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51
  • 쓰기
  • 검색

'앵커' 정지연 감독, 천우희 배우 GV 정리 및 추가 인터뷰

익스트림무비 익스트림무비
12169 70 51

KakaoTalk_20220429_114448555.jpg

호러 스릴러 장르에 선명한 주제 의식을 담아낸 작품 <앵커>로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신예 정지연 감독, 그리고 복잡한 내면의 주인공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 천우희 배우와 익스트림무비가 만났습니다. 


지난 4월 11일 <앵커> 익스트림무비 단독관 시사회 후 익무인들과 진행한 GV 내용을 정리. 그리고 추가로 진행한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GV에서 시간 관계상 못 다한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앵커>를 인상적으로 보신 분들이라면 필독을 권합니다. (본문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종철: GV 시사에 참석한 익무 회원들에게 인사말 먼저 부탁한다.


정지연: 늦은 시간까지 영화 보러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웃음) 재미있게 봐주셨기를 바라며 얘기 많이 나누고 싶다.


천우희: 익무 분들과는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은데 너무너무 반갑다. 이렇게 대면으로 하는 GV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설렌다. 오늘 재미있게 이야기 나눴으면 한다.


김종철: 이번 영화는 코로나 사태로 2년 정도 개봉이 늦어졌는데, 오늘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것이 남다른 기분일 듯하다. 우선 그 소감을 이야기해 달라.


정지연: 오랫동안 이야기를 개발하고 찍고,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개봉을 기다려왔는데, 생각해보면 이 순간을 두려워하면서도 무척이나 기다려왔던 것 같다. 이 자리가 너무 감동적이고 마냥 기쁘다. (웃음)


천우희: 감독님 지금 우시는 건가? (웃음)


정지연: (손사래) 


김종철: 감독님께 먼저 질문하겠다. 예고편 공개됐을 때 주인공이 앵커라는 점에서 <테러 라이브>가 떠오른다는 반응들이 있었다. 영화를 막상 보고 나니 그와는 전혀 달랐다. 제보자의 전화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뜻밖의 전개로 흘러간다. 한국영화에선 드문 직업군을 어떻게 소재로 삼게 된 건가?


정지연: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평범한 여성의 내면을 깊이 들어가 보면 뭔가 이야깃거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그러다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만들게 됐다. 시작은 <테러 라이브>와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외부의 사건을 파헤치기보다는 걸려 온 제보 전화가 세라의 내면을 일깨우고, 또 자신의 욕망 때문에 찾아간 사건 현장에 자극받아서 내면으로 여행을 하게 되는 서사를 구축해보고 싶었다.

 

movie_image (4).jpg

 

김종철: 천우희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전문직은 이번에 처음 연기한 것 같다. 그동안 센 역할들을 다양하게 해왔는데, 배우로서 이전에 하지 못했던 직업을 연기하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것도 같다.


천우희: 지금보다 좀 더 나이가 어렸을 때는 인턴, 사회초년생 등 미숙한 모습들이 나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배우로서도 차차 성장해 나가는 단계였고, 항상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선배님과 작품을 하다 보니 농담조로 “난 아직 애기야”라고 생각했다. (웃음) 그러다 한두 해씩 경력, 연차가 쌓일수록 나도 프로 연기자가 되어 가는데, 그렇다면 역할도 전문직을 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이젠 나도 자신이 있고 관객분들도 충분히 납득시킬 때가 됐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앵커>라는 작품이 들어왔다.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리 여행


김종철: 시나리오를 읽고 이야기와 인물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나?


천우희: 감독님 말씀처럼 사건 중심이라기보다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리 여행 이야기라는 것에 크게 공감했다. 사건 위주로 돌아갈 것 같지만 결국은 세라라는 인물이 가진 욕망과 내면의 결핍, 본능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전면에 욕망과 야망을 드러내는 여자 캐릭터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또 그런 캐릭터가 있더라도 부정적으로 보인다거나 아니면 악역으로 나오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면 나쁜 거고, 감추면 착한 건지 의문이 들곤 한다. 세라의 입장에선 엄마의 사랑, 또 자신에 대한 사랑이 욕망이자 결핍으로서 작용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김종철: <앵커>는 정지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장르적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시각적인 강조보다 심리적 묘사들이 많은 편이다. 신인 감독의 데뷔작으로서는 난이도가 있을 소재 같은데 도전하게 된 이유는?


정지연: 내면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니만큼 자칫하면 외부의 사건과 너무 동떨어져 보이거나, 시작만 다르게 보이고 점점 재미가 없어질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장르적이고, 계속 보고 싶어지게끔 갖가지 시도를 해봤다. (웃음)


김종철: 시각적 부분과 심리적인 부분, 두 가지가 잘 됐다고 생각한다. 익무인들은 어떻게 봤는지 박수로 답해 달라. (박수 소리) 천우희 배우님은 익무인들 중에 팬이 많다고 했는데도 안 믿으시더라. 역시 박수 부탁드린다. (박수 소리) 


천우희: 감사하다. (웃음)


김종철: 이제 영화를 본 관객들의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현재 39명이 질문을 남겼고 계속 추가되는 중이다.


천우희: 이렇게 질문도 적극적으로 해주니 너무 좋다. (웃음)

 

movie_image (5).jpg


김종철: ‘현임’님의 질문이다. 천우희 배우가 이 영화 참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대사나 장면은? 그리고 아나운서 딕션은 따로 배운 건가?


천우희: 매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만 앵커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때였던 것 같다. 심리적인 부분들은 촬영하면서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을 연기하기 때문에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뉴스룸 장면의 경우는 앵커로서 멘트를 할 때, 그 캐릭터의 현재 위치 혹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드러나서 그 인물을 가장 부각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선택하고 촬영하기까지 시간이 많지 않았다. 6개월은 배워야 할 부분을 2주 단기 속성으로 익혔는데, 그 짧은 시간에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싶어서 굉장히 부담됐다. 앵커로서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면 관객이 봤을 때도 작품 자체의 신뢰도, 몰입이 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역할을 맡은 이상... 나도 영화 속 세라처럼 완벽주의 성향이라서 하루에 4~5시간씩 계속 연습했다. 실제 아나운서분하고 자세, 시선 처리, 발성 연습 등을 할 수 있는 한 계속했고, 집에 가서도 여러 뉴스를 계속 보고 들었다. 앵커분들이 각자 저마다의 성향, 특징이 있더라. 그게 눈에 띄니까 ‘아는 만큼 보이는구나.’ 싶었다. 예전에는 뉴스들을 사건 사고 위주로 전달받았는데, 신경을 쓰다 보니 그분들이 보였다. 그런 식으로 배워나갔다. 나로선 최선을 다했는데 관객분들은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하다.


김종철: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 (박수 소리)


천우희: 오늘 박수를 너무 많이 받고 있다. (웃음) 감사하다.


김종철: 정지연 감독은 각본을 쓰면서 실제 앵커들과 만나서 얘길 듣거나 조언을 받았나?


정지연: 9시 뉴스 진행 경험이 있는 전 아나운서분과 기자들도 만났다. 극 중 세라가 앵커이면서 직접 취재를 하는 등 특수한 상황에 놓이지 않나. 그게 가능한 건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는데, 거기에 좀 더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기자와 아나운서에 대한 정보, 앵커라는 자리에 대한 의미를 그분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김종철: ‘leodip19’님 질문이다. 영화에서 이혜영 배우의 히스테릭한 모습이 섬뜩하고 무서웠다. 같이 연기 호흡을 맞춘 소감은?


