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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기생충'봉준호 감독 익스트림무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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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만남이다, 그리고 10년째 인연이다. 익스트림무비는 <마더> 때 그와 처음 만났고, <설국열차>를 거쳐 이번에 다시 마주했다. 그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특히 2019년은 그에게 실로 의미 깊은 해였다. 만나기 힘든 사람이니, 인터뷰에 응해줘서 기쁘다느니 그런 말은 새삼 하지 않겠다. 다만, 그렇게 자신의 위상이 변했음에도 그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앉아 웃고 있었다. 그게 신기하고 한편으로 고마웠다. 몇 달 전 칸 귀국 직후에 잠시 주어진 자리에서 농담 삼아 “앞으로 무릎 꿇고 인터뷰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처음엔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던 그는 (왕처럼 고쳐 앉으며) “그럼 이렇게 해볼까요”라고 답했다. 진지하면서 유쾌하기는 힘든 일인데, 그는 그런 사람이다.

 

근래 워낙 인터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원래 달변인 사람이 말을 더 잘한다. 솔직히 이런 사람은 얄미워야 정상이다. 여러모로 완벽하면 어디 흠잡을 데가 없나 찾아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흐뭇하게 미소를 짓게 하는 사람이다. 고백하자면 몇 시간의 만남이 몇 분처럼 느껴졌다. 행복했던 시간을 지면으로 전한다.

 

일시, 장소: 2019년 12월2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

인터뷰어: 김종철(다크맨), 이용철(ibuti), 정민아(산호주)

사진: 김종철

정리: golgo

 

(본문에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Q: 해외 돌아다니느라 힘들 텐데 시차 적응은 어떻게 하고 있나?


잠을 잘 못 잤다. 적응이 됐다가 다시 또 엉켜서. (웃음)


Q: 미국 현지에서 직접 느낀 <기생충>의 반응은 어땠나?


지난 8월 말에 있었던 텔루라이드 영화제가 <기생충>을 미국 관객들에게 소개한 첫 출발점이었다. 이어서 토론토, 뉴욕영화제를 거쳐서 10월에 정식으로 북미 지역에 개봉됐다. 그리고서 북미 배급사 및 전문 홍보팀과 함께 개봉 프로모션 겸 아카데미상 프로모션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북미 반응이야 뭐 너무나 좋았다. (웃음) 프랑스에서의 반응이 가장 뜨거운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북미 쪽에서 더 좋아들 해줘서 의외지만 기뻤다. <기생충>의 장르적인 만듦새를 더 즐겨주시는 것 같다. 어제까지(12월 22일 기준) 북미 지역 극장 수입이 2,100만 달러를 넘었다. 북미 지역에서 개봉된 역대 외국어 영화 흥행 순위 10위권 안에 들었는데, 극장 상영이 2020년 1, 2월 어워드 시즌 이후 길게는 3월까지 이어질 거라고 하니 최종 흥행 성적이 어떨지는 두고 봐야 한다. (12월29일까지 북미 수입 2천2백만 달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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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새해 1월에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기생충>의 흑백판을 상영한다고 들었다. <마더>에 이어서 흑백판을 내는 건 어떤 의미에서 하는 작업인가?


큰 의미는 없다. 그냥 흑백으로 만드는 것일 뿐. 나와 홍경표 촬영감독이 고전 흑백영화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요즘은 디지털로 후반작업을 하는 덕분에 흑백으로 만들 때 큰 예산이 들지도 않는다. 홍경표 감독이 한 장면 한 장면씩 콘트라스트와 톤을 조절해 가면서 지난여름에 만들었고 나도 중간 중간에 가서 봤다.


흑백판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모든 영화들이 흑백이었던 시절의 영화가 이랬을까 싶기도 하고. 더 이상은 내가 뭐라 말하면 그게 규정이 돼버리니까 앞으로 보실 분들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영화 마니아들에겐 재밌는 체험이 될 것 같다. 흑백판은 로테르담 영화제 이후 국내에선 2020년 상반기 중 시네마테크 같은 데서 상영될 것 같다.


