인물의 위대함을 설명하고 나열하기 위해 극의 즐거움을 포기하지도 않고 분노의 질주 식 액션 판타지에 치중하느라 인물과 인물 사이에 드러나는 드라마에 소홀하지도 않습니다. 엔드게임처럼 블럭버스터로써 말초적인 재미를 주면서도 이 영화는 작품의 내적 메시지라는 면모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함의를 미국 관객들과 전 세계의 영화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영화 비평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적극적으로 제임스 맨골드가 이 영화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메시지를 성의 있게 수용하려 들거나 텍스트로 삼는 시도를 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 비평 전면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은 단언컨대 직무유기가 되겠습니다.
포드 vs. 페라리는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맨골드가 미국인들에게 한 때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진정으로 위대한 미국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느냐고 전언하는 영화입니다.
아이맥스, mx, 4dx, 수퍼플렉스, 스크린x 그 어떤 포맷으로든 볼 가치가 있는 올해의 블럭버스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를 먼저 보시는 관객들은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152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을 반려하지 않고 그대로 승인한 이유를 남들보다 더 이른 시점에 아실 수 있게 됩니다. 현재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승인하는 블럭버스터 가운데 상영시간이 2시간 30여 분이 넘지만 그린라이트를 얻어내는 현역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런을 포함하여 많아야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면 스콜세지처럼 러닝 타임은 얻어내더라도 파이널 컷을 얻지 못하거나 파이널 컷을 얻어내더라도 차기작 투자를 받지 못하여 네플릭스로 가게 되는 경로를 밟습니다. 포드 vs. 페라리가 한국에서 더 많은 관객에게 노출 되려면 사전 예매율이 무엇보다 중요할 터인데 진정으로 관객의 선택을 받기를 바랍니다. 로건이 오스카 각색상 후보에 오르고 흑백 버전의 누아르 에디션이 극장 상영을 거쳐 블루레이로 남았던 것처럼 제임스 맨골드에게 차기작을 조금 더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는 동력이 이번에 마련 되었으면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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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사람은 아이맥스, mx관에서 봐야 후회를안할거같아요
아마 다른배우가 했으면 이만큼의 퀄리티가 안나왔을듯해요
그러고보니 두 작품 다 오락영화에서 기피하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