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력] 장문평 - 그럼에도 난 이 영화를 지지한다.
우선 서두에서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염력>, 스크린 X로 봐야 한다."
연상호 감독의 <염력>을 오늘 여의도CGV 9관에서 Screen X로 관람했습니다.
역시 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
제작단계부터 여기에 최적화된 작품임을 확실히 실감했습니다.
이 영화의 상영포멧인 2.35:1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그대로 지원하면서도 준중형급 크기와 좋은 사운드까지 챙길 수 있었습니다.
마스킹 커튼 정도의 공간만 제외하면 스크린과 좌우 사이드 벽이 이어져서 스크린 X효과를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3면을 편안히 조망하기 위해 약간 뒷좌석에서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 영화를 일반관에서 보신다면,
<아바타>를 아이맥스 3D로 보지 않고 일반관에서 관람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덩케르크>를 1.43:1 아이맥스 GT급 화면으로 안보고 일반관에서 관람한것과 비슷합니다.
이 특별관에서는 일반관에서 놓쳤을 '정보'들이 채워집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감흥을 끌어올립니다.
만약 이 포멧으로 보지 않았다면 제 별점은 당연 반개정도 깎였을 겁니다.
그럼 본격적인 평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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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는 최대한 자제하였습니다.)
익무의 대세여론과 달리 난 연상호의 신작 <염력>에 대해 호의적인 소수파다.
연상호의 전작인 <부산행>은 그 엄청난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 참 아쉬웠다.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르적인 쾌감을 느낀 한편,
후반부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뮤직비디오같은 플레시백은 나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물론 이 영화역시 장단점은 분명하지만 약간의 망설임 끝에 난 지지하는 편에 선다.
다시 돌아온 연상호는 여전히 초기작들처럼 날카롭진 않으나 대신 좀 더 유연해졌다.
뉴스를 봤던 관객이라면 누구든지 이 영화를 보며 09년 용산참사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진압용 컨테이너의 등장은 더욱 노골적으로 이 비극을 상기시킨다.
정확히 이 작품에서 다루는 능력은 염동력(念動力)이다.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라고도 한다.
왜 하고많은 초능력 중에 이 능력일까? 기본적으로 이건 시간조작이나 레이저방출, 공간이동같은 인기좋은(?) 능력이 아닌,
물리적 힘에 기반한다.
감독은 아마도 심플한 생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는 법적이고 공적인 주체가 가하는 물리력에 대항하여 소시민이고 을의 위치에 있는 자가 물리력으로 맞부딪쳐 저항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 심플한 대결에서 결코 이탈하지 않고 밀고 나간다.
하지만 B급 코미디의 정서를 가미해 과하게 엄숙하거나 처절하지는 않게 누그려뜨렸다.
신석헌(류승룡)이 도로 위를 질주 할 때 서 있던 차의 사이드미러가 깨지는건 자연히 <다크나이트>의 패러디임을 짐작할 수 있고,
그가 후반 진압부대에게 둘러싸였다가 벗어나는 씬은 명백히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네오VS복제스미스 대결의 패러디다.
경찰진압부대가 포크레인을 위시하여 진격하는 장면은 심지어 <반지의 제왕 시리즈>까지도 오버랩된다.
그 조잡하고 만신창이인 방어막은 최후의 성채요, 돌진하는 포크레인은 거대 코끼리처럼 보인다.
규모는 비할 바가 못되지만 내게 그 시퀀스는 마치 한국형 헬름협곡 전투나, 펠렌노르평원 공성전같다.
연상호 감독은 그런 다양한 영화적 레퍼런스를 풍부하게 영화속으로 끌어들인다.
익스트림 무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키라>와 마찬가지로 <염력> 또한 초능력은 과시적인 것이 아니라(초반에 소시민인 주인공은 그럴뻔했지만)
무의식적이지만 약자가 이 비정한 세상에서 버텨내기 위한 마지막 환상의 생존술이자 방어기제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한마디로 이 영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감정을 가진 한 초인적인 인간이 무생물인 조직과 싸우는 이야기"
여기서 무생물인 조직은 당연히 슈퍼갑이자 대한민국 권력, 그 자체다.
영화 시작 1시간 뒤에 임팩트있는 캐릭터 홍상무(정유미)가 등장한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도 굴지의 기업의 상무씩이나 되는 것으로 짐작하건대 당연히 낙하산으로 내려온 재벌2,3세 일 것이다.
그녀는 협상테이블(?)에서 신석헌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결국 자신조차 슈퍼갑이 아니다. 가늠도 하기 힘든 더 높은 상층구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갑을 구조란 굉장히 다층적이고 레이어가 많다.
그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신석헌을, 그리고 또 다른 '을'인 민사장(김민재)를 벌벌 떨게 하는 것이다.
터전을 지켜나가기란 이토록 벅차다.
면세점이 들어서야하기에 법이란 아름다운 구실로 약자는 떠나야 한다.
루미와 김변호사가 얘기하는 뒤편으로 희미하게 중국단체관광객이 지나가는 장면은 결코 그냥 폼으로 집어넣은 씬이 아니다.
재개발 구역에 들어설 그 시내면세점의 최대 이용고객이 누구겠는가?
신석헌이 능력을 발휘하는 방식은 참 한국적이다. 다시말하면 토속적이다.
