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80년대의 영웅 실베스터 스탤론
makeneko

록키와 람보, 영웅은 결코 죽지 않는다
80년대 최고의 액션 스타였던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실베스터 스탤론은 작년의 <록키 발보아>에 이어 <람보4: 라스트 블러드>까지, 80년대의 히트작 시리즈를 다시 만들고 있다. 중년에 접어든 어른들의 향수도 자극할 겸, 새로운 관객도 끌어들 겸 해서 히트작의 속편을 오랜만에 만드는 것은 할리우드에서 익숙한 일이다. 작년에는 <다이 하드 4.0>이 성공을 거두었고, 올해는 <인디아나 존스>의 신작이 개봉한다. 그럼에도 <록키>와 <람보>의 신작은 좀 떨떠름한 이유는 있다. 록키와 람보라는 캐릭터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80년대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21세기에도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까? 실베스터 스탤론은 어떤 생각으로 그들을 부활시킨 것일까?
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면, 록키와 람보에 혹한 적이 없다는 남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빈민가 출신으로 세계 정상에 오르는, 보통 사람들의 소망인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권투선수 록키 발보아. 전직 특수부대원으로, 미국의 적을 박살내버리는 근육질의 영웅 존 람보. 록키와 람보는 강한 미국을 주창하는 80년대 미국의 상징이자, 젊은 남자들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는 위대한 영웅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역경을 뚫고 일어나, 정상에 우뚝 서는 영웅에게 반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지나치게 폭력적인 결점이 있다 한들.
8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는 무지막지한 액션을 보여주는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츠네거였다. 동시대의 브루스 윌리스와 해리슨 포드가 인간적인 영웅이었다면,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인간의 감정이 배제된 것 같은 초인이었다. 오로지 싸워 이기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사이보그나 전투 병기 같은 이미지. 람보가 그랬고, 터미네이터가 그랬다. 강한 미국을 선언했던 레이건 정부에게는 람보와 터미네이터 같은 존재가 필요했고, 냉전에 물들어 있던 대중에게도 그들이 필요했다. 공공의 적을 확실하게 말살하는 초인은 80년대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면서, 비인간적인 초인은 존재 가치를 잃었다. 세계의 전장에 공개적으로 투입되었던 람보는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었고, 터미네이터는 인간을 지키는 선한 로봇으로 변모했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배우로서의 가치도 함께 하락했다.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조금 더 버티긴 했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은 금방 몰락했다. 그들은 액션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머리가 빈 근육질의 마초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근육질의 액션스타는, 단지 스크린에 비치는 모습뿐이다. 지금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것에서 보이듯이, 오스트리아에서 건너 온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아주 현명하게 자신의 경력을 관리했다. <코난>과 <터미네이터>로 스타 반열에 오른 후, 폭력적인 영화에 나오면서도 아놀드의 이미지는 언제나 ‘선한 영웅’이었다. 공화당원이면서도 케네디 가문의 부인과 결혼한 것도 눈에 띈다. 아놀드 슈알츠네거만큼의 정치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실베스터 스탤론 역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직접 쓴 <록키>의 시나리오로 영화사와 접촉하여, 자신을 주연 배우로 쓰지 않으면 팔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스탤론 자신이었다. 베트남전의 상처를 안고 돌아왔다가 미국의 냉대와 폭력에 반항했던 반영웅 람보를, 세계의 경찰로 분쟁지역에 파견되는 미국주의 영웅으로 변모시킨 것 역시 실베스터 스탤론이었다.
1946년생인 실베스터 스탤론은 마이애미대 연극과를 나왔지만 단역만을 전전했다. 포르노영화에 출연했던 것도 당시의 일이다. 무기력하게 20대를 보내던 실베스터 스탤론은 전설적인 복서 록키 마르시아노의 생애와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무하마드 알리의 시합에서 영감을 얻어 <록키>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필라델피아의 빈민가에서 자라나, 사채업자의 하수인 노릇으로 살아가던 인생의 낙오자 록키가 쉬운 상대를 고르던 세계 챔피언의 도전자로 낙점되어 멋진 경기를 펼친다는 이야기였다.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우연히 알게 된 복싱. 단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 애드리안을 위해 록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록키 발보아>(2007)
권투선수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록키>는 인생의 교본 같은 영화였다.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워버리는 일본의 권투만화 <내일의 죠>처럼, 존 G. 아빌드센이 연출한 <록키>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북돋아 주는 가슴 벅찬 영화였다. <록키>는 1977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을 수상했고 실베스터 스탤론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자신이 직접 쓰고 주연까지 한 <록키>로, 실베스터 스탤론은 단숨에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 아메리칸 드림은 영화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베스터 스탤론은 현실에서도 증명했다. <록키 2>는 다시 챔피언에게 도전하여 승리를 거두고, <록키 3>은 자만에 빠져 패배한 록키가 마음을 다잡고 훈련에 매진하여 챔피언을 되찾는다. <록키> 시리즈는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따라가고 있었다.
<록키> 시리즈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실베스터 스탤론은, 테드 코체프 감독의 <람보>(1982)에 출연한다. <람보>의 원제는 <First Blood>이고, 데이비드 모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었다. 베트남전에 갔던 존 람보는 정신적 상처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미국은 참전용사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험한 범죄자 취급을 하다가, 경찰서에 끌어가서 폭행을 한다. 람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복수를 위해서 폭력을 쓴다. 이처럼 <람보> 1편은 미국중심주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영화였다. 지역 경찰에게 쫓기면서, 특수부대에서 배운 전투기술과 생존기술을 총동원하여 싸우는 람보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했을 뿐이다. <람보> 1편의 존 람보는 미국주의의 화신이 아니라, 상처받은 아웃사이더였다.