천우희: 이혜영 선배님을 굉장히 좋아한다. 예전부터 그분이 하신 연극도 많이 보러 갔고, 개인적 친분이 없었을 때도 연기하시는 모습 보며 팬이 됐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카리스마를 갖고 계시고, 얼굴 자체에 서사가 다 담겨 있는 배우 그 자체이시다. 선생님을 현장에서 봤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는데 특히나 내 엄마 역할이라니 너무나 뿌듯했다. 선배님으로선 오랜만의 영화 작업이라며 설레하셨고, 적극적이셨고, 나와 호흡을 맞추시려 노력하시는 모습이 감동적이면서 배울 점이 많았다. 

 

movie_image (3).jpg


김종철: 이혜영 배우는 오래 전부터 한국영화에 많이 출연해왔는데, 그때와 요즘의 촬영 현장과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나?


천우희: 예전 현장과는 진행 방법이 다르기도 해서 어떤 면에선 어려움도 있으셨을 거다. 그래도 선배님께서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하셨고, 그런 부분들을 내게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얘기해주셨다. 그래서 저도 선후배 사이가 아닌, 연기하는 동료로서 터놓고 말할 수가 있었다. 선배님께서 어려워한 부분, 내가 어렵게 느낀 고충들을 나눌 수 있어서 서로에게 힘이 됐던 것 같다.


김종철: 익무에도 ‘천우희’ 닉네임을 쓰는 회원이 있다. (웃음) 일단 하트를 4개 찍고 질문하셨다.


천우희: 감사하다. (웃음, 손가락 하트)


김종철: <앵커>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어떤 부분에 가장 끌려서 출연했나? 정세라 캐릭터의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천우희: 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문직 여성 캐릭터라는 점, 장르적 재미를 줄 수 있는 점, 그런 것이 복합적으로 잘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 이전에도 스릴러물에 출연했지만, 그와는 결이 다른 스릴을 보여줄 수 있고, 또 나로선 센 연기와 함께 섬세한 연기도 꽤 했다고 생각하는데, <앵커>에서 좀 더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걸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세라라는 인물이 변모하는 과정들로 기승전결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어서 도전했다. 


앵커 역할을 하면서 발성 같은 건 연습으로 좀 익숙해졌지만, 그밖에 어려웠던 점이라면... 연기는 내가 가진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앵커라는 직업은 전달자로서의 역할만 명확하게 해야 한다. 중립적이고 단정한 모습이어야 하는데, 그런 규격화된 모습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앵커로서 자세, 표정 등에서 아무런 구김이 없어야 하고, 거기에다 세라의 심리적 표현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 어려운 숙제였다. 촬영 현장에선 아나운서분이 하나하나 체크를 해주셨고, 감독님과도 상의하면서 연기했다.

 

movie_image (10).jpg


김종철: 정지연 감독에게 질문이다. 천우희 배우와 이혜영 배우, 둘 중 누가 먼저 캐스팅됐는지? 또 그 두 배우에게 유사한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돼서 모녀로 캐스팅한 건지 궁금하다.


정지연: 세라 역의 천우희 배우가 먼저 확정됐고, 이어서 세라와 잘 어울리는 엄마 역이었는데, 거의 찾을 필요조차 없었던 것 같다. 천우희 배우도 시나리오를 보면서 바로 이혜영 배우를 떠올렸다고 했고, 나도 같은 생각이어서 이혜영 선생님만 좋다면 그분만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제안했는데 마음에 들어 하셨다. 모녀 캐스팅은 원래부터 계산했던 게 아니라 본능적 차원에서 두 배우가 닮았다고 생각돼서 진행했다. 얼굴이 닮았다기보다 완벽주의적인 면모가 두 배우에게 공통으로 있다고 봤고, 그런 점에서 두 연기파 배우의 만남을 개인적으로도 보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두 배우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김종철: ‘바쿠여르’님 질문이다. 정지연 감독은 차기작도 스릴러 영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스릴러 장르 영화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지연: 놀이기구를 못 타는 편이다. 일상에서 스릴을 느끼고 싶으면서도 재미를 느낄 만한 액티브한 취미가 없다 보니 극장에서 공포영화나 스릴러물을 보는 걸 즐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쪽 장르에 관심을 두게 됐다. 물론 다른 장르도 좋아해서 혹시 만들게 된다면, 그 안에도 스릴 있는 이야기를 넣어보고 싶은 생각이다. 


김종철: <앵커>는 정지연 감독의 졸업 작품에서 시작된 것으로 안다. 처음 썼던 시나리오와 지금의 영화가 달라진 점이 있는지? 그리고 촬영했지만 삭제한 장면이 있는지 궁금하다.


정지연: 원래 저예산 졸업 작품으로 준비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의 영화의 후반부가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였다. 독립 영화여서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식이었다. 환각을 보는 여자 이야기에 가깝다고 할까. 하지만 그렇게 만들면 관객이 지루해할 수도 있고 그런 이야기에 관심 없는 분은 즐길 수 없을 테니까. 장르적인 표현을 가감 없이 할 수 있는 상업 영화로 개발하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웃음) 


(위 질문에 대한 상세한 답변은 하단 추가 인터뷰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세요.)

 

movie_image (9).jpg


김종철: ‘jjh0711’님이 무거운 이야기들 중 가벼운 질문도 필요할 것 같다며 남겨주셨다. 극중 천우희 배우가 먹은 사과는 정말 상한 것 같던데 그 맛이 어땠는지? (웃음)


천우희: 정말 생각도 못한 질문이다. (웃음) 상한 사과는 CG 처리를 했는데, 사실은 싱싱하고 맛있는 사과였다. 


김종철: CG였다니 정말 뜻밖이다. 진짜 상한 것 같았는데.


정지연: 찍을 때 상한 사과를 구하는 게 더 어려웠다. 


천우희: 상한 걸 먹는 연기도 쉽지 않고.


김종철: 그리고 방송사 이름이 YBC로 나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 (웃음)


정지연: 실제 방송사 이름 중 없는 걸 찾다가... 얻어걸린 명칭인데 결국 끝까지 쓰게 됐다. (웃음)


여성으로서의 고민, 보편적 감수성으로 봐주길


김종철: 정지연 감독은 공포 장르 영화들도 굉장히 좋아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공포, 스릴러 영화로 데뷔하는 감독 중에는 그런 장르를 원래는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지연 감독 얘길 듣고 반가웠다. 장르적 색깔과 더불어 이야기에 여성의 서사를 잘 녹여낸 점이 <앵커>가 가진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데뷔작에서 그런 구성을 한 이유가 궁금하고, 또 관객이 특히 눈여겨봐 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정지연: 영화에서 여성의 고민이 많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을 거다. 실제로 엄마와 딸의 베일에 싸인 관계가 드러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집착적이고 강박적인 관계가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꼭 엄마와 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불안과 공포를 가진 관계 속 인물의 이야기로 봐줬으면 좋겠다. 특수한 캐릭터로서가 아닌 보편적인 감수성으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

 

movie_image (7).jpg


김종철: 천우희 배우가 연기한 세라는 중 과거의 트라우마도 있고 남편과의 갈등, 직업적 불안감과 욕망까지 있어서 심리적으로 매우 복잡한 캐릭터다.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했나?