Q: 흑백영화에 대한 로망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흑백은 아름답잖나. 한국영화 중에서도 홍상수 감독님이 <북촌방향> <강변호텔> 같은 흑백 작품을 선보이고 있고. 과거에 코엔 형제가 연출한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경우처럼 나도 컬러판과 흑백판 두 가지를 만들고 싶었다.


Q: 외국의 흑백영화 중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게 있다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원숙미가 돋보였던 <붉은 수염>은 화면의 농도, 조명의 사용이 아름다웠고, 방금 언급한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나 비교적 최근작인 노아 바움백 감독의 <프란시스 하>도 흑백영화로서 아름다운 밀도가 느껴진다.


Q: <기생충>과 함께 칸 영화제에 공개됐던 <라이트하우스>도 굉장히 강렬한 흑백영화였다. 지난 12월에 열린 마카오 국제 영화제에서 봤는데 인상 깊었다.


그 작품을 연출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데뷔작 <더 위치>를 보면, 통제된 컬러에서 이미 흑백으로 찍고 싶은 욕구 같은 게 느껴진다.


<라이트하우스>의 주연인 윌렘 데포 배우가 <기생충>이 뉴욕에서 상영될 때 보러 와서 파티에도 참석하고, 나와 송강호 선배와 함께 이야기도 나눴다. 그분이 <라이트하우스>에서는 옛날이야기 속 할아버지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 영화는 1.33:1 화면비로 찍었는데 거의 정사각형 같은 영상이 기묘한 느낌을 준다. 만약 그 작품을 일반적인 2.35:1 화면비의 컬러로 찍었다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됐을 거다. 똑같은 배우, 똑같은 스토리일지라도 본래의 느낌을 주진 못할 테니까.


감독을 갈아 넣는 오스카 캠페인


Q: 한국영화로서는 거의 최초로 오스카(아카데미상) 레이스에 참여 중이다. 


박찬욱 감독님의 <아가씨>도 오스카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컸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국영화 대표로 뽑히지 못했고, 대신에 영국 아카데미상은 수상했다. 그리고 2018년에 <버닝>이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부문 예선 10작품에 포함되기도 했다. <옥자>도 한국영화는 아니었지만 시각효과 부문 예선에 올랐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오스카 진출 시도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기생충>이 주목 받는 이런 시기가 온 것 같다. 


칸 국제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한국영화가 오르는 게 엄청난 숙원 사업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임권택 감독님의 <춘향전>이 처음 경쟁 부문에 진출한 이후 <취화선>으로 감독상 받으셨고, 이어서 박찬욱 감독님, 이창동 감독님이 수상하면서 이제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영화가 없으면 도리어 뉴스가 되는 시대가 됐다. 오스카 역시 앞으로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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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스카 홍보 캠페인 활동이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데, 엄청 강행군 같아 보인다. 


텔루라이드 영화제 때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3박 4일은 걸릴 텐데. (다들 웃음)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이고... 무척 힘들다. (웃음)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야 해서 신체적으로 고생이고 스케줄도 살벌하게 빡빡하다. 텔루라이드 영화제 이후 LA에 갔을 때 <옥자>의 제작사 ‘플랜 B’의 프로듀서 제레미 클라이너와 만났다. 그 사람이 날 보며 씩 웃더니 “넌 올해 가을, 겨울은 X된 거다”고 말하더라. (다들 웃음) 좋은 의미로 ‘너는 강제 등판된 거다’란 얘기지. ‘<기생충>은 어워드 시즌 영화로 분류가 됐고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투수 등판하듯이 마운드로 가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제레미 클라이너는 <노예 12년>, <문라이트> 등을 제작하면서 오스카 레이스를 많이 경험해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내게 “정말 지칠 거다. 대신에 그 과정에서 여러 아티스트들을 만나는 것이 낙일 수는 있다”는 조언을 해줬다.


