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2
  • 쓰기
  • 검색

[콜럼버스] 관람평 - 공간으로의 영적 초대

텐더로인 텐더로인
1542 8 2

1.jpg

 

 

 

 

어제 관람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오히려 예고편만으로 더 끌렸던 작품입니다. 주연인 존 조(우리에겐 <스타트랙> 리부트 시리즈로 유명하죠)의 진중한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원어민인 우리가 보기에 존 조의 한국어 억양이 튄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영화가 진행되면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또 젊은 배우 헤일리 루 리차드슨을 새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깊이 사로잡혔고 설명하기 힘든 눈물을 훔쳤습니다.

 

 

아래는 관람평 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

 

 

‘의식주’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공기처럼 의식하지 않는 주거 공간, 건축물.

현대인들은 과잉일 정도로 수많은 건물의 틈바구니 속에 살아갑니다.

저는 건축이 인간에게 주는 힘을 믿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바꿀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 관여하고 심지어 영혼을 잠식한다고 말이죠.

 

 

이 영화를 서사로써 접근한다면 그 빈약함에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콜럼버스>는 언어적 서사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영화”라고.

다시 말해 언어와의 작별을 고하고 있습니다.

 

 

‘번역’일을 하던 진(존 조)과 수많은 활자로 가득한 ‘도서관’에서 일하는 케이시(헤일리 루 리차드슨)

그들은 추상적 언어의 세계에서 손에 잡히는 물성적 세계로 들어서고 있는 겁니다.

영화는 이들과 함께, 관객들도 3차원의 공간속에 들어와 잠시 머물러주길 청하고 있습니다.

 

 

<콜럼버스>는 인구 5만도 안 되는 인디애나주의 소도시이지만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로도 유명합니다.

영화에선 이 기념비적 건물들을 순례하러 끊임없이 관광객들이 방문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최초’들을 잉태한 이곳은 건축의 ‘신대륙’이라 불러도 무방할 겁니다.

 

 

진에게 <콜럼버스>는 낯설고 이질적인 아버지의 땅이며

상처 끝에 건축학에 눈을 뜬 케이시에게 이 고향은 새로운 도시입니다.

낯선 곳에서의 이방인의 만남이라는 테마는

링클레이터의 <비포>시리즈를 떠올리게 합니다.

 

 

짐 자무시의 <패터슨>이 연상될 수도 있을 겁니다.

두 영화의 무대가 되는 소도시들은 실제 존재하는 지명이자 각각의 영화 제목입니다.

그리고 이 두 도시는 주인공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그런데 왜 하필 ‘모더니즘’인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도 흥미롭습니다.

문예사조로서의 모더니즘은 도시 문명에 따른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반 했습니다.

모더니즘 영화는 반리얼리즘의 입장에서 연속적 서사를 파괴하고 복잡한 인물의 내면에 집중합니다.

건축에서의 모더니즘은 순수로의 회귀를 지향합니다. 무장식, 단출한 재료, 간결한 디자인.

 

 

그리고 카메라는 영화 내내 거의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 정갈한 건축물들을 담아내는 균형적, 대칭적인 구도.

주인공들의 안정되지 못하고 엉켜있는 삶과 이 단정한 모더니즘 양식들은 확연하게 대비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잠시 멈춰 세워 환기하게 합니다.

 

 

<콜럼버스> 속 건물들은 인간의 관계를 단절하고

느닷없는 타임머신이자 환기의 공간인 동시에

창조자의 독창성과 시대의 사상을 품으며

끝내 언어조차 도달 할 수 없는 영적 에너지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승화됩니다.

하늘에 떠 있는 듯이 보이는 두 벽돌담장의 착시는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인간세상에서 홀연히 천상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듯합니다.

 

 

이 같은 의도는 감독의 출신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감독인 코고나다는 한국계 비디오 에세이스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영화 데뷔작마저 마치 명상적인 에세이처럼 찍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건축, 그 자체입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길을 거닐고, 담배를 피워도

카메라 속 인물의 자리는 끊임없이 주변입니다.

언제나 중앙에서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건물이죠. (또는 조경)

 

 

그렇기에 이 영화는 비율은 시네마스코프가 아니라

비스타 비전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비율 선택은 최선입니다.

 

 

제목 <콜럼버스>는 중의적이며 의미심장합니다.

소도시의 이름이지만 주제적으로도 적절합니다.

익숙했던 공간들을 주인공들은 새롭게 인지하며 탐험할 것이고

마침내 그들 인생의 신대륙으로의 항해를 다시 시작할 겁니다.

 

 

늦여름밤의 꿈과 같은 영화입니다.

육신을 잠시 의탁해 묵상에 잠기고 나면

우리 또한 그들처럼 영적으로 고양되어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물성적 존재가 영성적 존재로 탈바꿈할 때 찾아오는 낯선 감각.

저는 <콜럼버스>만큼 건축과 공간을 탁월하게 영화 속에 끌어들인 사례를

근래에 본 적이 없습니다.

