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 맘껏 즐겨주시오
박찬욱이 변태라는 건 이제 얘기할 것도 없이 새삼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코우즈키 라는 '금으로 책을 사는' 거부와 그의 처조카 히데코. 그리고 그들에게 접근하는 백작 그리고 그 집에 하녀로 들어간 숙희의 이야기입니다. 앞부분은 원작을 상당부분 따라가는 것 같지만, 뒤는 이야기가 전혀 다릅니다.
무엇이 이야기를 달라지게했냐면, 바로 코우즈키의 존재입니다. 박찬욱은 그에게 독특한 성향(스포가 될까 뭐라 쓰기가 어렵네요 ㅋ) 을 부여함으로서 히데코의 유년기를 송두리째 재구성합니다. 그러니 같은 시작이더라도 끝은 다를 수 밖에 없겠죠.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박찬욱의 <아가씨>는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가 아니라 코미디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야기에 깊이나 무게에 신경 쓰지 않고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도록 영화를 디자인했습니다. 깔끔합니다. 모든 복선이나 떡밥들이 영화 종료와 함께 수거됩니다. 더 이상 궁금할 것도 없이, 주인공들의 미래를 가벼운 마음으로 축원할 수 있게 되죠.
하지만 '이야기'라는 것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히데코와 그의 이모가 해왔던 이 '낭독'이라는 행위와, 그것에 홀려 빠져드는 신사들에는 영화를 보는 관객과 배우, 그리고 연출자에 대한 비유의 의도가 분명히 있어보이는데 이 부분은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네요.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재미있게 보았고, <복수는 나의 것> 이후에 제대로 각잡고 만든 또 하나의 박찬욱표 코미디입니다. 훌륭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하정우가 뇌까리는 대사는 올 해의 명대사에 꼽혀도 손색이 없을 것 같네요.
P.S : 김태리의 얼굴이 처음등장 할 때 좀 놀랐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선호하는 이미지가 전혀 아니어서요.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히데코와의 대비가 뚜렷해지고, 몇몇 표정들과 행동들이 그 둘의 행적에 당위를 부여하는 면이 분명해서 납득이 가더군요.
P.S 2 : 하정우는 과연 하정우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게 사실 이 영화의 백작은 공허한 인물이라 크게 연기할 구석도 많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의 대사들을 들어보면 인간적인 면에서 매우 텅 비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수 있죠.
스릴러 아니예요 ㅎㅎㅎ믿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