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관람평(스포 거의 없음)
어제 관람했습니다.
포스터를 보고 섣불리 추측하면 낭패를 보는 영화들이 종종 있습니다. <경계선>은 그런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스포일러를 다루지 않고는 핵심을 건드릴 수 없으며,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개봉 전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가장 중대한 스포일러들을 피해가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쩔 수 없이 딱 하나의 영화 속 요소(신화)는 밝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용언급에 너무 민감한 사람이라면 그조차도 스포일러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 아래의 평을 읽지 마세요.
--------------------------------------------------------------------------------------------------
음향이 섬세하게 가공된 영화들이 있다.
올해에는 <아틱>이나 <더 길티>같은 작품들이 그랬다.
이 영화의 사운드도 대단히 공을 들였으므로 집보다는 역시 극장이다.
짜임새 있게 잘 만든 영화는 많지만, 잘 만든 ‘새로운’ 영화는 드물다.
<경계선>은 관습적이지 않는 영화다. 새로운 ‘광경’을 우리 눈앞에 제시하며 질문에 빠트린다.
외피는 언뜻 후각 판타지,
그러나 ‘인간’의 기준에서만 후각의 제스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달리 표현해본다면 ‘감각’의 판타지.
감독의 이름이 낯설다. 알리 아바시.
그의 전작을 본 적도 없었고, <경계선>은 그의 두 번째 장편이다.
그런데 스웨덴 영화다. 즉시 떠오르는 생각, ‘감독이 이민자 출신이겠구나.’
실제로 그는 스웨덴 국적을 취득한 이란 태생의 이민자였다.
현대의 유럽 국가들이 당면한 현안은 다른 국가에서 온 이방인의 증가.
그들이 이민자일 수도, 난민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외부인이다.
알리 아바시 역시 낯선 땅에 왔고 다른 문화를 겪으며 정체성에 대한 번민을 했으리라.
<경계선>은 자신의 정체성 탐구 과정에서 나온 기이한 판타지.
<경계선>은 섣불리 ‘이런 영화다’라고 규정짓기 까다롭다.
한 주인공을 둘러싼 혼종 장르. 심각한 수사물과 판타지, 성장영화를 모두 내포한다.
그리고 티나(에바 멜란데르)의 이야기를 관찰하는 우리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떠안게 된다.
이 환경 친화적인 인물은 두 세상을 오간다.
영문제목 ‘BORDER’가 가리키듯, 그녀는 세관 직원이다.
일터가 있는 항만의 인간세상은 비정하게 그려지고,
거처가 위치한 숲은 정답고 생기 있다. 그리고 이곳은 신화의 무대가 된다.
스웨덴 가문인 트롤레(Trolle)의 문장은 ‘트롤’이라고 한다.
신화속의 트롤은 각자 요술을 부린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체인질링’
영화를 보기 전엔 이 단어의 뜻을 찾지 마시길.
마치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모쿠슈라’의 의미를 알고 보면 시시해지는 것과 마찬가지.
(공교롭게도 위 작품의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영화 중 <체인질링>이 있다)
영화는 북유럽의 신화를 빌려와 종의 요소를 발전시킨 판타지를 성립시킨다.
신화 속 재료를 가지고 인간의 경계와 생명을 조명하는 것.
영화는 ‘렛 미 인’의 작가인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지만, 감독의 손길도 닿아있다.
<경계선>에는 여러 교차가 존재한다. 선을 넘는 아찔한 교차들.
종의 교차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의 교차가 가져다주는 딜레마와 비전들.
단지 새로움만을 실험하려 했다면 영화는 거기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더 밀고 나아갔다.
일찍이 고민해보지 못했던 우리에게 많은 담론의 여지를 남긴다.
티나는 이웃의 아기를 안는 것을 매우 어색하고 어려워했다.
어쩌면 이 영화의 텍스트를 각성하고 거듭 태어나는 여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차라리 학습하는 이야기, 진화의 여정으로 보고 싶다.
고심하게 된다. 과연 우리 현세대가 미래에도 종을 유지시킬 자질이 있는지.
한 개체의 진화의 과정에서 영화는 반대로 우리 인간,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게 질문한다.
타 종의 간섭을 통해 진정한 인간됨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이 판타지의 끝엔 우리에 대한 ‘경계심’이 남는다.
‘감독의 자기탐구이자 호모 사피엔스의 안위를 묻는 신랄한 판타지.’
★★★★
텐더로인
추천인 5
댓글 6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저로서는 한 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N차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잘 읽었어요. 읽다가 문득 아틱이 올해 영화였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어요. ㅋ 잘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