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끝내 탄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용산CGV 박찬욱관에서 보았습니다.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멍하군요. 길게는 못쓰겠습니다.
격한 표현이지만 영화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치고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릎꿇고 읍소하는 심정입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건강이 안녕하다면, 꼭 가서 보시기를 말이죠.
이 작품을 보면서 다시금 지난번 보았던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영화 모두 대만영화의 거대한 봉우리이자 시대의 아픔과 가족의 비극을 담아낸 탁월한 시선이 닮아있죠.
4K 리마스터링의 위력으로 지난번 영자원에서 본 <비정성시>보다는 훨씬 좋은 화질로 감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그 풋풋함과 아름다움, 카메라의 시선, 탁월한 양식에도 불구하고 인터미션(10분) 전까지는
이 작품이 왜 그토록 세계의 평론가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하고 중화권을 넘어 아시아 최고걸작으로 꼽히는지 약간의 의아함을 품고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지점에선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오버랩되기도 했습니다.
소년들의 얽히고 설킨 지하세계의 관찰, 특히 '캣'이라는 귀엽고도 웃음을 자아내는 아이의 모습이 그 작품을 연상시키더군요.
하지만 3시간 57분을 다 보고 나서 끝내 장탄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대사가 주어진 캐릭터만 100명이 넘어간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아역시절 장첸이 연기한 '샤오쓰'지만
진짜 주인공은 50년대말과 60년대 초의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간 대만인들 그 자체였습니다.
샤오쓰의 아버지가 형을 때리는 최후반 장면부터는 너무나 서글퍼졌습니다.
그 이후부터 영화가 끝날때까지는 정말 눈이 충혈될 정도로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국공내전 후 10년이 지났지만 외성인들(본토에서 대만섬으로 넘어온 중국인들)의 삶은 고통의 상처만 곪아졌고
무엇에도 의지할 것 없던 어린 영혼들은 갱단을 조직하여 자신들만의 작은 세상을 꿈꿉니다.
생활의 터전인 마을은 일본과 미국이 남기고간 유물들(일본여인의 단도, 미군의 엘비스 프레슬리 레코드)에 둘러싸여 음울한 시대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샤오쓰가 영화세트장에서 훔쳐 분신처럼 지녔던 라이트는 잠시 작은 빛을 비춰주었지만 마침내 그 소년은 그걸 제자리에 내려놓고 무지의 영역으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 그를 기다립니다.
샤오쓰는 순수를 간직했던 문학소년에서 마지막 빛을 잃었고
아버지의 본토의 향수와 이상은 산산조각났고
종교에 의지하던 셋째는 동생의 비극에 끝내 오열합니다.
고장나서 오락가락하던 라디오가 마지막엔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와 희소식을 알리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비극, 시대의 격랑에 함몰된 개인과 가족의 비극을 목도하며 저도 절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영화속 팝송들이 그 시대의 슬픔을 배가시킵니다.
영화가 국가, 역사, 사회, 가족, 개인을 다루는 그 모든 고민과 시선들이 프레스코벽화처럼 그려졌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울다가 웃던 밍(양정이)의 클로즈업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텐더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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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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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어제 보고 잠들 때까지 후유증에 시달렸네요 ㅋ..
답답함이 고스란히 전이된 듯한 ㅠㅠ
말씀해주신 밍이 세트장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을 때 울다가 웃었던 장면이 저도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대만이 겪어온 시대사적 비극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라디오가 결국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장첸이 한 대학의 문학부에 합격했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고 너무나도 서글펐습니다.
대사가 주어진 캐릭터가 100명이 넘는다는 건 처음 알게된 사실이어서 굉장히 놀랍습니다! 장첸 배우와 양정이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았고, 말씀해주신 캣 역을 맡은 배우의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작품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뜻 깊은 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