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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회 아카데미상 되돌아보기

makeneko make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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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의 새로운 변화?

2008년 80회 아카데미상은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색상을 수상한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승리로 끝났다. 남녀 주연상은 각각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라비앙 로즈>의 마리온 꼬띨라르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의 영화 속 비중은 사실 주연이나 마찬가지다. 시종일관 영화의 긴장을 이끌어간 것은, 절대악의 표상과도 같은 킬러 안톤 시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이었다. 결국 아카데미는, 인디영화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시나리오, 연출, 연기 등 전 분야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1991년 <바톤 핑크>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쥔 코엔 형제는 마침내 할리우드에서도 그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80회 아카데미상의 결과를 놓고, 이변이나 변화라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 인디영화와 비할리우드의 승리라고 보거나 폭력적인 영화를 홀대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다. 결과만으로 본다면, 그런 해석을 덧붙이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 특유의 유머가 돋보이면서도 싸늘하고 강도 높은 폭력이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연기상을 받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마리온 꼬띨라르, 하비에르 바르뎀, 틸다 스윈튼는 모두 미국 출신이 아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주노>는 청춘영화이며, 시나리오를 쓴 디아블로 코디는 스트리퍼 출신이다. 올해 아카데미에는 단골손님인 거대 서사극과 휴머니즘 영화, 장애인 영화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카데미라는 상의 본질적인 변화가 아니다. 아니 그 이전에 아카데미상에 대한 인식부터 재고할 필요가 있다. 아카데미상은 1927년 창설된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주관으로 1929년부터 매년 봄에 시상식을 한다. 작품을 선정하는 사람은 영화계 출신의 아카데미 회원들이고, 대상은 전해에 발표된 미국영화 및 미국에서 상영된 외국영화다. 세계 영화계의 권위 있는 인물을 초청하여 심사하는 국제영화제와는 달리, 아카데미상은 아카데미 회원으로 있는 영화인들 모두가 영화를 고르게 된다.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를 따지는 것도 당연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기준이 그 이상으로 강하게 들어간다. 아카데미는 약간은 보수적이고 ‘좋은 영화’를 원하는 미국인들이 선택하는 영화상인 것이다. 자연히 미국적이고, 대중적인 영화가 많은 상을 받게 된다.

예술작품에 대한 시상이 절대적으로 공정할 수는 없다. 운동시합처럼 명확하게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 누구나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영화가 있는 것처럼, 예술작품의 평가는 개인에 따라 달라진다. 아카데미상 역시 마찬가지다. 아카데미상은 절대적으로 잘 만든 최고의 영화에게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회원들이 꼽은 좋은 영화에게 상을 준다. 아카데미상은 세계의 수많은 영화상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다만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기 때문에, 미국의 영화상 중에서 아카데미상이 가장 크고 화려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주목하는 것뿐이다. 만약 올해 미국영화에서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를 찾고 싶다면 영화평론가협회 등에서 주는 상을 보면 된다. 아카데미는 자신들의 기준대로 상을 주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좋은 영화를 홀대했는가, 라고 비난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아카데미상 고유의, 적합한 선택이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낫다.

아카데미상이 좋아하는 영화에는 몇 가지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 액션이나 스펙터클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영화가 아니라 인간미가 느껴지는 감동적인 영화. 서사극이면 더욱 좋다. <늑대와 춤을> <쉰들러 리스트> <브레이브 하트> <타이타닉>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아카데미는 ‘휴머니즘’에 높은 가중치를 둔다. <레인맨>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뷰티풀 마인드> <크래쉬> 같은 영화들. 반면 장르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죠스> <미지와의 조우> 등 수많은 장르영화의 걸작을 만들어냈지만 결국은 유태인 학살을 다룬 <쉰들러 리스트>로 작품상을 수상했다. 제임스 카메론도, 피터 잭슨도 마찬가지다. 또한 아카데미는 공포영화와 코미디를 유난히 싫어한다는 평판도 있다. <양들의 침묵>과 <애니 홀>이 각각 전형적인 공포영화와 코미디를 넘어선 작품성으로, 처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장르영화라고 해도, 그 안에 뭔가 인간적인 고뇌가 담겨있다면 아카데미는 선택하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사실 아카데미가 예술영화, 작가주의 감독을 싫어한다는 것은 오해에 가깝다. 나름 선호하는 기준이 확실할 뿐, 예술영화 취향은 존재한다. 다만 새로운 경향이나 급진적인 실험 등에는 확실히 둔감하다. 또한 신세대적인 감각이나 도발적인 문제제기 등을 던지는 신예 아티스트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안정지향적인 경향이다. 마틴 스콜세지는 세계가 인정하는 거장이었지만, 2007년 <디파티드>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을 때까지는 무관의 제왕이었다. 최고작으로 평가되는 <성난 황소>는 무시당했고, <좋은 친구>는 후보에 올랐지만 비껴갔다. 그럼에도 마틴 스콜세지에 대한 평가가 낮았던 것은 아니다. 아카데미는 거장들을 존중하지만, 작품상을 안겨주기에 적당한 작품을 기다리는 것이다. <디파티드>가 사실 작품상을 받을만한 걸작인가라는 의문은 있겠지만, 아카데미는 마틴 스콜세지를 거장으로 추인할 기회를 기다린 것이다.


