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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와 <박열> (스포있습니다)

파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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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첫 씬부터, 봉준호는 이 영화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루시 미란도가 발을 올리는 표시(아이들이 어디에 올라야 할 때 이런 것들이 있곤 하죠)나, 팔과 입을 한 껏 벌리고 빼다(배경)와 어우러지는 장면은 어떻게봐도 봉준호가 문득이 그림을 떠올렸고, 이걸 꼭 찍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관객들은 이런 장면에 당황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이런 욕망을 대놓고 전시하는 건 선언이라고 밖에 볼 수 없죠. 이 외에도 몇몇 장면은 굉장히 튀어요. 이건 꼭 들어가야해! 라고 하듯이, 들어간 그림들이 꽤 됩니다.

 

저는 이 영화가, 아주 오래전에, 봉준호가 만화가를 꿈으로 삼았던 시절 떠올렸던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그 전에 그가 보여줬던 영화에 비해 만화에 매우 가깝습니다. <설국열차>까지는 이야기의 기승전결과 이른바 '영화적'인 여운에 관해 끝까지 붙잡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게 없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괴물>과 동일합니다. 새로운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장면이지요. 하지만 그 과정이 <괴물>과 다르기에, 남는 여운자체가 확 다릅니다. <옥자>에서는 우리가 감정이입할만한 누구도 희생당하지 않습니다.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본 <옥자>는 재미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루함을 호소하는 것 같던데, 집에서 모니터로 봤다면 그럴만했을거란 생각은 들더군요. 넷플릭스는 분명히 동시공개를 봉준호에게 전제로 하고 작업을 제안했을 것입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을 것' 이외에는 어떤 조건도 없이 투자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영화를 사랑하는데 있어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사람인 봉준호가, TV에서 봐도 똑같은 영화를 찍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뭐 구체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스크린으로 보시는게 온전한 재미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희생당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 영화가 만화를 지향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봉준호는 <플란다스의 개> 이후 매우 전략적이고 정치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저는 <살인의 추억>부터 <설국열차>까지. <플란다스의 개>를 제외한 모든 작품이 '한국 사회'라는 틀을 매우 민감하게 바라보고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마더>를 제외하고는 그 촛점이 매우 디테일하다고 봅니다. <마더>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옥자>의 동물보호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만드려는 그림의 명분으로서 오히려 끼어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오히려 '미자의 대모험'이 되었어야 더욱 적당하다고 느껴집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이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성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고, 그 엄청난 모험을 하지만 미자가 성장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밥을 먹고 아기 돼지가 옥자가 좋아하는 감(대봉시로 보이는)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장면일 뿐입니다. 미자가 옥자를 구출하는 이 모든 사고와 모험과 하여간 우당탕하는 것들이 미자에게는 별다른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큰 일도 아닌데, 내 가족을 찾아왔을 뿐인데 뭐 그리 대단히 어른이 될 일도 없죠.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봉준호에게 더 큰 기대와 신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650억이라는 투자와 완전한 자유를 보장한 조건을 제안 받았을 때, 그는 <옥자>를 들이밀었습니다. 뭔 술수를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틸다 스윈튼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고(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excutive producer에 그녀의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헐리웃 A급 배우들을 시덥잖은 배역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특히 릴리 콜린스는 굳이 왜 했을까 싶더군요. 아마도 비건이거나 동물학대에 반대하는 성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이크 질렌할 역시 비슷한 느낌입니다만, 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더군요) 이런 기회에 그는, 자신이 지금껏 보여준 능력 중 <플란다스의 개> 이후 가장 개인적인 것을 내놓았습니다. <설국열차>가 그 시험대 였다면, <옥자>가 본격적인 완성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다음 작품은, 또 다른 무언가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토록 자본에 두려움이 없는 감독이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박열>

 