천우희: 심리가 아주 복잡한 것 같지만 결국은 한 가지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거라고. 엄마에 대한 애정, 인정 욕구가 세속적 욕망, 성공 욕구로 분출된 식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그 인물을 만들어 나간 게 아닌가 생각했다. 또 감독님이 정해놓은 선이 명확했다. 시나리오에서도 인물의 변화가 아주 극적이라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맥이 정확히 잡혀있는 덕분에 장르적 부분을 취하면서 심리 표현을 어떻게 잘 해낼 것인지에 집중했다. 영화를 다 보면 알 텐데, 세라를 통해 연민을 주고, 행동의 당위성을 느끼게 하려면 연기를 명확하고 극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욕망이 강해 보일수록 연민과 당위성이 더 잘 드러날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르게 약간은 작위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을 정도로 연기의 경계선을 크게 잡고 과감하게 연기했다. 


김종철: ‘푸르메’님의 질문이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에서 오는 경력단절, 그로 인한 삐뚤어진 모정 등의 폐해를 다룬 영화로 봤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그런 상황에 놓이거나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다고 들었다. 이런 소재를 영화로 만들게 된 계기나 사건이 혹시 있는지?


정지연: 계기가 된 특별한 사건은 없었고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아이를 낳는다는 게 왜 두려울까? 같은. 그런데 그것이 자꾸 이상하게 느껴지더라. 왜냐면 아이는 그렇게 축복받지 못할 존재가 아니니까. 나 역시 그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출산이라는 것이 너무나 두렵게 느껴지는 개인적 고민이 있었고, 또 그 두려움의 이유가 궁금했다. 세라라는 인물과 나 사이의 비슷한 점들을 찾아가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김종철: 추가로 ‘다솜97’님의 질문이다. 여성 서사를 해리성 장애라는 소재로 풀어 갈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나?


정지연: 시나리오를 위해 공부하다 보니 심리학책도 많이 읽었다. ‘내 안에 부모가 있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본인이 싫어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면모가 사실은 본인에게도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런 ‘내 안의 엄마’라는 것, 그리고 ‘딸이 엄마고 엄마가 딸’이라는 것을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했을 때, 해리성 인격 장애로 표현하면 명확할 것 같아서 그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김종철: ‘eastwater’님 질문이다. 천우희 배우의 헤어스타일이 요즘과는 미묘하게 안 맞는 촌스러운 느낌이다. (웃음)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의도를 이해하게 됐다. 그 헤어스타일 설정은 어떻게 잡았나? 


정지연: 천우희 배우와 이혜영 배우의 헤어스타일을 비슷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잘 어울린다고 여겼는데 촌스럽다니. (웃음) 

 

movie_image (13).jpg


천우희: 세라는 해리성 장애를 계속 감추고 있었는데, 결국 다른 인격이 세라의 본 인격을 이기지 않나. 세라를 완벽히 잠식해버리는데 그 차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연기를 통해서도 보여주려 했지만, 한편으로 엄마인 소정이 오랜만에 뉴스룸에 와서 그곳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려면 그 시절의 헤어스타일이나 화장법을 해보면 어떨지 분장팀, 의상팀과 함께 의논해서 진행했다. 그래서 뒷부분은 살짝 90년대 스타일로 나왔다.


김종철: ‘eastwater’님이 잘 캐치한 건가?


천우희 & 정지연: 그렇다. (웃음)


김종철: 또 세라와 소정의 헤어스타일이 비슷하면서도 거울로 봤을 때 대칭인 것처럼 가르마가 반대 방향인데 그것 역시 의도한 설정인가?


정지연: 사실 찍을 때는 그 가르마가 대칭인 줄 몰랐는데 편집하면서 뒤늦게 보고 신기했다. 거기까지 의도하진 못했는데 이혜영 배우, 천우희 배우의 가르마가 각자 그렇게 정해져서 자연스럽게 설정이 완성된 것 같다. (웃음)


김종철: ‘누누’님의 질문. 마지막 엔딩에서 정세라의 얼굴이 반은 빛으로 절반은 어둠에 가려져 있던데, 마치 현실의 명암을 보여주는 듯하다, 는 의견이다. 


정지연: 마지막에 세라가 그 병에서 극복하는 것이 해피엔딩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마냥 어두운 느낌으로는 안 하려 했다. 그 장면의 조명은 자연광처럼 보이게끔 조명을 준 것이다. 한쪽으론 어둠에 가려지는 것이 ‘앞으로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살아가겠다.’라는 자세. 세라가 흑과 백, 혹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가지고서 살 것이라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김종철: 특이한 질문들이었는데 답변을 잘해주셨다. 앞으로 혹시 똑같은 질문을 받으면 ‘원래 의도한 것’이었다고 답하시라. (웃음)


정지연: 알았다. (웃음)


김종철: ‘탕탕구리’님 질문이다. 해리성 인격 장애 장면을 위해 천우희 배우가 이혜영 배우와 같은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 뒤에서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연기를 준비했나?


천우희: 이혜영 선배님과는 이야기할 때 내 캐릭터가 해리성 인격 장애를 갖고 있지만, 그걸 너무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이전까지도 캐릭터가 정말로 자신이라고 믿고 연기를 해야지 그 뒷부분의 반전이 더 와 닿을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 진짜 세라라고 생각하고 연기했고, 인호(신하균 분)와 마주치면서부터는 소정과 분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도 선배님의 연기와 합을 맞추지는 않았다. 선배님이 해석한 소정이 있는데, 내가 그것을 따라 한다면 분명 어떠한 재미는 있겠지만 너무 설정처럼 느껴질 우려가 있었다.


그 분장실 장면은 선배님이 먼저 촬영하셨다. 내가 소정을 생각하면서 만든 제스처가 있었는데 사전에 이야기한 적도 없는데 선배님이 그걸 그대로 하시더라. 그걸 보고 정말 소름이 돋았고, 또 기분이 좋았다. 같은 인격체의 모녀 연기를 하면서 미리 합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똑같은 제스처와 똑같은 호흡감을 가지고 연기하시더라. 무척 뿌듯하고 짜릿했던 순간이다.


김종철: 그리고 아나운서 발성으로 익무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도 있다. (박수 소리)


천우희: (웃음) 어떤 이야기가 가장 좋을까? 그냥 인사말하면 될까? “안녕하십니까. 익무 여러분. 천우희입니다.” (박수 소리) 다음에 더 좋은 말 생각해보겠다.


김종철: ‘zin’님의 질문이다. 세라가 윤미소의 전화를 받고 처음 엄마에게 말하던 장면에서, 이혜영 배우의 “그 여자”라고 언급한 대사는 의도적인 것인가? 세라의 대사에서 여자라는 말은 없어서 말이다.


정지연: 비슷한 지적이 있었는데, 관객이 잘 인지하지 못할 것 같아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찾아내시다니 놀랍다. (웃음) 어차피 둘이 같은 인물이라서 너무 강박적으로 분리하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고 생각했고.


천우희: 영화를 처음 보신 분들인데 어떻게 그런 걸 다 캐치하는 건가? 적어가면서 보시는 건지? 대단하다.

 

movie_image (16).jpg


김종철: 워낙 집요한 분들이라서. (웃음) 또 ‘푸르메’님 질문이다. 세라의 엄마 소정에겐 부정적인 이미지가 함께 한다. 썩은 과일, 낡은 집, 핏기 없는 메이크업 등. 그런 것들이 친절하게 심어둔 복선 같은데, 관객이 언제쯤 진실을 알아차리길 의도했나?