아카데미가 오랜 세월 홀대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에게 상을 주었을 때처럼. 노년의 배우들을 선호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부극을 재해석한 <용서받지 못한 자>에 이어, 2005년에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다시 작품상을 받았다. 이처럼 할리우드는 거장을 좋아한다. 다만 거장이, 그들이 생각하는 품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마틴 스콜세지가 젊은 날에 만든 영화들은 너무 거칠고, 폭력적이었다. 감독은 아니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더티 해리> 시리즈는 아카데미와 가장 거리가 먼 영화들이었다.

아카데미가 휴머니즘의 감동이 있는 대하 서사극을 좋아하긴 하지만, 작은 영화도 꽤 좋아한다. <보통 사람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아메리칸 뷰티> <크래쉬> 같은 영화들이다. 물론 인디영화에게 덜컥 상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인디영화 선정에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인디영화를 만드는 주된 이유는, 감독이 유명하지 않기 때문도 있지만 상업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인디영화는 대체로 낯선 소재와 특이한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영상도 실험적이다. 아카데미는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영화들에 인색하다. 하지만 올해의 <주노>와 작년의 <미스 리틀 선샤인>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낯설지만 않은 인디영화라면 아카데미는 쉽게 받아들인다. 문제는 인디영화 자체가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는 영역과 다루는 방식의 문제인 것이다.

아카데미상도 수많은 상들 중 하나일 뿐

89년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90년 데이빗 린치의 <광란의 사랑>, 91년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로 칸영화제 그랑프리 3연패를 거둔 미국 인디영화의 감독들은 속속 할리우드로 진입했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침체기를 거쳐 야심작인 <트래픽>과 영리하고 상업적인 <에린 브로코비치>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카데미도 그를 인정했고, 지금 스티븐 소더버그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감독 중 하나다. 반면 데이비드 린치는 여전히 난해하면서도 숨막히는 인디영화 걸작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마 데이비드 린치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코엔 형제는 한때 메이저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꾸준하게 인디영화계에서 작업하고 있다. 코엔 형제의 서늘한 폭력과 비틀린 유머는 주류에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결코 다수의 대중이 기꺼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린치의 난해함에 비해, 코엔 형제의 영화는 보다 장르적인 모양새를 갖춘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아우라가 전달된다. 코엔 형제가 데이비드 린치에 비하면, 보다 대중적인 감독인 것이다. 아카데미는 쉽고 감동적인 영화를 원한다. 언제나는 아니어도, 근사치를 찾는 것이다.


80회 아카데미의 승자가 된 코엔 형제

이미 말한 것처럼, 아카데미는 미국인을 위한 영화제다. 그들의 기준에 맞는, 그들의 영화를 선택하여 격려하는 축제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선택받지 못하여 기분이 상할 수는 있지만, 그게 잘못이라고 따지기는 힘들다. 아카데미는 그들의 축제일뿐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영화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다양한 나라의 독특한 영화를 발견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다. 미국에는 아카데미만이 아니라 외신기자들이 주는 골든 글로브상도 있고, 평론가들이 주는 상도 있고, 인디영화에게 주는 인디 스피리츠상도 있고, 최근에는 장르영화들에만 주는 스크림 어워드도 있다. 프랑스에는 세자르상이 있고, 일본에는 일본 아카데미상이 있고, 모든 나라에 자국의 영화에게 주는 상이 있다. 좋은 영화를 보고 싶다면, 참고할 수 있는 영화제가 아카데미 말고도 수없이 많다. 아카데미는 단지 하나의 기준일 뿐이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는다 해도, 그건 단지 한국영화가 미국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카드 하나가 주어진 정도다. 그것이 영화에 대한 절대적인 인증이 될 수는 없다.

아카데미 수상작 리스트들을 죽 훑어보면, 사실 크게 재미는 없다. 너무 순하고 감동적인 영화들로만 가득하다. 그렇다고 칸영화제 그랑프리가 절대적인 우위를 갖는 것도 아니다. 이쪽은 또 너무 고상하고 가슴이 무거워진다. 그보다는 자신만의 영화상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2007년에 보았던 영화들을 적어놓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영화, 감독, 배우 등을 뽑는다. 아카데미를 맹신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눈을 믿고 안목을 기르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아직 우리는, 한국영화에 대한 권위 있는 상조차 제대로 없지 않은가.

makeneko makeneko
20 Lv. 38909/39690P


익스트림무비 편집위원
영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
<전방위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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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자신만의 안목을 길러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아무리 상을 많이 받은 작품이라도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면 그냥 패스해버리기 마련이죠.
00:10
08.03.06.
2등
조조할인
아케데미에 대한 오해를 풀수 있는 좋은 글이군요..
12:47
08.03.08.
3등
헬 몬트
부정부패 속.그리고 영화제를 서로가 무시하는 한국영화계가 뭐 오죽하겠습니까?
15:27
08.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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