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극장.. 대중문화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게시판입니다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영화수다 [불한당] 스포 많은 잡담...

  • NEil NEil
  • 212255
  • 7

앞서 짧은 감상 남기기도 했는데,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좀더 길게 써봅니다.

 

1. 불한당의 첫 장면에서 권총 이야기가 대화로 삽입됩니다.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히는 칼이나 도끼(고대사람들의 무기)에 비하여, 현대사람들이 사용하는 권총은 사람의 죄책감을 줄여준다고요.

 

2. ‘단검은 길이가 짧아 죽는 자의 입김을 코로 맡으며 죽여야 한다. 이 얼마나 복수하는 자에게 어울리는 잔인한 칼인가.’

위의 문구는 <장철 쇼브라더스 걸작선> DVD 박스세트에 포함된 해설책자에 적힌 문구인데요. 읽고 나서 일부러 메모할 만큼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불한당>의 엔딩에서 제가 떠올린 문구가 바로 저것이었습니다.

현수는 재호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그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아 죽입니다. 현수는 재호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손바닥으로 쏟아지는 재호의 입김을 느꼈겠죠.

과연 현수는 죄책감을 느꼈을까요? 아니면 복수의 쾌감에 기쁨을 느꼈을까요? 확실한 것은, 현수는 그 무엇보다 잔인하고 비정한 방식으로 재호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느와르답죠.

 

3. 영화는 편집실에서 이뤄지는 마술이며, 연출의 질은 숏과 숏의 전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여기에 속하는 좋은 예가 (당장 떠올리자면) 박찬욱 감독인데요. 정말이지 숏과 숏의 전환을 기가 막히게 잘 처리하지요. 그런데 변성현 감독도 이걸 상당히 잘해내요. 데뷔작 <마이 PS 파트너>를 처음 봤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이 그 숏과 숏을 전환하는 센스와 시원시원한 편집감각 때문이었지요.

재미있게도, <불한당>에서 첫눈에도 <올드보이>와 유사한 숏이 하나 나옵니다. 벤치에 누워 있던 현수가 옆으로 돌아눕자, 그 측면에서 붉은 피를 쏟아내는 어머니와 마주보는 숏이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최면에 걸리면서 옆으로 돌아눕자 배경이 풀밭으로 변하는 숏과 유사하지요. 그것 말고도 <불한당>에선 뭔가 박찬욱스러운 숏이나 편집이 여기저기 속출해요.

 

4. 비유하자면 변성현 감독은 데생의 기본기가 탄탄한 화가 같아요. 아무리 심오한 내용, 재미있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있어도 그걸 제대로 풀어낼 스킬이 없으면 결과물은 엉망일 수밖에 없지요. 소설이나 영화 등은 ‘무엇’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인데 요즘 한국영화들을 보면 ‘무엇’은 차치하고, ‘어떻게’ 풀어낼지도 몰라 영화를 망치는 경우가 다반사예요. 적어도 변성현 감독은 ‘어떻게’ 풀어낼지는 잘 아는 것 같습니다. 흔한 언더커버 소재의 <불한당>을 뻔하지 않게 풀어낸 솜씨를 보면요.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는 꽤 잘 아는 감독 같으니, 다음 차기작에는 ‘무엇’을 이야기할지 고민하면 더욱 발전하겠죠.

 

5. 비슷한 소재 때문에 <신세계>와 비교당하는데요. ‘무엇’을 ‘어떻게’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신세계는 ‘무엇’에서 성공했고, <불한당>은 ‘어떻게’에서 성공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대중들은 신세계의 진한 형제애 이야기에 더 호감을 보일 거예요. 물론 저처럼 불한당의 비정한 세계에 더 호감을 표하는 쪽도 있겠지만... 이건 어느 쪽이 더 옳고 그르냐의 차원이 아니라 그냥 취향 차이겠죠.

하지만 ‘어떻게’, 만듦새나 연출 측면에서 보면 전 <불한당> 쪽에 무조건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네요. 제가 정정훈 촬영감독을 무척 좋아하는데 <신세계>는 나중에 촬영감독 이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술도 별달리 언급할 부분도 없었구요. 신세계 코멘터리를 들어보니 박훈정 감독이 계속 ‘예산에 비해 효율적으로 찍었다’고 강조하긴 합니다만...

 

6. 불한당 결말부 시퀀스를 보고 엉뚱하게도 전 예전에 <은교>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사다리에 올라타서 2층 창문을 통해 시인이 은교와 제자의 섹스하는 광경을 훔쳐보는 장면에서, 전 정말이지 시인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을까 봐 조마조마했죠.

같이 보던 지인과 함께 떠들길, “야, 저게 유럽영화였으면 시인이 사다리에서 떨어져죽고, 다음날 아침 은교와 제자가 시인의 시체를 발견하고 허망해하는 엔딩으로 끝났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은교를 보면서 떠들어댔던 이야기처럼 <불한당>의 결말부가 황당허망하진 않은데요, 좌우간 그 결말부를 보면서 묘하게도 유럽취향이라는 느낌이 들었단 말이지요. 물론 그 결말부가 칸에서 진짜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지는 뚜껑 열어봐야 알겠지만요.

 

결론은 불한당 2차 찍어야겠다 끝.