정지연: 개인적 바람은 분장실에서 소정이 승아를 찌르고 나서 정체가 세라였음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알아차리면 베스트라고 생각했다. 한편 영화 마니아들은 조금씩 추리하며 보기 때문에 ‘엄마가 이미 죽은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아니면 ‘인호가 범인일까?’ 등 다양하게 생각하실 거다. 그렇더라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해서 최대한 꼬고 꼬려고 노력했다. 오늘 보신 분들이 너무 빨리 알아차린 건 아닌지 궁금하다. (웃음)


김종철: 빨리 알아차렸다면 큰 박수, 아니면 작게 박수 쳐 달라. (살짝 박수 소리)


정지연: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이중성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서사로


김종철: ‘뇽구리’님 질문. 부끄럽지만 스릴러 영화를 보면서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은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여성이자 딸로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무섭도록 슬픈 영화였다. 좋은 영화 만들어줘서 감독님과 배우님에게 감사하다고 적었다. (박수 소리)


정지연: 감사하다. 


김종철: 세라는 이후 어떤 엄마가 될까? 자신과 엄마의 비극적 관계를 되풀이하지 않게 될까?


정지연: 물론 인간이 완벽할 순 없다. 세라는 자신의 결핍 때문에 완벽한 사람이 되겠다는 강박감이 생긴 거다. 그래서 엄마의 인격으로 분리되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원하는 사람과 그리고 본래의 자신으로. 그랬던 이중성을 스스로 받아들이고서 다른 직업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아이도 잘 키울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극복하는 서사를 만들고 싶었다. (박수)


김종철: ‘열수’님 질문이다. “2019년도 겨울에 <앵커> 촬영 지원을 나가 천우희 배우님과 함께 촬영 작업을 했다. 이전에도 몇 번 함께 촬영했는데, 유독 <앵커> 촬영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앵커>를 찍으면서 느낀 긴장감은 어떻게 해소하며 촬영을 소화했는지 궁금하다.”라고 글을 남겼다.


천우희: 해소할 틈이 없었다. (웃음) 어떤 분이었는지 너무 궁금하다. 얼굴 잘 기억하는 편인데 한번 보고 싶다. <앵커>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여성 서사의 이야기이다 보니 여건상 제작비가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연기 면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야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어서 부담된 것이 사실이다. 하루하루 회차 별로 꼭 찍어야 하는 분량도 정해져 있었고, 연기적으로 도전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다. 그런 압박감을 굳이 해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쉬는 날 놀러 다니고 친구들과 만나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상황적인 압박감이 좀 더 역할에 몰두할 수 있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부담감들이 오히려 좋은 쪽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려 했고, 현장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김종철: ‘치킨포스터’님 질문이다. 천우희 배우는 과거 <아르곤>(2017)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언론인을 연기했다. 그때와는 어떻게 다르게 접근했는지 궁금하다.


천우희: 그때도 언론인을 연기했지만 두 인물의 포커싱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르곤> 때의 캐릭터가 무럭무럭 자라면 <앵커>의 자리에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지만, <앵커>에서는 어떠한 관계나 직업이든 공통으로 갖게 되는 내면의 불안감이 핵심이라고 봤다. 같은 직업이라는 점으로만 둘을 묶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언론인으로서의 연기라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가진 뒤틀린 욕망 때문에 파멸까지 가고 다시 인간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라고 보고, 과거의 캐릭터와 매칭을 시키진 않았다.

 

movie_image (20).jpg


김종철: ‘ songforu’님 질문이다. 세라의 옷 색깔 변화가 눈에 띈다. 버건디 계열의 붉은 옷에서 분홍색 옷으로, 마지막엔 흰색 옷을 입는다. 진실에 점점 접근한다는 의미 같았다. 그 점도 의도한 것인가?


정지연: 정말 감사한 질문이다. (웃음) 신경을 많이 썼는데 처음으로 알아봐 주셨다. 심리 스릴러이기도 해서 단순히 예쁘게 어울리기보다는 감정을 담을 수 있게끔 색의 스펙트럼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의 감정과 의미에 맞도록 흐름을 짰다. 가장 다크할 때가 검은 옷을 입고 거울에 핸드폰을 던질 때였고, 보랏빛 옷은 엄마와 딸이 부딪칠 때. 마지막에 흰색 재킷은 엄마가 처음 앵커가 됐을 때의 상징성이기도 하면서, 지적한 의미도 지니는데 알아봐 줘서 너무 놀랍다. 제대로 보셨다. (박수)


김종철: 감독 입장에서 영화에 심어놓은 의도를 관객이 짚어내면 무척 기쁠 것 같다. ‘목마른철새’님 질문이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진 게, 아마도 이 영화로 열을 식히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멋진 스릴러였다.”고 적었다. 이어서 “천우희 배우가 똑단발로 이미지 변신을 했는데 너무 잘 어울린다. 그 단발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헤어스타일을 가장 좋아하는지 궁금하다.”라고 남겼다.


천우희: 그렇게 짧은 단발로 연기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새로운 모습에 개인적으로도 신선했다. 처음에 1차로 잘랐더니 주위에서 “많이 어려 보인다.”라는 반응이 있어서 아나운서분들처럼 성숙해 보이려고 컷을 좀 더... 아까 얘기처럼 약간 촌스럽게 잘랐다. (웃음) 그게 오히려 역할상 잘 맞았던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헤어스타일은 딱히 없다. 맡은 역할과 이미지가 잘 맞는다고 하면 그때 만족도가 가장 높다. <앵커>도 새로운 모습으로 봐주시고, 스스로도 새롭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김종철: ‘군침이’님 질문이다. 소정이 과거에 세라의 목을 졸라 죽이려 했고, 세라는 그 때문에 목이 졸리는 악몽을 꾼다. 목을 조르는 방식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정지연: 뉴스 앵커는 말을 하는 직업이다.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때 목이 메고 말이 안 나올 때가 있지 않나. 본능적으로 그렇게 기관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을 막아버리는 트라우마가 생겼을 때,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다면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정신까지 분리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으로 여겼다.

 

movie_image (21).jpg


김종철: ‘무지개과자’님 질문이다. 모녀 사건을 등장시킨 이유, 그리고 사슴과 박쥐를 상징적인 동물로 등장시킨 의도가 궁금하다. 


정지연: 모녀 사건을 등장시킨 건 외적인 사건과 그와 유사한 세라의 과거를 연결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사슴, 박쥐의 경우는 최면을 통해 무의식으로 들어갔을 때 무엇을 마주해야 임팩트가 있고 신선할지 고민했던 결과다. 예상치 못한 것이면서도 소정의 집과 연관된 무언가라면 좋을 것 같아서 미술적인 구상을 할 때 하나씩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김종철: 천우희 배우는 정세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본 적 있나?


천우희: 세라가 마지막에 “살아있어요.”라고 한 말이 긍정적인 미래를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많이 동의했던 부분이다. 누구나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감정들이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도 여자로서의 고민...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면서 모성적인 부분에 관한 생각은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출산, 임신, 육아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말이다. 세라가 자신의 배를 찌르는 행위는 해리성 장애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봤다. 앞으로 쉽진 않을 거고, 감정적 갈등도 많겠지만 그전까지와는 다르게 진실로 마주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김종철: 마지막에 장면에서 눈물 흘리는 장면의 연출과 연기가 대단했다면서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도 있다.


