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4
  • 쓰기
  • 검색

[스포][리뷰][존 오브 인터레스트] 소리와 대비를 통해 정교히 묘사한 시대의 참상

클랜시 클랜시
3126 5 4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봤습니다.

 

61268541631.jpg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화에 기반을 둔, 실존인물의 묘사가 중심인 작품이었군요.

 

주인공 격인 '루돌프 회스'에 대한 부분은 관람 후에 찾아봤는데,

이 사람인 건 모르고 관련된 일화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이번 기회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는 기회도 되었고... 

이런 기회마다 들춰보는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도 괜히 다시 꺼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왜 작년에 극찬을 받았고 각종 수상목록에 올라갔었는지 알겠더군요.

형식적인 실험과 섬세한 연출 뛰어난 연기와 미장센 등등....

학생으로 치자면 올 A 성적표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초반 체감적으론 1분 넘게 이어지는 듯한 암전은 잠시나마 '영사사고인가?' 생각이 들게 했어요

얼핏 과감하고 불친절해 보이는 장치는 사실 매우 친절한 프롤로그였더군요.

영상도 중요하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보려면 여러분의 귀도 활짝 열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러닝타임 내내 배경음으로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들은 프레임 안에 직접 보여주지 않는 참상을 상기시킵니다.

사운드 외에도 영화는 아우스비츄라는 끔찍한 공간에서 벌어졌던 참상의 편린을 

간접적으로 계속해서 노출시키며 관객에게 상기시켜요.

식솔들에게 무심히 던지는 고급 속옷 뭉터기, 

강물을 따라 떠내려오는 부유물, 아이가 밤에 꺼내보는 금니, 

베드타임 스토리로 읽어주는 책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 등등

 

'여러분, 이거 직장에서의 정치싸움으로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가정에선 다정한 아버지가 되려 노력하는 남자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 다 아시죠?'라고 쿡쿡 찔러주는 거겠죠.

 

 

루돌프의 사택과 아우슈비츠 사이엔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쪽과 저쪽, 분리된 공간은 상반되는 이미지와 색으로 표현됩니다.

사택은 녹색과 물, 수용소는 적색과 불이죠.

 

암전 이후 나오는 첫 장면은 밝은 볕을 쐬며 풀밭에 앉은 가족과 너머에서 물놀이 하는 아이들입니다.

사택 후원은 정성들여 조성한 정원과 텃밭이 있고 가장 안쪽엔 작은 수영장이 있죠.

물놀이 하느라 젖은 아이들의 몸에서 떨어진 물기가 복도를 적시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물놀이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어떤 이유로 욕조에서 벅벅 씻기기도 합니다.

그 안의 사람들이 계속 무언가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의도가 있겠지요.

 

벽 너머에선 사람들의 비명과 총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데 밤이 되면 굴뚝위로 불길이 솟아요

그곳에서 가져온 모피코트 안에서 루돌프의 아내가 찾은 것은 붉은 립스틱입니다.

벽처럼 둘러쳐진 녹색 수풀 너머 수용자를 채근하는 병사의 말이 짓밟는 것은 붉은 사과이고

일터에서 돌아온 루돌프의 장화를 물로 씻자 나오는 것은 그곳의 흔적인 붉은 피입니다.

실재로 영화의 중반에 화면이 온통 붉게 채워진 순간도 있지요.

 

 

영화의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직역하면 관심구역이지만 '이득(interest)이 나는 곳'이란 의미로

전쟁 중에도 수익을 꾸준히 창출한 아우슈비츠를 지칭하는 말이기라고도 합니다.

수용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도 있지만 영화에서 간간히 보여준 것처럼 나치는 

그곳에 잡혀온 사람들의 모든 것 (귀중품, 옷, 심지어 금니까지)을 뽑아먹었으니까요.

사택의 아름다운 풍경과 잘 조성된 정원은 모두 벽 너머로부터 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녹색과 물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사택에 피어난 꽃을 비춰주는 후반부의 몽타쥬 컷에선

유난히 붉은 꽃들만 가득합니다.

 

하지만 루돌프의 가족들이 벽 너머로부터 오로지 '인터레스트'만 얻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묘사된 물놀이 장면에서 떠내려오는 부유물부터

연신 기침을 해대는 사람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몽유병에 시달리는 딸들

이유 없는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들들, 빽빽 울어대기만 하는 막내

그 아이를 돌보는 유모 역의 식솔 역시 밤마다 술을 들이켜고

동일한 시간, 창문 너머 붉은 밤의 풍경에 표정이 굳는 장모는 결국 말도 없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관객들처럼 지속적으로 그들의 잠재의식을 자극했을 '소리'도요.

 

소리와 관련해선 후반부 이례적으로 삽입된 장면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갑자기 현대에 박물관이 된 아우슈비츠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죠.

이전까진 벽 너머에 유대인들이 있던 수용소에서 소음처럼 지속적으로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현대 장면에선 유대인들의 흔적인 구두와 옷가지, 유품들이 전시된 유리벽이 사택의 벽 역할을 합니다.

벽 바깥쪽은 청소를 하기 위한 소음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벽의 안쪽, 유대인의 공간은 이제 무거운 침묵 뿐입니다.

 

이후에 곧바로 다시 이어지는 엔딩은 뻔하지만 매우 적절해 보였습니다.

아우슈비츠 소장이자 수백만을 죽인 장본인 루돌프는 적막한 공간에서

마치 미래의 소음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머뭇거리다 다시 계단을 내려갑니다.

