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김성훈 기자에게 전하는 글(을 가장한 '걸캅스' 리뷰)
안녕하세요, 김성훈 기자님. 저는 뭐 대단한 사람은 아니니 그냥 '일개 관객'이라고만 소개하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기자님의 '걸캅스' 리뷰와 SNS의 몇 개 글들을 재미있게 읽어서 그에 대한 답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제가 기자님의 글을 읽었던 그날 마침 저녁에 '걸캅스'를 보기로 했던터라 영화가 더 기대되더군요. 영화를 다 보고 컴퓨터 앞에 앉은 지금, 영화들 되돌아보면 앞서 이 영화에 대해 가졌던 편견과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기자님께서는 '걸캅스'를 굉장히 만족하며 보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기자님의 리뷰와 함께 SNS를 통해 "어디 감히 '청년경찰'이나 '투캅스'와 갖다 붙이냐"는 반응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논란이 된 부분이 "여성판 '폴리스 스토리'"라고 언급하신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폴리스 스토리'를 '인생영화'라고 부를 정도로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 기자님의 20자평을 보고 "어떤 지점에서 '폴리스 스토리'를 언급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됐습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저는 영화를 본 후 기자님께서 언급하신 '폴리스 스토리'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기자님의 리뷰에도 밝히셨듯이 주인공이 사건을 알게 되고 범인을 추적해서 잡고 정의를 구현하는 이야기에서 '폴리스 스토리'를 언급하신 것이더군요. 충분히 공감은 합니다. 사실 '폴리스 스토리'는 이야기만 떼어놓고 본다면 동시대의 형사물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정의로운 형사가 나쁜 놈 잡는 이야기죠. 다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라면 '폴리스 스토리'가 아니라 다른 영화를 언급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48시간'이나 '리쎌웨폰', '나쁜 녀석들' 같은 헐리우드 형사버디무비들 말이죠. '걸캅스'는 일단 두 명이라는 점부터 과거 형사버디물의 클리셰를 가져왔다고 판단됩니다. 심지어 '폴리스 스토리'는 '버디무비'로 보기에도 부족하죠.
무엇보다 SNS글을 접한 영화팬들이 크게 반발한 이유는, 대중들이 기억하는 '폴리스 스토리'는 이야기보다 더 큰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룡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과 스턴트 때문이죠. 제가 '폴리스 스토리'를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억하는 '폴리스 스토리'도 그것과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대중들이 기억하는 '폴리스 스토리'와 '걸캅스'의 괴리감이 생겨서 일부 영화팬들이 반발한 듯 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기자님께서 '걸캅스'를 재밌게 보신 것은 이해하나 '폴리스 스토리'를 언급한 것은 적절하지 않은 비유였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기자님께서 '폴리스 스토리'를 언급하신 점이 정말 이야기에 장점이 있고 '걸캅스'가 그것을 훌륭하게 계승했다고 여긴다면, 이미 그런 형사영화를 수백개는 본 입장에서는 '걸캅스'를 '80년대 형사영화치고는 잘 만들었다'는 의미의 '돌려까기'라고 이해해야 할 듯 합니다. 정말 그런 의도였는지 궁금해지는군요.
여기에 한가지 더해서 저는 기자님께서 이 영화를 재밌게 보신데 대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됐습니다(여기서부터는 추측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목적이 명확하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영화'입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걸캅스'는 그 어떤 장르영화보다 의도가 명확합니다. 아마 이것은 제가 본 그 어떤 페미니즘 영화보다 쉽게 쓴 페미니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걸캅스'의 여러 장면에 등장하는 대사는 몰카 성범죄에 대한 여성의 울분을 대변하고 있으며 큰 이야기 또한 여성의 분노와 함께 주체적인 사회참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몰카 성범죄가 만연하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주체적인 영화'인 셈이죠. 그 메시지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 감독이 의도한 이 메시지에 지지를 보내고 응원하는 바 입니다. 다만 그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저는 '걸캅스'에 대해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영화'라고 정의내렸습니다. 장점은 기획의 의도가 분명하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점입니다. 단점은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스킬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깐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들과 '많이 듣던 대사'들이 그대로 나왔고 만화적인 상황을 만드는 코미디씬은 크게 웃기 어려웠다는 점이죠. 요약하자면 '의도에 집중하다가 영화적 재미를 놓친 영화'라고 결론 내릴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고 싶진 않군요.
이같은 이유 때문에 저는 기자님이 이 영화를 지지한 이유가 메시지가 분명한 페미니즘 영화라고 결론내리게 됐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왜 그것에 대해 밝히지 못하고, 심지어 언급도 하지 않았냐는 점이죠. 그리고 딱히 연관성을 찾기도 어려운 '폴리스 스토리'를 꺼냈냐는 게 의문입니다.
이런 저의 의견에 기자님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듣지 못해도 할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같은 일개 관객(a.k.a. 아그)이 감히 이런 메시지를 남겨 마감에 바쁜 기자님께 불편을 끼쳐드렸을지도 모르겠군요. 만약 그랬다면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그저 기자님의 리뷰와 SNS 글에 자극을 받아 뭔가 답을 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남겼습니다. 그럼 바쁘실텐데 항상 고생하시고,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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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ㅎㅎ 논리정연한 글이네요.
답글 달기 싫지만 그냥 한 소리 해보고싶네요. 평론가의 한줄평은 언제나 옳지 않았습니다. 그럴수 없고 그래왔던 것도 아니죠. 다만 평론가는 자신의 한도내에서 최선을 다할 뿐. 그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되고 기억이 흐려지고 그러면 다수가 원치않는 또는 다수가 맘에 안들어하는 한줄 평이 나올 수 있는거에요. 이번 평도 그런 부류의 평 중 하나지만 '유난히' 걸고 넘어지는 사람이 많다는건, 이건 영화평에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저 영화 자체에서 파생된 불만이 평론가쪽으로 옮겨간 것으로 생각되네요. 그러면서 한줄평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인 척하고 안타깝습니다.
공감합니다
박평식, 이용철 평론가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이동진 평론가마저도 영화팬들에게 안 좋은 소리 들은 한줄평이 종종 있습니다.
이 '폴리스 스토리' 평으로 유난히 시끄러워진 이유는, 평가를 한 본인이 나무위키 서술 이상으로 무례하고 유치하게 대응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영화를 무작정 싫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가장 큰 원인은 다른 평론가들과 달리 한줄평 이후에도 본인이 떡밥거리가 되길 자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글이 그 기자의 대응보다 더 수준 높고 재치 있다고 봅니다.
잘읽었습니다
걸캅스를 보진 않았지만 폴리스스토리가 언급되길래
'엥??? 그래??' 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이해가 가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기자분보다 훨씬 논리적인 글을 쓰셨는데, 읽어보기는 할까 모르겠네요.
명문이십니다!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