천우희: 감사하다. 그 장면은 사실 촬영 초반에 찍었다. 판타지, SF 등 다른 작품들에서 경험해본 적 없는 캐릭터를 연기해왔지만, 어느 정도는 그 인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반면 <앵커>는 스스로도 어느 순간 거부하고 두려워했던 부분이 있었다. 여자로서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운 감정을 촬영 초반에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게다가 거의 움직임 없이 시선 처리만 하면서 한마디 내뱉는 것이 무척 까다로웠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여러 번 테이크를 달라고 요청했고, 감독님도 세라로서 하지 말고, 천우희 본인으로 한번 해보라고 의견을 주셨다. 연기에 임할 때 캐릭터를 객관적으로 놓고서 하는 편이다. 물론 집중하며 연기하지만 소위 말하는 메소드 연기는 아니다. 하지만 <앵커>의 마지막 장면에선 나 자신을 많이 대입해보려 했다. ‘나라면 어떻게 이 말을 내뱉을까?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정면으로 마주할까?’ 생각하며 연기했다.

 

movie_image (25).jpg


김종철: ‘팝콘우마이이’님 질문이다. 마지막에 세라가 문을 나서는데 아이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비슷한 연출이라는 생각이다. 악순환되는 것이 아니라 세라가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정지연: 정확히 보셨다. 세라가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원하든 원치 않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경지까지 올라가야만 그런 큰 병을 극복할 거로 생각했다. 그런 내적인 해방을 표현하려고 그 장면은 롱테이크로 찍었다. 소정의 집은 세라에게 있어서 좋았던 추억과 함께 끔찍한 추억도 함께 있는 곳인데, 결국에 텅 빈 엄마의 집이 물속에 잠겨 있는 이미지는 일종의 큰 자궁인 셈이다. 그곳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면서 아이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 극복이 아닐까 생각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하다. (박수)


김종철: 아쉽지만 시간이 다 돼서 마무리해야겠다.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인사말 부탁한다.


천우희: 영화 <앵커>에 대해 이렇게 깊게 대화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무엇보다 대면을 하니까 너무 반갑다. (웃음) 영화를 정말 좋아해 주시는 마음들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우리 영화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응원 부탁한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정지연: 사실 재미없게 봐주셨더라도 감사할 일인데, 이렇게나 밀도 있게 봐주시고 또 상기시켜 주셔서 이야기하면서 무척 즐거웠다. 이런 자리를 가지게 될 줄 몰랐다. 오늘 일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영화에 대해 좋은 말씀, 응원 부탁드린다.

 

 

(이하는 GV에서 못 다한 질문을 더 하기 위해 정지연 감독과 다시 만나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입니다.)

 

9.jpg


세라의 무의식을 상징하는 물


김종철: 영화의 중요한 장면들에서 물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비가 오고 세라가 미소의 집에 들어갈 때 입구에 물이 고여 있어서 발이 잠기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에서도 물이 강조돼서 나온다. 영화의 시작 지점, 마무리 지점에서 반복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물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연: 그렇다. 세라의 심리에 집중하는 이야기인데, 보통 물이라는 것이 무의식을 많이 상징하지 않나. 그래서 이미지적으로 세라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담기에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에 윤미소의 집에 들어가는 부분까지는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물, 축축하고 엉켜있는 느낌을 주려 했다. 퀴퀴하고 곰팡이가 슨 부분들도 그렇고. 그곳은 세라 본인은 기억 못하지만, 그가 과거에 겪은 일을 재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세라가 마지막에 자기 내면의 엄마를 대면한 뒤 죽이고 나서 다시 태어나는 느낌으로 연출할 때는 물이라는 것이 해방감을 주고, 또 헤엄쳐서 확장된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상징으로 이용했다. 


김종철: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영화 <검은 물밑에서>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혹시 그 영화 좋아하나?


정지연: 그 영화를 보진 못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침 그 영화에서 아역을 맡았던 배우 칸노 리오와 인연이 있다. 학교에서 한일 합작으로 <감기>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만났고, <검은 물밑에서>에 출연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영화도 봐둘 걸 그랬다. (웃음)


김종철: 미소의 집 입구에 고여 있는 물은 시커멓게 보인다. 이후 세라가 캄캄한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은 어떻게 보면 세라가 앞으로 겪게 되는 상황을 예고하는 것 같다. 그 장면의 어두운 묘사와 마지막 장면의 밝은 묘사가 대비된다. 아마도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

 

movie_image (14).jpg


정지연: 맞다. 초반부터 아주 중요하다고 여긴 장면이다. 세라 입장에선 처음 가보는 낯선 모녀의 집이지만 그의 과거와 맞닿아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 다녀온 뒤부터 환각을 보게 된다. 충분히 그러한 자극을 줄 만큼 강렬한 분위기가 필요했다. 미술적 측면에서 세트를 만들 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좁은 통로로 들어간 뒤, 작은 거실과 욕실이 나오고 문 닫힌 방이 있는데 거기서 또 붙박이장까지의 동선이 필요했다. 촬영도 원활히 진행돼야 해서 미술감독님과 함께 오랫동안 궁리했다. 세트와 어울리는 외부 장면의 실제 집도 있어야 해서 장소 헌팅을 많이 다녔다. 그 장면을 위해 모든 걸 쏟아 부었다고 할 수 있다. (웃음)


김종철: 집 외부 장면은 어디에 있는 곳인가?


정지연: 장위동이다. 재개발 중인 지역이라 빈집들이 많았다. 덧붙이자면 좁은 입구를 지나서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오게 한 건 어머니의 자궁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모녀의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불온하고 어두운 공간으로 시작되었다가, 나중에 세라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좀 더 밝고 긍정적인 모성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 윤미소의 집은 현실이지만 굉장히 어두운데, 마지막 소정의 집은 무의식이면서도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도록 대비시켰다.

 

movie_image (1).jpg


김종철: 욕조에 물이 차있고, 아이가 죽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욕조에 죽어있는 아이라는 설정은 어떻게 떠올렸나?


정지연: 본능적으로 떠올렸던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물에 대한 이미지를 강조하려다 보니. 물이 익사에 대한 공포심도 심어주지 않나. 특히 세라는 임신한 상태이기도 해서 물속에서 아이가 죽어있는 모습이 유산에 대한 공포를 상징할 수도 있다. 그와 비슷한 부분으로, 세라가 화장실에 있을 때 핏물 속에서 손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단순히 관객을 놀라게 하려는 의도로만 찍은 게 아니다. 그건 아이의 손이고, 마찬가지로 유산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다. 영화를 본 관객분들이 잘 알아차릴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김종철: 영화에선 제대로 성장을 못 한 아이, 그리고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고 키우지 못한 미성숙한 엄마 미소, 그리고 트라우마를 가진 세라가 나온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보면 성숙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정지연: 잘 본 것 같다. 미소와 세라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알게 모르게 엮여 있는 관계였고, 물의 이미지 등으로 다 연결돼 있는 셈이다.


김종철: ‘익클립스’님 질문이다. 극 중에서 사회 전반적인 여론이 "윤미소 모녀의 동반자살이 안타깝다"였는데 세라만 엄마 말을 듣고 "그건 살해 후 자살입니다. 그런 방향으로 보도해야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을 해서 동료들이 냉정하다며 놀란다. 이것 또한 결말을 암시한 떡밥인가?


정지연: 소정의 과거 죄가 드러나는 결말 말인가? 꼭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세라가 엄마의 생각에 얼마나 종속돼 있는지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살해 후 자살”로 보도하는 세라를 주위에선 냉정하게 보는 부분은, 사실 세라 입장에선 결코 냉정해질 수 없는 본인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주려 했다.