층을 내려갈때마다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마지막엔 불이 꺼져 완전히 어두워진 아래로

그의 모습은 천천히 묻혀가고 이윽고 시작과 같은 암전과 불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루돌프의 최후를 암시하는 것도 같고,

평범한 악의 역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롯시 아카를 받았는데, 이런 작품의 아카를 내준 것도 독특한데 심지어 렌티큘러?

어쨌든 좋습니다. 예, 좋아요.

 

++

 

영화 끝나고 나오면서 보니까 출입문에 '암전 장면'과 관련한 안내가 붙어 있더군요.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5


  • 올리브으
  • golgo
    golgo

  • 이상건

  • 필름매니아
  • Sonatine
    Sonatine

댓글 4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진짜 걸작이었어요..조나단 글레이저는 진정한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00:39
24.06.06.
profile image
클랜시 작성자
Sonatine
이런 소재를 이렇게 실험적으로 다루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도 지켜낸 거 보면 대단하긴 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대충 보고 넘겼던 감독의 전작도 이번 기회로 다시 찾아보게 될 거 같습니다.
00:42
24.06.06.
profile image 3등
장면들이 잔상처럼 잊혀지지 않고 남네요
08:40
24.06.06.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2024년 8월 31일 국내 박스오피스 3 golgo golgo 8시간 전00:01 1225
HOT 아나 데 아르마스 에스티 로더 향수 광고 3 카란 카란 10시간 전22:09 1288
HOT 실사 영화 근황 정리 7 기다리는자 10시간 전22:30 2021
HOT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를 보고 나서 (스포 O) - 요... 4 톰행크스 톰행크스 11시간 전21:55 1184
HOT 버스터 키튼이 영화에 미친 영향 2 카란 카란 11시간 전21:49 923
HOT 'Touch'에 대한 단상 2 네버랜드 네버랜드 11시간 전21:08 537
HOT 에이리언 : 로물루스 팝콘버켓 8 녹음이 녹음이 12시간 전20:44 1101
HOT 공포 프랜차이즈 <울프 크릭> 세번째 편 <울프 크... 4 Tulee Tulee 13시간 전19:09 628
HOT 리암 니슨-탈리아 라이더-노아 주프-휘트니 피크-잭 딜런 그... 2 Tulee Tulee 14시간 전18:45 404
HOT 판타스틱 4 테마곡, 인피니티 사가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 4 기다리는자 14시간 전18:14 990
HOT 니콜라스 윈딩 레픈,내년 촬영 시작 예정인 도쿄 배경 영화... 3 Tulee Tulee 14시간 전18:47 802
HOT 만신^^ 감동이네요 2 진지미 15시간 전16:58 1159
HOT 이토준지연구책 도착 4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16시간 전16:13 753
HOT 수지 김우빈 커피차 인증 1 e260 e260 16시간 전16:47 683
HOT 노스포 너무 조용히 개봉한 '둠벙' 짧은 후기 4 골드로저 골드로저 14시간 전18:13 495
HOT 케이트 블란쳇, 정호연 '누군가는 알고 있다' 로... 3 golgo golgo 22시간 전10:19 3746
HOT ‘왕방울 눈·2등신 캐릭터’ 하츄핑 열풍…왜? 6 호러블맨 호러블맨 18시간 전14:52 1270
HOT [트위스터스] 누적 50만 10 호러블맨 호러블맨 18시간 전14:50 1125
HOT 미모가 저평가 되는 국내 연예인 13 totalrecall 18시간 전14:02 5288
HOT <원스>, 9월 19일 재개봉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9시간 전13:20 834
1149509
image
NeoSun NeoSun 28분 전08:29 78
1149508
normal
다솜97 다솜97 55분 전08:02 76
1149507
normal
다솜97 다솜97 58분 전07:59 144
1149506
image
e260 e260 1시간 전07:39 122
1149505
image
e260 e260 1시간 전07:37 143
1149504
image
e260 e260 1시간 전07:36 153
1149503
image
e260 e260 1시간 전07:36 103
1149502
image
e260 e260 1시간 전07:35 182
1149501
image
e260 e260 1시간 전07:34 131
1149500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07:33 113
1149499
image
동네청년 동네청년 2시간 전06:39 149
1149498
normal
비긴이게인 비긴이게인 5시간 전03:08 527
1149497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02:17 496
1149496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02:02 516
1149495
image
필름매니아 6시간 전01:59 293
1149494
image
하드보일드느와르 7시간 전01:39 325
1149493
image
NeoSun NeoSun 7시간 전01:26 430
1149492
normal
cwolff 7시간 전01:26 165
1149491
image
NeoSun NeoSun 7시간 전01:20 325
1149490
image
NeoSun NeoSun 7시간 전01:20 405
1149489
image
NeoSun NeoSun 7시간 전01:16 395
1149488
normal
H무비 8시간 전00:50 404
1149487
image
필름매니아 8시간 전00:42 511
1149486
image
golgo golgo 8시간 전00:01 1225
1149485
image
NeoSun NeoSun 9시간 전23:37 513
1149484
image
hera7067 hera7067 9시간 전23:15 256
1149483
image
hera7067 hera7067 9시간 전23:13 454
1149482
image
hera7067 hera7067 9시간 전23:11 158
1149481
image
hera7067 hera7067 9시간 전23:09 158
1149480
normal
기다리는자 10시간 전22:30 2021
1149479
normal
존윅 10시간 전22:20 877
1149478
image
카란 카란 10시간 전22:09 1288
1149477
image
톰행크스 톰행크스 11시간 전21:55 1184
1149476
normal
기다리는자 11시간 전21:53 481
1149475
image
카란 카란 11시간 전21:49 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