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명세 감독님의 말씀 몇 가지
영자원에서 올해 20주년을 맞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4k 디지털 복원 상영으로 보고 왔습니다.
상영 후 이명세 감독님이 직접 참석하여 56분여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촬영을 하는 걸로 보아 추후에 전체 영상이 아마 영자원 채널을 통해 올라올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 깊었던 감독님의 말씀만 요약해서 3가지 정도 올립니다.
일반 영화애호가인 저에게도 뜻깊었는데, 아마 영화를 업으로 삼거나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더 와 닿는 것이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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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은영 프로그래머 : (영화의) 공간에 관해 여쭤보고 싶은데, 재개발이 될 아파트, 골목, 탄광촌을 보면 사라져가는, 없어져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가 99년이라고 하는 세기말의 시대에 만들어졌던 영화인데 이런 공간들을 담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명세 감독: 영화라는 매체가 그런 것 같아요. 공간예술이기도 하지만 시간예술이고, 우리가 잡아내는 어떤 것들이 사라져가는 거잖아요......타르코프스키의 사과 같은 것들, 시간의 흔적들, 그러니까 영화라는 것이, 사진이라는 매체도 그렇겠지만 붙잡을 수 있잖아요. 사라져가는 것을 붙잡아서 화면 안에 정착시키는 것, 영화감독으로서 그런 것들에 대한 집착이 (질문의)공간을 찾아가게 된 것 같아요.
#2
모은영 프로그래머 :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오히려 반대로 정지,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같은 것들로 시간을 묶으면서 보여주시는 형식을 많이 구현하셨는데요, 그 표현방식에 대해서 좀 더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명세 감독 : 활동사진, 영화라는 게 어떤 움직임을 다루는 것이고, 움직임만으로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죠. 그래서 사람들도 움직이지만 비, 눈 이런 것들도 다 움직임이고, 거기에 일반적으로 들고 뛰는 핸드헬드 보다도 이동의 움직임으로서 속도감을 부여하고....촬영감독님에게 이야기 했었던 게 이건 ‘안방 웨스턴’이다. 그러니까 서부에서 뛰는 게 아니라 안방에서 뛴다...여러분이 잘 모르시겠지만 안방에서 뛰고 이동차를 쓴다는 것은, 달리면서 찍다가 이동차를 순간적으로 세우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에요. 움직임 속에서 정적인, 어떤 정서적인 것을 합치고 싶은 욕심이 그런 화면을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작성자 주 : 프리즈 프레임이란 결정적 장면의 강한 여운을 남기고 극적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서, 액션을 한 프레임에서 정지 시킨 채 스크린에 유지 하는 연출 기법을 말한다.
(바로 이은 질문) 모은영 프로그래머 : 이 작품은 달리는 추적 장면을 옆으로 계속 이동하면서 보여주잖아요? 이건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방식인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영화의 프레임 보다는 만화 컷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장면을 어떻게 생각 하셨는지?
이명세 감독 : 형사들의 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그 촬영 전날에 *크로스 커팅(cross cutting)으로 잘라놓았어요. 그런데 날씨도 안 좋고 촬영을 접는 사이에 생각을 했죠......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한 컷으로 롱테이크로 찍으면 딱 좋겠다. 그런데 단순하게 펼쳐서가 아니라 거기서 화면분할을 좀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가 질 무렵부터 새벽까지 이 한 장면(영구가 가물치를 쫓는 장면)을 찍었죠. 그런데 첫 테이크를 썼습니다. 박중훈씨가 첫 테이크를 쓸 거면서 밤새 뺑뺑이 돌렸냐고 원망했지만, 연출가로서 잘난 체 하는 게, 영화사적으로는 기존의 영화라는 매체가 병렬편집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극복했거든요. 그런데 한 컷으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성자 주 : 크로스 커팅은 함께 일어나는 행동을 의미하는 둘 이상의 쇼트들이 씬에 혼합되는 것을 말한다.
#3
한 관객의 질문 : 다른 범죄물이나 수사물을 보면 범인의 서사가 조금은 있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완전하게 생략이 된 것 같았어요. 안성기 배우가 왜 죽이는지? 애인을 어떻게 만났는지? 애인이 돈을 왜 준비하는지? 기차에서 누구에게 얼마를 왜 받는지? 등등. 철저하게 형사팀이 집요하게 쫓는 것에만 집중이 되어있는데 그 생략에 대해 의도 하신 게 있으신지?
이명세 감독 :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에서 나오듯 ‘25자 이내로 스토리를 설명할 수 있는’것들....저는 한 단어로 영화가 설명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사랑>은 ‘시간의 비밀’이듯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추적’이라는 한 단어만 갖고 달려간 거예요. 관객이 ‘이 사람이 범인이다, 이 사람은 형사다, 쫓는다’ 알 수 있는 그 설정으로만.....그러니까 이야기가 단순해야 영화라는 매체가 들어갈 틈이 있기 때문에, 저는 모든 얘기들을 단순하게 설정하는 편이에요. 긴 서사는 tv드라마라는 매체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는 영화가 단편소설이나 중편소설, 시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복잡하게 가져가지 않는 편이에요.....모든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어떤 것을 영화 매체로 어떻게 옮겨서 전달시킬 수 있는가가 제가 영화감독으로서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영화라고 생각하기에 단순구도로 설정했던 겁니다.
텐더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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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안보고 아껴놨다가 오늘 처음 본 눈이어서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선인체육관과 그것이 잘 보이는 동네였을 송림동 일대의 산동네를 보는게 흥미로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