 

추천인 14

  • 무지개개
    무지개개
  • 소보르
    소보르
  • 나홍진
    나홍진
  • 로젠의다리
    로젠의다리

  • 헤이지
  • stephie
    stephie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7

글을 읽고 댓글을 달지않으면, 포인트가 깎여나갑니다.
profile image
1등 stephie 2017.05.18. 01:10
호오!!!후기 넘나 좋네요 잘 읽었습니당:-)
결론은 불한당 2차군요ㅎㅎ
댓글
2등 헤이지 2017.05.18. 01:27
후기 감사합니다!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에겐 너무 기쁜 글이에용 ㅎ
댓글
3등 박카스301 2017.05.18. 03:15
2번 단검얘기 너무 좋네요
불한당 후기는 읽는 재미가 있어서 다 읽어보고 매번 감탄합니다
댓글
profile image
나홍진 2017.05.18. 09:40

3번

1번도

와.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좋은글 감사합니다.

댓글
profile image
소보르 2017.05.18. 10:04
불한당에 반하셨군요 ㅋㅋ
댓글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best [마카오영화제] 돔 상영관, Planetarium 체험기 12 키노맨 1시간 전18:40 508
best 제임스 건 감독의 [기생충] 강추평 7 JL 1시간 전18:36 1888
best 옥주현, [캣츠] OST "Memory" 뮤직비디오 영상 13 (´・ω・`) 2시간 전18:01 936
best [ 포드 V 페라리 ] IMDB 트리비아.txt (스포) 3 fynn 2시간 전17:51 597
best <포드 V 페라리> IMAX 후기, '장롱면허'조차 가슴 뛰... 4 원진아 2시간 전17:48 639
best 스콜세지 발언에 대한 조지 밀러 감독의 반응 20 JL 2시간 전17:39 2548
best 전국 곳곳에 영화평론가가 있던 시절 10 텐더로인 2시간 전17:25 1704
best 역대 천만영화 천만돌파까지 걸린 시간 15 장료문원 3시간 전16:51 2907
best 처음으로 한해 천만영화 5편 달성 31 아침꼭챙겨먹어요 3시간 전16:36 2948
best [마카오영화제 - 라이트하우스] 간략후기 9 jimmani 3시간 전16:25 1127
best [포드V페라리] 포스터 맛집이었네요. 14 슬옹am 3시간 전16:08 2197
best 포드v페라리 영화엔 없는 르망24후 그 뒷이야기(스포O 27 차가운핫초코 4시간 전16:00 1741
best [겨울왕국 2 ] 천만 관객 돌파 38 JL 4시간 전15:57 3503
best 가장 사랑한 2019년 영화 5가지. 3 멜랑콜리아 4시간 전15:43 973
best [마카오영화제] 히든 라이프를 보고나서.. 8 키노맨 4시간 전15:21 723
best [마카오영화제]Better Days(소년적니) 보고 왔습니다 8 쿨스 4시간 전15:20 926
best [남산의 부장들]생각나는 영화,논란,기대 45 닭한마리 5시간 전14:49 2213
best [마카오영화제] 3일차 이모저모 (다크로드와 함께 하는 호텔 투어) 6 션님 5시간 전14:34 954
best 롤링스톤지 선정 올해 최고/최악의 영화 10편 34 fayeyes 5시간 전14:16 3411
best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로 <포드V 페라리> 관람 후 설문조사하... 27 애플민트T 5시간 전14:15 2381
best 현재 포드 vs. 페라리 용산 예매 상황 8 deckle 6시간 전13:45 2150
best 007 신작 영화,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 26 Roopretelcham 6시간 전13:37 2119
best [마카오영화제] 신과함께 김용화 감독님 마스터 클래스 현지 라이브스... 2 Supervicon 6시간 전13:31 1024
best [필독] 신입 익무인들이 참고하셔야할 내용 895 다크맨 18.06.19.15:52 283522
678465
image
피어스 15.11.05.22:35 803982
678464
image
golgo 17.06.26.17:17 780277
678463
image
이팔청춘 16.05.11.00:37 646724
678462
image
golgo 14.06.28.18:37 499134
678461
image
민폐플린 15.10.14.15:02 476900
678460
image
제니퍼 14.09.01.11:47 429223
678459
image
윈터스본 16.05.31.12:40 426829
678458
image
포인트팡팡녀 17.02.07.15:44 380871
678457
image
박노협 08.06.15.18:07 377951
678456
image
마법사 18.11.23.14:39 332900
678455
image
gonebaby 18.08.26.10:39 306969
678454
file
golgo 15.09.14.21:16 304248
678453
image
HAPPY.. 16.04.21.00:07 288580
678452
image
토리찡 14.01.16.23:17 285694
678451
image
다크맨 18.06.19.15:52 283522
678450
image
golgo 15.03.14.14:38 272754
678449
image
ㅀㅀㅀ 13.12.23.03:12 271861
678448
image
Bigboss 18.05.18.12:06 262681
678447
image
Emmit 15.08.07.09:04 246910
678446
image
부두 14.11.06.22:01 244212
678445
image
김치콕 14.03.20.10:39 223453
678444
image
CalvinCandie 15.11.22.18:59 219852
678443
image
Zeratulish 17.02.18.01:02 217986
image
NEil 17.05.18.00:51 212255
678441
image
수위아저씨 09.06.06.16:01 211605
678440
image
fynn 18.05.05.07:00 211454
678439
image
제잘규 09.10.23.16:51 210061
678438
image
키노맨 14.10.19.02:19 208906
678437
image
Emmit 15.05.08.07:37 201923
678436
image
다크맨 14.12.12.11:20 197544
678435
image
샤잠 19.10.12.14:47 175660
678434
image
golgo 14.07.16.11:57 166659
678433
image
메론맛다시마 16.02.01.01:42 161731
678432
image
이잉여어 14.02.23.20:05 161030
678431
image
멀더리 16.05.25.04:43 154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