 

 

★★★★

 

 

텐더로인 텐더로인
33 Lv. 172325/190000P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8

  • Nashira
    Nashira
  • 토레
    토레
  • 시아z
    시아z
  • 에리니
    에리니

댓글 2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글 자체가 매우 단정하시네요. 저는 이미지와는 별개로 구성상 줄거리가 넘 아쉽더라고요. 

10:10
18.04.20.
profile image
토레
이해합니다. 줄거리만으로 보면 기발하거나 독창적이거나 디테일한건 아니죠.
저도 이번 평은 영화에 발맞춰 간결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짧은 문장으로.
10:14
18.04.2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모르는 이야기] GV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11 익무노예 익무노예 4일 전10:54 1729
HOT 발 좋아하는 어느 감독님 3 golgo golgo 59분 전21:03 397
HOT 소니 회장,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시리즈를 살렸다 카란 카란 2시간 전19:33 501
HOT <나의 올드 오크>를 보고 나서 (스포 O) - 켄 로치 감... 5 톰행크스 톰행크스 2시간 전19:39 197
HOT 시드니 스위니 후왓웨어 3월호 풀화보 1 NeoSun NeoSun 2시간 전19:43 540
HOT [별빛우주재개봉관] '칠드런 오브 맨' 안 본 눈 ... 4 콘택트 콘택트 2시간 전19:15 429
HOT 커스틴 던스트, ‘스파이더맨 키스’ 촬영은 비참했다 2 카란 카란 3시간 전18:39 891
HOT [불금호러] 만우절을 대표하는 피의 영화 - 죽음의 만우절 8 다크맨 다크맨 10시간 전11:29 1425
HOT 원표 주연 '기문둔갑' 국내 포스터, 예고편 3 golgo golgo 5시간 전16:13 916
HOT (스포) 아리 애스터 '에딩턴' 촬영지 주민이 밝힌... 3 NeoSun NeoSun 4시간 전17:54 904
HOT '듄 파트 2' 뉴 세트장 샷 / 빌뇌브 감독 13살때 ... 4 NeoSun NeoSun 4시간 전17:38 943
HOT 패스트 라이브즈 - 초간단 후기 3 소설가 소설가 6시간 전15:37 581
HOT 임시완, 길복순 스핀오프 [사마귀]로 킬러 변신 4 시작 시작 5시간 전16:15 2108
HOT 넷플릭스 '삼체' 시리즈 투입예산 - 넷플릭스 사... 4 NeoSun NeoSun 4시간 전17:25 1101
HOT 영국판 드림 '홈리스 월드컵' 평가 좋네요. 3 golgo golgo 5시간 전16:27 687
HOT 파묘가 해외서도 통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인니 이어 베트... 2 시작 시작 5시간 전16:19 1301
HOT '오멘: 저주의 시작' 해외 호평 반응들 10 golgo golgo 8시간 전13:57 1766
HOT '극장판 스파이 패밀리' 관객 20만 돌파 1 golgo golgo 5시간 전16:06 608
HOT 일본 시부야 타워레코드에서 열린 비욘세 사인회 2 카란 카란 6시간 전15:23 697
HOT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메갈로폴리스' 첫 시사회 ... 8 NeoSun NeoSun 6시간 전15:03 862
HOT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보고 (해석/스포O) 4 폴아트레이드 7시간 전14:59 755
1130511
image
Sonachine Sonachine 6분 전21:56 59
1130510
normal
totalrecall 12분 전21:50 89
1130509
image
Sonachine Sonachine 18분 전21:44 76
1130508
image
golgo golgo 19분 전21:43 126
1130507
image
카란 카란 34분 전21:28 218
1130506
image
샌드맨33 37분 전21:25 123
1130505
image
golgo golgo 59분 전21:03 397
1130504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20:59 205
1130503
image
토루크막토 1시간 전20:53 223
1130502
image
e260 e260 1시간 전20:51 126
1130501
image
e260 e260 1시간 전20:51 176
1130500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9:43 540
1130499
image
톰행크스 톰행크스 2시간 전19:39 197
1130498
image
카란 카란 2시간 전19:33 501
1130497
normal
미래영화감독 2시간 전19:33 243
1130496
image
콘택트 콘택트 2시간 전19:15 429
1130495
image
totalrecall 2시간 전19:15 488
1130494
image
카란 카란 2시간 전19:11 661
1130493
image
카란 카란 3시간 전18:56 544
1130492
image
카란 카란 3시간 전18:39 891
1130491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8:03 378
1130490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7:54 904
1130489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7:38 943
1130488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7:25 1101
1130487
image
락스퍼국제영화제 락스퍼국제영화제 4시간 전17:12 200
1130486
normal
하늘위로 5시간 전16:32 520
1130485
image
golgo golgo 5시간 전16:27 687
1130484
normal
시작 시작 5시간 전16:19 1301
1130483
image
시작 시작 5시간 전16:17 685
1130482
image
시작 시작 5시간 전16:15 2108
1130481
image
golgo golgo 5시간 전16:13 916
1130480
image
golgo golgo 5시간 전16:06 608
1130479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16:02 318
1130478
image
영화에도른자 6시간 전15:57 997
1130477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15:53 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