'이준익'이라는 이름은 참 괴상합니다. 만드는 영화마다 나쁘지 않게 흥행을 하고 있고, 완성도 역시 중상은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님은 먼 곳에>입니다. <왕의 남자>의 흥행에 경도 되지 않고 자신이 하던 것을 꾸준해왔습니다. 경제적으로 찍고, 와꾸를 신경쓰며, 그 와중에도 자신이 이 영화를 '왜' 만드는 지에 대한 것을 잊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점은, 이런 고려 사항들이 '어떻게'에 충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동주>까지도 이준익이라는 사람이 영화를 '잘' 찍는 사람인지 확신 할 수 없었습니다. <동주>는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윤동주라는 유명인을 소재로 하지만, 주인공은 오히려 그의 친구인 송몽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아는 윤동주가 어떻게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를 잘 소개했었죠. 하지만 쉽사리 설득 당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열>은 좀 다르더군요. 온전히 박열과 김자문자(가네다 후미코)의 이야기였습니다. 방법론은 비슷합니다. 박열도 박열지만, 후미코의 비중은 그에 뒤지지 않더군요. 아니, 후반부에 가면 후미코가 더욱 가슴에 남습니다. 영화에서는 후미코가 마치 살해 당한 것인지, 마지막 저항으로 자살한 것인지 애매하게 처리가 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 남아있는 사료에 의하면, 후미코는 자살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죽음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였다는 설명이 따라옵니다.

 

정서를 정말 잘 조직했습니다. 생각해보셨겠지만, 이 영화에는 많은 장소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사회주의 오뎅집, 길거리, 심문실, 감옥, 법정. 이게 거의 전부입니다. 저는 보고 나와서 시간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2시간 20분이 지났더군요.

 

이준익의 연출도 훌륭했지만, 이제훈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나키스트, 불령선인, 식민지 피지배인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로서의 표현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감독이 배우에게 신세진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빈 곳을 메우는 연기를 매우 잘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최희서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불우한 환경을 거쳐 차별에 저항하고 '지배'와 '권력'에 저항하는 여인을 잘 표현했습니다. 사실상, 영화를 보고나면 박열보다 후미코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독립투사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몇 년 전 <암살>의 안옥윤을 통해 알려진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이화림. <밀정>을 통해 더 알려진 의열단장 김원봉 등. 더 막 파고들어서 알아야한다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게 거지같고 세상돌아가는게 과거와는 달리 더럽게 빠른데요. 하지만, 이들이 가졌던 억울함과 열정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뭐 그리 많이 달라졌나요? 과거에는 외세가, 그 다음엔 자본가가, 그리고 지금은 시스템이 우리는 좆같이 얽매고 '조용히 하고 살아라'라고 말하는데요. <박열>은 잘 만든 영화입니다. 그 시대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도 충분히 적용가능한 이야기이고, 심지어 재밌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p.s : 영화의 마지막에 '박열은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되었다' 라는 자막이 나오던데. '수여'는 살아서 훈장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 경우엔 '추서'가 맞습니다. 왜 이런걸 틀리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박열은 1974년, 71세에 북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손주의
7 Lv. 4977/57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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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에서 처음과 마지막에 달라진 것이라면 처음엔 닭장안에 갇혀있던 닭들을 마지막엔 풀어놓고, 옷 색이 완전히 바뀌었네요.  적색, 보라색 계통의 헤진 옷에서 완전 희고 보다 세련된 옷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치 처음 나왔던 루시의 옷처럼 흰색이네요.)

이걸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각자에게 달려있겠죠.

마지막에 미자가 잠들어있다가 깨어나는 장면은 이전까지의 모든것이 마치 미자의 악몽이었던것 마냥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미자가 마냥 순수한 어린아이로 보이지만 제가 보기엔 본질적으로는 미자=루시=낸시 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머리 스타일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평론가 듀나씨는 미자가 성장했다고 얘길 하던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보는지에 대해선 본인에게 따로 물어봐야되는 문제겠지만요.


제목이 옥자인것은 아무래도 생생한 현실 세계를 체험하며 직접 자신의 눈으로 목도를 하며 직접적으로 고통을 받고 소비되는 주체가 옥자와 그를 비롯한 여타 유전자조작 생명체들이기때문에 그런것이 아닐지 싶습니다. 말만 못할뿐이지...


영화를 봤을때의 인상은 옥자를 둘러싼 각 이익집단들의 촌극을 영화가 만감이 교차하는 눈으로 바라보는것 같았습니다.

옥자 자체가 소비되고 이용되고 착취당하고 학대당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모든 존재들의 거대한 상징물 같기도 했고요.

10:47
1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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