<람보>(1982)
그러나 1985년에 만든 <록키 4>와 <람보 2>는 완벽하게 ‘미국 만세’를 외치는 영화로 변모했다. <록키 4>에서 록키가 싸우는 상대는 소련에서 인간 병기로 만들어진 이반 드라고였다.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을 치르는 것처럼, 록키는 비인간적인 소련 선수를 물리치고 성조기를 몸에 휘감는다. <람보2>는 아예 베트남으로 향한다. 유일하게 미국이 패퇴한 베트남에서, 람보는 1인 군대로 완벽하게 부활하여 과거의 상처를 씻어버린다. 아쉽게도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80년대 냉전의 정체를 직시할 수 있는 지성은 없었다. 다만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대중이 무엇에 열광할 것인가, 는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낙오자와 아웃사이더의 용기를 보여주었던 <록키>와 <람보>는 80년대라는 시대 상황에 완전히 현혹되어 반공과 미국주의를 부르짖는 일종의 선전영화가 되었다. 레이건이 공개석상에서 농담으로 ‘람보를 보낼까?’라고 들먹일 정도로.
<록키>와 <람보> 시리즈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지만, 한편으론 독이 되기도 했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미국의 영웅에 도취하여 자신의 연기를 잃어버렸다. <록키>의 다정하고 겸손한 이웃은 사라지고, 거들먹거리며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는 조작된 영웅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클리프행어>(1993)가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것을 제외하고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인기는 끊임없이 추락했고 90년대 말에는 거의 잊혀진 배우가 되었다. <오스카>(1991) 등의 코미디 연기는 완전히 실패했고, <캅 랜드>(1997)의 진지한 연기가 잠깐 주목받기는 했지만 끝없는 추락으로 일관했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영웅 연기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최악의 영화와 배우에게 상을 주는 골든 래즈베리상 후보에서 거의 빠지지 않았다.
21세기 들어서 활동조차 뜸했던 실베스터 스탤론은, 2006년 느닷없이 <록키 발보아>를 들고 나왔다. <록키> 시리즈의 6번째 영화였다. 모든 이의 우려가 앞섰지만, <록키 발보아>는 대체로 호평을 들었고 미국에서만 7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록키 발보아>는 1편의 감동을 떠올리게 하는, 잔잔하면서도 힘찬 영화다. 과거의 영광만을 기억하며 레스토랑 주인으로 살아가던 록키는,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복싱을 시작한다. 자신이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1편에서 패배자였던 록키가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권투에 헌신했듯이, 노년에 접어든 록키는 다시 자신의 야성을 되찾으려 한다. 이 세계에 온몸으로 부딪쳤던 그 시절을 다시 기억하려 한다. 그 절실함이, <록키>를 기억하는 대중이 다시 <록키 발보아>에 공감하게 만들었다.

<람보 4: 라스트 블러드>(2008)
<람보4: 라스트 블러드>도 다르지 않다. 람보는 여전히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은 채 홀로 살아가고 있다. 람보는 고향으로 돌아가 평화롭게 살 수가 없었다. 그런 람보에게 다시 전장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 어쩔 수 없이 람보는, 싸우는 것으로 자신을 직시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미 냉전은 사라졌고, 록키와 람보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그들을 부활시킨 것은, 냉전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냉전의 아수라장에서 박제가 되어버린 그들을 깨우기 위한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록키>와 <람보> 1편의 감동과 여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반공 전사가 되어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던 ‘기계’가 된 것을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록키와 람보에게 다시 피와 영혼을 불어넣어, 다시 인간으로 깨어나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영웅은 결코 죽지 않는 존재다. 한때 크나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makeneko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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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질주 4편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독으로선 자신이 주연 맡는 '정복자 한니발'을
만든다고 발표는 했는데 그 부분의 소식은 아직 없네요.
기대하는 배우인데, 너무 액션쪽으로만 치우친 것 같아서
저도 좀 걱정입니다. 경력에 도움되는
작품 하나쯤 있어야할 텐데 말이죠.
친구들과 람보랑 코만도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에 관해서 혈압 올려가며 이야기 했던 기억이 새록 새록한데...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군요.
저 어렸을 적에는 람보와 코만도가 우상이었는데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니..그당시에 로봇 태권V와 건담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로도 종일 설전을 벌이곤 했던 때였네요.
아울러, 스탤론과 아놀드는 비교 자체가 안돼죠. 스탤론은 영화를 위한 모든 능력을 갖추었던데 비해 아놀드는 근육만을 들고 나왔던 배우였으니까요. 코만도에서 보여줬던 그 탁월한 무표정 연기... 아놀드는 명성을 얻었으나, 스탤론은 아직도 헐리웃 역사상 가장 돈을 많이 번 배우로 되었네요. 히유... 람보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앞으로 스크린에서 영원히 스탤론을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씁쓸했습니다.
























무엇보다 각본가로서의 능력도 있다니 =_=
개인적으론 선댄스 영화제였나요? 감독경력도 있다는 반디젤이 뒤를 잇지 않을까 했는데...
요즘 분위기론 와전히 "'GG"분이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