그가 기껏해야 똥폼잡고 움직이는 물건들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자.
소주병, 과자, 싸구려 라이타, 재떨이,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
그는 얼치기 유사 슈퍼히어로다. 이 영화가 본격적인 슈퍼히어로물은 아니지만,
초능력자 활극의 탈을 쓴 사회 고발 영화이자 B급 코미디, 풍자극이다.
초능력을 쓰는 캐릭터가 번뇌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 존재론적 고민. 대표적 예로 <X-MEN> 시리즈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사회안에서 역할에 대한 외적 고민. <스파이더맨2>에서 그점을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다.
<염력>은 후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너무 전형적인 선악구분이라고 지적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나는 신석헌이 염력으로 쓸어버리려하자 파르르 떨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진압요원에서 한 번 느꼈고,
진압용 컨테이너에서 떨어지려하는 경찰을 루미가 손을 뻗어 구해주려는 씬에서 또다시 느꼈다.
연상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가진 자는 무조건 악마, 못 가진 자는 천사 식의 이분법적으로 그려 오진 않았고
체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로 아무리 많이 벌어봤자 갑의 위치까지 갈 수는 없다."
그가 화살을 겨누고 있는 것은 개개인이 아니다.
대기업의 인물 몇몇도 아니다. 가늠할 수 없고 추상적인 이 사회 시스템 자체다.
이 작품의 러닝타임 101분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곁가지로 빠져서 이것저것 사회적 이슈를 담으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130억이 넘는다는 제작비를 그 많은 CG에 집중하기에 적절한 시간이기도 하다.
덕분에 상당히 비중이 큰 특수효과에도 이 작품의 후반작업은 단 5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결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잠깐이라도 느꼈다면 최후반 결과에 대해 굉장히 씁쓸했을 것이다.
영화상에선 결과적으로 무승부로 봉합하지만, 초능력으로도 이 한국사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도, 딸도, 주변인들도 웃고 있지만 그 안에는 서글픔이 감춰져있다.
이렇게 좋게 감상했지만 단점들이 분명히 많은 영화다.
특히 음악이 불만이다.
안그래도 B급 지향 풍자 코미디를 더 유치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이 영화를 저질로 느꼈을 관객이 많을텐데 충분히 일조했다.
스크린 X가 마침내 왜 필요한지 가치를 찾은 영화였지만 아직까진 완성도가 부족하게 보인다.
주로 주인공이 기를 모으고(?) 능력을 쓰는 장면에서 주로 쓰이지만 그 외의 씬에서도 쓰였다.
루미와 석헌이 국밥먹으러 가는 장면에서 회상으로 사용된 부가화면은 불필요하게 보였고,
뉴스보도에서 부가정보로 보여주는 경우엔 정말 유쾌했다.
또하나 아쉬운 건 류승룡이나 정유미(이 배역을 류승룡이 인터뷰에서 부러워했다고 한다), 민사장 역의 김민재 정도를 제외하면
주변 인물들이 그렇게 독특하거나 인상적이지 못했다는 점. 지극히 기능적인 연기만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사유와 철학적 깊이가 그렇게 깊진 않고, 줄거리도 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만으로도 박수쳐주고 싶은 새로운 영화다.
좀 더 잘 만들었으면 좋겠지만, 연상호의 야심이 다 발휘되진 못했지만,
보는 동안엔 충분히 즐겼고 더불어 우리 사회를 뒤돌아 보았다.
나에게 <염력>은 한국만의 아이덴티티가 활어처럼 살아숨쉬는 독특하고 회자될만한 코미디물로 남을 것이다.
연상호의, 우리 서민들의, 달콤하고도 잠시 통렬했지만 못다 이룬 꿈처럼...
★★★☆
텐더로인
추천인 19
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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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저도 말 그대로 '웃픈' 감정이었습니다. 조신하게 두손을 모으고 벌벌 떨던 전직 조폭두목출신 민사장이 아련할 겁니다...
맞아요. 많은 데자뷰를 봤습니다. 애초에 블랙코미디 자체가 대중적이진 않죠. 괴물도 괴수영화 기대하고 본 사람들이 아리송하고 정신없었다는 평이 꽤 있었던것 같아요(이때 어렸던 저 또한..)
블랙코미디 본분에도 충실하고 한국 느낌도 잘 살려서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화염병에 쇠막대기에..
경찰 한 분도 돌아가셨죠.
http://extmovie.maxmovie.com/xe/movietalk/29602689 아하 여기 댓글 다신 분이군요?
저랑 비슷하다고 글 달아주셔서 읽었습니다. 저도 영화 보기 전에 한번 읽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시간나면 영화 염력 분석을 너무 해보고싶어서 개요들도 쓰고 했는데 완성을 못하네요. 보면서 참 많은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스쳐가고, 그리고 그 많은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현실로 벌어지지 못 해서 구하지 못 했던 사람들이 떠오르는 영화였어요. 반지의 제왕이나 엑스맨은 또 새롭게 생각되네요. 특히 엑스맨 영화를 해석하시는걸 보고나니 문득 최근 개봉했던 <로건>은, 어찌보면 히어로 세대의 <용서받지 못한 자> 처럼 나름의 반성이 들어가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듭니다.
지금 읽어 보고 좋아요 눌러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