반전을 암시하는 떡밥으로서 의도했던 건 썩은 사과를 깎고 있는 장면이었다. 비슷한 장르의 영화팬들에게는 너무 쉬운 힌트일 수도 있지만 가짜일지라도 엄마라는 인물이 일상성을 가지고 영화에 들어오는 장면이 필요했고, 또 그런 장면 없이 반전이 나온다면 어색할 것 같았다. 한편으로 엄마의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딸에게 과하게 집착하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정보도 전달하려 했던 장면이다.


김종철: 사과 장면 말고도 힌트를 주려고 한 장면이 있었나?


정지연: 초반에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들에서 엄마 혼자만 나온 씬은 거의 없고 대부분 세라와 함께 있는 부분이라든가, 또 액자 등에 비치는 엄마의 모습이 자주 비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촬영감독님과 상의해서 찍었는데, 예민한 관객분들은 그런 부분들에서 일찌감치 눈치채실 것 같다. (웃음)


김종철: ‘치킨포스터’님 질문이다. 미소가 굳이 세라에게 제보한 이유가 궁금하다. 비슷한 처지인 두 사람이 서로를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알아본 것일까?


정지연: 그 정도까진 아니었을 것 같다. 윤미소가 세라의 겉모습만 보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일 거라곤 생각 못할 테니까. 자신보다 훨씬 나은 처지에 있는 그를 동경했을 것 같다. 과도한 팬심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정신이 왔다 갔다 할 때 선망하던 앵커에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고 싶었던 거다. 윤미소는 그 정도로 의지할 데가 없는 불행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movie_image (22).jpg


김종철: ‘enchanted’님 질문이다. 영화 내내 계속해서 등장하고 후반부에 큰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굉장히 오래 방치된 듯한 느낌의 분장실로 표현되었는데 미술이나 소품들을 그렇게 연출한 이유가 궁금하다.


정지연: 구관 분장실 말인가? KBS 같은 경우도 실제로 구관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 그곳에 가봤더니 신관과 비교해서 허름한 분위기가 주는 기분이 묘했다. 그걸 영화에 적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구관도 여전히 쓰이는 건물이지만 분장실은 많이 안 사용 안 할 것 같았고. 세라 입장에선 신관이 생기기 전까지 활용했던 편한 장소라서 현재까지도 아지트처럼 쓸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지는 부분인데 세라의 엄마가 현역 앵커 시절 뉴스를 준비한 곳이기도 하다.


미술적인 측면에선 섬뜩한 느낌이 들도록 의도했다. 낡은 거울들이 있고 벽면도 허름한 곳에 사람이 혼자 있으면 무섭게 보이지 않을까? (웃음) 미술감독님과 함께 지방의 방송국들도 다녀보니 실제로 무서운 느낌이 드는 곳이 있었다. 그걸 참고하고 추가로 여러 종류의 거울들을 다양하게 배치해서 세트를 꾸몄다.


재밌는 연출을 위한 장치들


김종철: 세라가 최면 상태에서 넓은 들판에 있다가 지하실 같은 공간으로 내려가는데, 나중에 가면 현실에 실제로 있는 곳으로 등장한다. 그런 부분은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정지연: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재밌을까, 생각해서 나온 결과다. 사실 인호의 최면실은 좁고 답답한 공간인데, 그곳에서 갑자기 확장된 공간으로 나오는 방식이 재밌을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 그 들판의 이미지는, 세라가 인호의 진료실에 처음 갔을 때 본 벽에 걸린 그림과 똑같다. 그래서 인호가 파놓은 어떤 트릭에 걸린 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을 관객에게 심어주고 싶었다.


계단으로 내려갔을 때 나오는 곳은 세라가 아는 어떤 공간, 즉 엄마가 죽은 창고로 이어진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곳까지 가지 못하고, 그 중간에 세라의 무의식을 자극했던 윤미소의 집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그리고 거기서 엄마와 연결될만한 단서를 보게 된다. 


한편 그 과정에서 인호도 나름대로 환자의 치료에 대한 압박이 있어서 강박증 같은 걸 보이고, 그로 인해 인호가 악인처럼 보이게끔 의도했다.

 

movie_image (18).jpg


김종철: 인호의 최면실이 꽤나 좁아서 불안불안해 보였다. 실제 최면실이 그런 편인가?


정지연: 아마도 다양할 거다. 외국 영화를 보면 넓은 곳에서 소파 같은데 누워서 하지 않나. 이 영화에선 세라를 몰아붙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조명과 카메라 렌즈로 실제 공간보다도 좁아 보이게 찍었다. 그래야만 최면 속에서 들판으로 나왔을 때 강한 대비가 생길 테니까.


김종철: ‘마스터D’님의 질문이다. 영화 속 풍경과 색채가 은근히 다양하면서도 대조되게끔 느껴졌다. 어둠과 빛, 빨강과 파랑처럼 대비되는 것들에 대해서 어떤 의도를 담은 건지 궁금하다.


정지연: 전체적으로 꽤 어둡지 않았나? (웃음) 관객분들이 보시기에는 최면 장면 때문에 특히 그런 인상을 받았을 것 같다. 그리고 시작 부분의 윤미소 집과 마지막에 밝아진 엄마의 집, 또 세라의 마지막 대사 장면 등에서 그러한 인상을 받은 것 같다. 일일이 조정해서 구성한 건 아니고 이야기에 맞춰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듯하다.


김종철: ‘셋져’님의 질문인데 꽤 흥미롭다. 이 영화는 굿(good)세라와 배드(bad)세라의 대결처럼 느껴진다. 결국 굿세라의 승리로 끝나는데, 마치 “굳세라”처럼 보이기도 해서 이름을 세라, 그리고 성을 굿 씨로 쓸 수는 없어서 비슷한 정(正) 씨로 지은 것인지?


정지연: 그건 사실 제가 정 씨라서... (웃음) 너무 재밌는 질문이다. 


김종철: 보는 관객 입장에서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인 것 같다. ‘스코티’님 질문이다. <앵커>를 보면서 <싸이코>를 비롯해서 <블랙 스완> <퍼펙트 블루> <양들의 침묵> <큐어> <마더> 등이 떠올랐다.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적인 그림들도 연상되고. 혹시 영화를 연출하면서 그런 영화나 그림들을 참고하거나 반영한 부분이 있는지?

 

maxresdefault.jpg


정지연: 영화를 찍으면서 영향 받은 그림은 앤드류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위 사진), 그리고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물론 나는 반전 스릴러로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호러,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상업 영화에 처음 데뷔한 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 쓰기 위해 장르를 차용했다고 보시면 좋겠다. 심리 묘사에 치중하면서 장르 요소를 가져온 영화여서 장르 팬들이 보기에는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다.


<싸이코>로부터 다중인격, 모성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한 부분들을 참고했고, 또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영화 중간에 갑자기 사라지듯이, <앵커>에서도 세라가 중후반에 주인공 자리에서 잠시 사라지고 인호가 그 역할을 대체하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은 부분 같다. 


인물을 잘 다루는 영화가 좋다


김종철: 평소 어떤 스타일의 호러, 스릴러물을 좋아하나?


정지연: 인물을 잘 다루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야지 깊이 있는 장르물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셉션> 같은 영화라든지, <싸이코>도 캐릭터의 내면을 잘 다룬 작품이다. 언급하신 <블랙 스완>이나 <컨저링>, <파이트 클럽> <세븐> 등 영화팬들 취향의 작품들은 거의 좋아하는 편이다. 


