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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스포 많은 잡담...

NEil NEil
214662 14 7

앞서 짧은 감상 남기기도 했는데,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좀더 길게 써봅니다.

 

1. 불한당의 첫 장면에서 권총 이야기가 대화로 삽입됩니다.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히는 칼이나 도끼(고대사람들의 무기)에 비하여, 현대사람들이 사용하는 권총은 사람의 죄책감을 줄여준다고요.

 

2. ‘단검은 길이가 짧아 죽는 자의 입김을 코로 맡으며 죽여야 한다. 이 얼마나 복수하는 자에게 어울리는 잔인한 칼인가.’

위의 문구는 <장철 쇼브라더스 걸작선> DVD 박스세트에 포함된 해설책자에 적힌 문구인데요. 읽고 나서 일부러 메모할 만큼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불한당>의 엔딩에서 제가 떠올린 문구가 바로 저것이었습니다.

현수는 재호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그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아 죽입니다. 현수는 재호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손바닥으로 쏟아지는 재호의 입김을 느꼈겠죠.

과연 현수는 죄책감을 느꼈을까요? 아니면 복수의 쾌감에 기쁨을 느꼈을까요? 확실한 것은, 현수는 그 무엇보다 잔인하고 비정한 방식으로 재호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느와르답죠.

 

3. 영화는 편집실에서 이뤄지는 마술이며, 연출의 질은 숏과 숏의 전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여기에 속하는 좋은 예가 (당장 떠올리자면) 박찬욱 감독인데요. 정말이지 숏과 숏의 전환을 기가 막히게 잘 처리하지요. 그런데 변성현 감독도 이걸 상당히 잘해내요. 데뷔작 <마이 PS 파트너>를 처음 봤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이 그 숏과 숏을 전환하는 센스와 시원시원한 편집감각 때문이었지요.

재미있게도, <불한당>에서 첫눈에도 <올드보이>와 유사한 숏이 하나 나옵니다. 벤치에 누워 있던 현수가 옆으로 돌아눕자, 그 측면에서 붉은 피를 쏟아내는 어머니와 마주보는 숏이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최면에 걸리면서 옆으로 돌아눕자 배경이 풀밭으로 변하는 숏과 유사하지요. 그것 말고도 <불한당>에선 뭔가 박찬욱스러운 숏이나 편집이 여기저기 속출해요.

 

4. 비유하자면 변성현 감독은 데생의 기본기가 탄탄한 화가 같아요. 아무리 심오한 내용, 재미있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있어도 그걸 제대로 풀어낼 스킬이 없으면 결과물은 엉망일 수밖에 없지요. 소설이나 영화 등은 ‘무엇’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인데 요즘 한국영화들을 보면 ‘무엇’은 차치하고, ‘어떻게’ 풀어낼지도 몰라 영화를 망치는 경우가 다반사예요. 적어도 변성현 감독은 ‘어떻게’ 풀어낼지는 잘 아는 것 같습니다. 흔한 언더커버 소재의 <불한당>을 뻔하지 않게 풀어낸 솜씨를 보면요.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는 꽤 잘 아는 감독 같으니, 다음 차기작에는 ‘무엇’을 이야기할지 고민하면 더욱 발전하겠죠.

 

5. 비슷한 소재 때문에 <신세계>와 비교당하는데요. ‘무엇’을 ‘어떻게’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신세계는 ‘무엇’에서 성공했고, <불한당>은 ‘어떻게’에서 성공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대중들은 신세계의 진한 형제애 이야기에 더 호감을 보일 거예요. 물론 저처럼 불한당의 비정한 세계에 더 호감을 표하는 쪽도 있겠지만... 이건 어느 쪽이 더 옳고 그르냐의 차원이 아니라 그냥 취향 차이겠죠.

하지만 ‘어떻게’, 만듦새나 연출 측면에서 보면 전 <불한당> 쪽에 무조건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네요. 제가 정정훈 촬영감독을 무척 좋아하는데 <신세계>는 나중에 촬영감독 이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술도 별달리 언급할 부분도 없었구요. 신세계 코멘터리를 들어보니 박훈정 감독이 계속 ‘예산에 비해 효율적으로 찍었다’고 강조하긴 합니다만...

 

6. 불한당 결말부 시퀀스를 보고 엉뚱하게도 전 예전에 <은교>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사다리에 올라타서 2층 창문을 통해 시인이 은교와 제자의 섹스하는 광경을 훔쳐보는 장면에서, 전 정말이지 시인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을까 봐 조마조마했죠.

같이 보던 지인과 함께 떠들길, “야, 저게 유럽영화였으면 시인이 사다리에서 떨어져죽고, 다음날 아침 은교와 제자가 시인의 시체를 발견하고 허망해하는 엔딩으로 끝났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은교를 보면서 떠들어댔던 이야기처럼 <불한당>의 결말부가 황당허망하진 않은데요, 좌우간 그 결말부를 보면서 묘하게도 유럽취향이라는 느낌이 들었단 말이지요. 물론 그 결말부가 칸에서 진짜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지는 뚜껑 열어봐야 알겠지만요.

 

결론은 불한당 2차 찍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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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14

  • 무지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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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phie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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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호오!!!후기 넘나 좋네요 잘 읽었습니당:-)
결론은 불한당 2차군요ㅎㅎ
댓글
01:10
17.05.18.
2등
후기 감사합니다!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에겐 너무 기쁜 글이에용 ㅎ
댓글
01:27
17.05.18.
3등
2번 단검얘기 너무 좋네요
불한당 후기는 읽는 재미가 있어서 다 읽어보고 매번 감탄합니다
댓글
03:15
17.05.18.
profile image

3번

1번도

와.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좋은글 감사합니다.

댓글
09:40
1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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