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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간략후기



전도연, 정우성 등 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보았습니다.

일본 작가 소네 게이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거액의 돈가방을 두고 벌이는

인간군상들의 피 튀기는 싸움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에 봐 온 범죄물과 다르지 않은 외형을 하고 있지만,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태도와 정서로 예상보다 경쾌하고 신선한 재미를 줍니다.

구구절절하게 들리는 제목의 첫 인상은 인물들에 대한 연민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게 연민이 아니라 오히려 조롱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돈가방을 둘러싼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사라진 연인 연희(전도연)로 인해 빚 독촉에 시달리는 태영(정우성),

가업이 실패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중만(배성우)과 아내 영선(진경), 어머니 순자(윤여정),

악하고 독한 고리대금업자 박두만 사장(정만식), 빚 때문에 남편의 외면과 폭력에 시달리는 미란(신현빈),

그런 미란에게 갑자기 다가온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까지. 저마다 돈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가 있는

이 사람들 사이로 돈가방의 행방이 럭비공처럼 이리저리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두뇌 게임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몇몇 인물들은 비범한 (혹은 극도로 비범한) 범죄자의 기질을 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단지 돈이 급했을 뿐인, 범죄에 발을 들이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이들이어서 두뇌 게임이 벌어질 환경이 아닙니다.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는 상황이 어쩌다 나타나긴 하지만 그게 다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테고요.

영화는 범죄 느와르라는 장르가 취할 수 있는 전형적 태도에서 한 걸음 떨어져,

우스꽝스럽고도 흉한 모습으로 표출되는 저마다의 욕망을 방관자적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간혹 범죄 느와르물들 중에서도 인물들이 지금 몹시 심각하고 비장한 상황임을 강조하고자

영화가 먼저 대사와 영상에 힘을 바짝 줘가면서 관객에게 어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좀 부담스럽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인상적인 것은 이런 얄궂은 비장미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마다가 돈이 필요한 상황임은 어련히 다 짐작되나, 영화는 그들의 상황에 몰입하지 않습니다.

전사를 친절하게 되짚어 주지도, 각자의 상황을 절절하게 토로할 시간을 딱히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돈가방을 향해 뿜어대는 욕망은 뭐라할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부정'이 될 수도 없습니다.

한번 똥을 밟거나 손에 피를 묻힌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하게 되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끝을 예고합니다.

타고난 싸이코패스부터 소심한 임시직 노동자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의 욕망이

드러내는 낯부끄러움은 영화에서 난데없이 속출하는 죽음들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영화는 부질 없는 욕망에 대한 냉소적인 드라마로만 보여지진 않습니다.

여러 인물들의 상황을 오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동시기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리는가 싶더니만

한 인물의 등장을 기점으로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 머리를 굴리게 만듭니다.

재조립되는 타임라인과 사건 속에서 이미 던져진 적 있는 단서가 있는지 되짚어 보게 되는데,

앞서 얘기했듯 돈가방을 둘러싼 인물들의 행보가 '짐승'처럼 무모한들 영리하진 않기 때문에

대신 이런 두뇌 플레이를 사건과 시간의 재배치로 영화가 도모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의지만 앞서도 생각은 덜하는 인간들의 행실에 헛웃음 짓다가 마지막에 이르는,

'야만적이고 부질없는 욕망'을 그리지만 그렇다고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듯한 결말은

꽤 센 캐릭터들과 사건이 등장하는 영화이면서도 비교적 부담 없는 오락영화처럼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인물들 저마다의 비중 차이가 좀 있습니다만, 머릿수만 채우지 않고 각기 다른 포지션에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배우들의 호흡이 만족스럽습니다.

얼굴을 여기서 전혀 쓰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정우성 배우는 '행정관'이라는 직함으로 불리면서도

그와 하등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보는 사람이 다 부끄러워지는 속물적 캐릭터를 한껏 힘 빼고 보여줍니다.

몇년 전에 나온 <아수라> 속 캐릭터와 비슷한 듯 하지만, 독기보다는 허영으로 똘똘 뭉쳐

먹고자 할 수록 먹히는 입장으로 향하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개인적으론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는 역시 연희 역의 전도연입니다.

영화 시작 후 50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때부터 영화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찌질한 욕망들의 싸움을 훨씬 더 예측불가능한 궤도에 올려놓는, 인물들 중 가장 힘을 빼고 있지만

가장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는 전도연 배우의 '연희'는 과장을 약간 보태자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배성우, 진경, 정만식, 신현빈, 정가람, 박지환, 윤제문 배우 등 각자의 고유 캐릭터 안에서

예측을 어렵게 하는 변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배우들의 날카로운 연기가 만족스런 앙상블을 만들어 냅니다.

중만이 일하는 호텔 지배인 역의 허동원 배우, 박사장의 심복인 메기 역의 배진웅 배우는

뜻밖의 순간에 극을 힘있게 뒤흔드는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하는 또 다른 공신들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짐승처럼 인정사정 없이 발현하는 욕망이 얼마나 허탈한 것인가

보여주는 듯 하나, 그렇다고 해서 헛헛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필요는 없는 오락영화입니다.

남의 싸움구경 하듯 돈가방에 이성의 끈을 놓고 달겨드는 속물들의 난장판을 재미나게 구경하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V자를 그리며 퇴장하는 승자의 모습을 유쾌하게 지켜보면 될 일입니다.

그 외에 어차피 이 영화에서 우리가 응원할 사람은 딱히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추천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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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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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2작사 2020.02.23. 16:12
오 그렇고보니 바르뎀 만큼의 무시무시함은 아니지만 전도연 배우 캐릭터가 어딘가 모르게 안톤 느낌이 있었네욬ㅋㅋㅋㅋ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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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작성자 2020.02.23. 16:16
2작사
그렇더라구요 ㅎㅎ 바르뎀이 워낙 어마어마해서 그렇지 전도연 배우도 매우 무서웠죠 ㅎㅎ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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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소보르 2020.02.23. 18:24
배우들이 많이 돋보이는 영화더라구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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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작성자 2020.02.23. 22:03
소보르
배우들의 연기가 탄탄했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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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샤피로 2020.02.23. 18:59
배진웅 배우가 돋보였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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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작성자 2020.02.23. 22:03
샤피로
존재감이 대단했습니다 ㅎㅎ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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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mitt 2020.02.23. 19:40
너무 잘읽었습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네요!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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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작성자 2020.02.23. 22:03
Gromitt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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