김종철: 캐릭터가 선명한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정지연: 단순히 놀라게 하는 영화 말고,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영화 속 캐릭터에 몰입시키는 장르 영화들에 매력을 느낀다. <앵커>도 그러한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다.


김종철: 익무 시사 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질문들을 던진 걸 보니 캐릭터에 몰입을 시키면서 이야기로 여운을 남긴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지연: 감사하다. (웃음) 많이 부족한 작품으로 보일까 걱정했다. 


김종철: 오랫동안 영화를 준비해오면서, 처음 각본을 쓸 때랑 영화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정지연: 정말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앵커 직업도 아니었고, 평범한 주부가 환각에 시달리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런 설정으로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재밌게, 좀 더 많은 사람이 보게끔 하려고 이야기를 크게 확장시켰다. 결과적으로 주제를 더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직업의 캐릭터가 됐고, 엄마의 트라우마도 담을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원래 이야기의 모든 부분을 키워나갔다.


원래 각본에서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엔딩이다. “살아있어요.”라는 대사의 장면은 호불호가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이입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부분이 애초부터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여서 다른 많은 부분이 바뀌는 와중에도 고수했다. 그 장면을 설득시키기 위해 많이 노력했는데, 시나리오를 보신 분들이 그 대사의 의미를 이해 못하는 게 답답했다. 그 장면만 없으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괴롭더라. 엔딩을 다르게 바꿔보기도 했는데 다 가짜 같았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맡겨보니 해피엔딩 혹은 너무 어두운 결말이 돼서 어색하더라.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분열된 인격이 통합되면서 비로소 현실에서 실존하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장르적 외피와는 이질적인 결말이 된 걸 수도 있지만, 나로선 그 엔딩이 중요했고 그것을 모든 사람은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납득시키려고 애를 썼다.


김종철: 다르게 구상했던 엔딩은 어떤 게 있었나?


정지연: “살아있어요.”라는 대사가 부정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식이었다. 끝나지 않는 악몽처럼 세라한테서 태어난 아이에게 엄마가 빙의되는 등, 호러영화 클리셰 같은 찝찝한 엔딩. 그렇게 했다면 장르적으로 재미를 줄 수 있었겠지만,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세라의 결말이 아니었다.


또 세라가 밝은 모습으로 복귀하는 과장된 해피엔딩도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면 “아이를 가지는 게 무조건 좋다는 거야?” 식으로 동의하지 못할 사람도 생길 거다. 나로선 ‘아이냐, 일이냐’를 두고 저울질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정상적이지 못했던 세라가 안 좋았던 상태에서 벗어나 실존하는 모습으로 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결말이 늘어지는 감이 있더라도 엄마의 집 장면을 굳이 넣었던 것도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기 위함이었다.

 

movie_image (23).jpg


영화가 나오기까지의 우여곡절


김종철: 영화가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다. 중간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텐데,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이야기해준다면?


정지연: 이야기하다가 울지도 모른다. (웃음)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처음에 독립영화로 시나리오를 썼을 때 여러 곳에 지원 신청을 했지만 계속 퇴짜 맞았다. 이유인 즉 청년들의 현실을 다룬 사회물도 아니면서 심리, 공포 요소가 있다 보니 애매하게 상업영화로 보여서 그랬던 거다. 그때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디에 담아야 할지 몰라서 마치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다. 아직은 상업영화를 못 찍을 것 같은데 독립영화 쪽에서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하라고? 지금이야 학생이라도 상업영화에 바로 도전하는 사례가 많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독립영화 경험이 꼭 필요했으니까. 그때 정말 힘들었는데, 인사이트 필름의 신혜연 대표가 상업영화에 도전해보라며 조언해주셨다.


그래서 상업영화로 개발하면서 투자까지 받게 됐는데, 캐스팅이 1년 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다. 세라 캐릭터가 어려운 역할인데다가 신인 여자 감독이니 선뜻 연기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천우희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가장 먼저 보여주긴 했는데, 그때는 천우희 배우가 많이 지쳐있어서 성사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배우 입장에서 리듬이 바뀌어야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또 크게 좌절하면서부터는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그때까지 쏟아부은 6~7년의 세월이 있었지만, 영화를 못하더라도 일단 나부터 살아야겠다 싶어서 명상도 하고 요가도 배우러 다녔다. (웃음) 그 과정에서 숨통이 좀 트였던 것 같다. ‘괜찮아. 영화 안 해도 된다.’라면서. 그렇게 명상 센터에 들어갔다 나와 보니 새로운 힘이 생겼다. 오기라고 할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고치자, 는 생각에 다시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했다. 아무런 스태프도 없었지만 콘티 작가도 고용해서 2개월 동안 미친 듯이 콘티 작업도 병행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을 다시 천우희 배우에게 한 번만 더 읽어봐 달라고 보냈다. 그랬더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때는 다 내려놓은 상태여서 편한 마음으로 만났다.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영화에 출연 안 한다고 하더라도 나로선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런데 출연하겠다고 하더라. (웃음) 그렇게 해서 풀렸다. 엊그제 무대인사 후 천우희 배우가 함께 술 마신 뒤 헤어지면서 나를 꼭 안아줬는데 눈물이 나더라. 그때 “우희 씨밖에 이 역할 할 사람 없었다. 고맙다.”라고 얘기했다. 천우희 배우가 아니었다면 신인 감독이 연출하는 어려운 역할의 작품에 무모하게 도전할 연기자가 또 있었을까 싶다.


김종철: 천우희 배우가 생각을 바꾸고 출연하기로 한 이유는?


정지연: 먼저 본인의 상황이 달라졌다. 그 사이에 <버티고>라는 영화를 찍었던 게 본인에게 필요한 역할이었던 것 같다. <멜로가 체질>이라는 밝은 분위기의 드라마도 준비 중이었고. 그래서 <앵커>도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다.


두 번째로 처음 거절당했을 때 시나리오가, 투자받을 목적으로 장르적 재미를 너무 강조해서 쓰였던 탓이다. 배우 입장에서 봤을 때 숨이 막혔을 거다. 배우가 이야기의 도구로써 이용됐을 테니까.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건 인물을 잘 다루는 것이지, 라는 것을 명상하면서 깨달았다. (웃음) 그래서 마지막으로 수정할 때 배우가 연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세라의 심리 위주로 많이 바꿨다. 거기서 나온 에너지가 천우희 배우에게 전달됐을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서로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김종철: 천우희 배우 말고 고려했던 다른 배우들은?


정지연: 다른 후보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시나리오를 수정한 뒤에도 역시나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천우희 배우였다. 신기한 인연이다. (웃음) 


김종철: 오랫동안 영화를 준비하시면서 느낀 개인적인 불안도 이 영화에 투영된 것 같다.


정지연: 물론이다. 거의 태생적 불안감이 아닐지. 꼭 영화를 해서가 아니라. 원래 스스로가 불안해하는 체질인 것 같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려 노력하지만, 내 단편 영화들도 비슷하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인물을 많이 다뤘다. 누군가가 “선병질적인 주인공을 많이 다룬다.”라고 지적했는데 나 자신에게 그런 면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더라. 그래서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비슷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도 주면서 말이다.


김종철: 익무 단관 시사회 등으로 관객들과 만난 소감은 어땠나?


정지연: 익무 시사회 때 무척 떨렸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좋았다. 영화를 좋게 보셨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세심하게 봐주시는 관객과 대화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을 거다. 정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가능한 일일 테니까. 그런 분들이 관심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고 다음에 또 영화를 찍으면 그런 자리를 다시 가지고 싶다. (웃음)


김종철: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차기작 계획을 세운 것이 있나?


정지연: <앵커>에 너무 오래 매달렸고 또 코로나 때문에 개봉을 기다렸고, 이제는 떠나보내는 것에 많이 집중하고 있다. 내가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못하는 편이다. 제작사에서 개발하던 작품이 하나 있긴 하다. 호러 분위기의 작품인데, <앵커>와는 많이 달라서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그 밖에도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각색해서 찍어보고 싶은데 당장은 뚜렷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신고공유스크랩
Dreamer_ Dreamer_님 포함 70명이 추천

댓글 51

댓글 쓰기
2등
와 이걸 텍스트로 다 올려주시는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읽을게요!
댓글
18:47
22.04.28.
profile image 3등

추가 인터뷰까지!!!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댓글
18:48
22.04.28.
profile image
카란
인터뷰를 읽어보니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여러모로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ㅠㅠ
전 개인적으로 [앵커]를 넘 좋게 봐서 감독님의 차기작도 기대됩니다!! (게다가 호러 분위기 작품이라니..!)
응원하겠습니다~!!
댓글
19:00
22.04.28.
profile image
세심하게 GV때 못다한 질문까지도 여쭤봐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감독님의 섬세함이 영화에 참 잘 드러나있었어요. 후속작이 더더더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도 장르물을 계속 해주시고 인물을 깊이있게 다루는 영화 해주시면 좋겠어요!
댓글
18:54
22.04.28.
profile image
GV 정리 감사합니다.
추가 인터뷰까지, 잘 챙겨보겠습니다.
댓글
18:57
22.04.28.

믿고보는 천우희 배우님! 이번 앵커를 보면서 배우로서 점점 더 멋있어지고 있구나 생각을 했어요
여성이기에 또 장르물 애호가이기에 더욱 반가웠던 영화였습니다. 정지연 감독님 응원합니다~~

GV시사를 못가서 너무 궁금했는데, 추가 인터뷰까지해서 올려주신 다크로드님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먼저 감사의 인사부터 했네요^^ 꼼꼼히 읽어보겠습니다.

댓글
19:02
22.04.28.
profile image
영화 한편 찍으려고 엄청 애쓰셨군요. 고생많으셨어요.
댓글
19:05
22.04.28.
profile image
아, 아직 못 봐서 아쉬워요. 최근에 넘 바빴어서.
영화 보고 정독하겠습니다.
댓글
19:24
22.04.28.
profile image

전 참 간만에 만족스러운 호러스릴러였습니다!

감독님 응원합니다!

댓글
19:29
22.04.28.
profile image
영화가 기대보다 좋았어요. 이런 여성 서사 영화라면 환영이죠. 화이팅!
댓글
20:09
22.04.28.
인터뷰 읽고 나니 놓친것들이 있어서 한번 더 봐야겠어요~~! 천우희 배우님 정지연 감독님 파이팅! 입니다
댓글
20:20
22.04.28.
profile image
GV 정리 감사합니다. 현장에서의 즐거웠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ㅎㅎㅎ
댓글
20:32
22.04.28.
profile image

와 정리되어있으니 그때 생각도 나고 더 머릿속에 잘 들어오네요!
그리고 이제 절 캐치보이라고 불러주세요 🤣

1.jpg

댓글
20:52
22.04.28.
profile image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내용이 유익하고 재밌어서 후다닥 읽었습니다. 특히 감독님 말씀이 정말 좋네요❤️
댓글
21:19
22.04.28.
궁금한 부분도 있었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
21:39
22.04.28.

이렇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를 만드신 두 분께서 직접 이야기해주시는 거라 그런가 영화 이해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ㅎㅎ

댓글
23:01
22.04.28.
profile image
처음에 너무 길어서 읽다가 포기했는데 다시 보니
디테일한 해석들이 많고 익무님들의 예리한 질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읽었네요. 위에 인터뷰 보고나니 영화를 한번 더 보고 싶어져요. 반전을 알고 다시보면 많은 텍스트가 읽힐것 같네요!
댓글
23:10
22.04.28.
profile image
우왓! 영화 너무 재밌게 잘 봐서 궁금한것들 많았는데! 심지어 사과 cg 충격 !!! 재밌는 내용도 많고 예리한 질문들 덕에 생각 못했던 부분도 알게되고 완전 알차네욤♥︎♥︎♥︎ 감사합니당 🥳🥳🥳
댓글
23:15
22.04.28.
profile image
와 그날 격리라 못갔는데 단비같은 글이...!감사합니다 ㅎㅎ
댓글
23:34
22.04.28.
profile image
확실히 단발로 연기하시는 천우희 배우님은 처음이였던거 같아요 ㅋㅋ
댓글
00:00
22.04.29.
profile image
와 이거 이렇게 텍스트로 정리해서 올려주시는군요 저 현장에 있었는데 신기해요
댓글
00:02
22.04.29.
profile image
GV라는 곳에서는 관람인도 저렇게 영화에 대해 심도있는 얘기를 나눌 수가 있군요! 최근에 관람한 영화였는데 덕분에 좋은 비하인드 정보 많이 얻고 갑니다. 글 감사합니다!
댓글
00:44
22.04.29.
profile image
정리해주신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
궁금했던 점들이 꽤 많이 해소가 되었어요.
영화를 감독님의 의도대로 따라서 잘 본 것 같습니다.
뭔가 뿌듯하네요. 😅
회원님들의 다양한 질문에 많은 이야길 들을 수 있어 좋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댓글
00:55
22.04.29.
profile image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역시 익무분들 질문이 날카롭네요ㄷㄷ 현장 분위기 느끼고 갑니다ㅎㅎ
댓글
10:02
22.04.29.
profile image

익무님들 질문 클라쓰!!!! 정지연 감독님을 놀라게한 songforu님 질문과 다른 익무님들 모두 대단하세요!
영화가 끝나면 그 감정선에서 헤어나는데 시간이 걸리는 🐣🐤병아리 유저에겐 그저 놀라워요!!
참석 못한 시사회인데 Gv 정리 해주시고 기록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댓글
13:13
22.04.29.
profile image
지금 다 읽었네요! 익무님들 질문이 좋아서 궁금했던게 다 해결됐네요 ㅎㅎ
댓글
14:03
22.04.29.
profile image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덕분에 영화를 더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었아요!!
댓글
16:01
22.04.29.
profile image
간만에 익무 인터뷰라서 천천히 정독 완료했습니다!
GV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도 궁금했는데 이렇게나마 해소하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댓글
16:12
22.04.29.
profile image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앵커 보고 왔는데 영화 이해하는데 도움됐네요!
댓글
16:42
22.04.29.
profile image

와아 자세한 정리까지 스크랩해두고 두고두고 읽어야겠습니다 ㅎㅎ

댓글
17:45
22.04.29.
profile image
와 양질의 인터뷰... 완전 좋습니다 ㅠ 스크랩 저장저장
댓글
17:52
22.04.29.
profile image

아악! 아무 생각없이 날린 뻘질문을 물어보니깐 부끄럽네요. GV끝나고나서 댓글을 지웠어야!...🤯

댓글
02:59
22.04.30.
profile image
써니의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가 되셨네요. 응원합니다.^^
댓글
18:03
22.05.01.
profile image
지난번 gv때 놓치고 지나갔던 질문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댓글
13:45
22.05.02.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