이번에 귀국하기 전에 영국 런던에서 진행한 행사에서 틸다 스윈튼이 시사회 호스트를 맡아줬다. 틸다는 2007년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으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탄 적이 있어서,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원래 이렇게 힘든 거냐?”고 물었더니, 자기 때는 이 정도로 혹독한 스케줄은 아니라고 했다. 요즘 들어서 특히 기간도 길어지고 고강도가 된 것 같다고 말하더라.


작년에 <로마>가 오스카 레이스에 뛰어들었을 때는 넷플릭스가 홍보비로 1200억 원을 썼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돈이면 한국영화 10편은 찍을 텐데. (웃음) 수많은 인원들이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경쟁을 펼치는 걸 보면서 나나 송강호 선배나 신기해하고 있다. 이미 개봉한 영화들이고 또 박스오피스에서 내려간 영화들도 있는데, 큰돈을 들여가며 홍보한다는 게... 함께 경쟁하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외부인인 우리 입장에선 대소동처럼 보인다.


Q: 홍보 캠페인 활동 중 경험한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있다면?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는 스마트하고 일 잘하는 좋은 분들인데, 아무래도 디즈니나 넷플릭스 같은 거대 회사가 아니다 보니 물량 대신에 (맷돌 돌리는 시늉을 하면서) 감독을 갈아 넣는 식으로... (다들 웃음) 엄청난 양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미국에서 처음 개봉하는 주에는 하루에 몇 군데씩, 마치 봉고차를 타고 미사리를 도는 유랑극단처럼 움직였다. (다들 웃음) 그때 빡빡했던 스케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기생충> 같은 외국어 인디 영화는 PTA(극장 당 평균 수입)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더라. <겨울왕국 2> 같은 큰 영화들과는 어차피 경쟁이 안 되니 작은 규모의 극장들에서 PTA를 높이기 위해 아트하우스 배급사들이 목숨을 건다. 그래서 나와 송강호 선배, 박소담 씨가 GV를 엄청나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극장 안에서 쥐도 봤다. (다들 웃음) 극장 안에서 미친 듯이 질의응답을 하던 중 객석에 쥐가 지나가는 광경이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와, 저 관객은 대화에 몰두한 나머지 쥐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는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대신 제레미 클라이너의 말처럼 사람들과 만나는 기쁨도 있다. <설국열차> 때 같이 일했던 에드 해리스가 연극 공연을 마치고 <기생충>을 보러 와서는 좋았다며 격려해줬고. 엔진칸에서 함께 지지고 볶고 했던 옛날 얘기도 나눴다. 또 스파이크 존즈, 데이빗 O. 러셀 감독 같은 이가 Q/A를 진행해 주기도 했다. 데이빗 O. 러셀은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분이던데 <기생충>에 대한 별난 해석과 자신만의 생각을 많이 이야기했다. <옥자> 때 같이 작업한 제이크 질렌할과 틸다 스윈튼과도 다시 만났다. 그런 게 가뭄에 콩 나듯 경험한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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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반적으로 몸이 지치고 시차 적응도 힘들다. 강호 형님은 텔루라이드 영화제 때 코피도 흘렸다. 아, 이런 이야기 하면 안 되나? (다들 웃음) 워낙 강골이신데 본인 생애 처음으로 코피가 났다고 하더라. 그 영화제가 콜로라도 산맥 해발 2천2백 미터 고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고산병 약을 먹고 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왜 그런 데서 영화제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가 매년 오스카 레이스에 등판하는 영화들의 첫 무대라고 한다. 실제로 스콜세지 감독님(아이리시 맨)과 <언컷 젬스> 팀, 노아 바움백 감독(결혼 이야기)을 거기서 봤다. 그때부터 시차와 고산병 증세 때문에 사람을 혼동하는 등 (웃음) 시작부터 고생이 많았다.


외부인은 몰랐던 오스카상의 사정


Q: 오스카 주제가상 예비 후보에 <기생충>의 엔딩곡 ‘소주 한잔’이 올랐다. 봉준호 감독이 직접 작사한 곡이기도 한데 기분이 어떤가?


그 예비 후보 발표가 나와 북미 배급사에겐 굉장한 충격이었다. (다들 웃음) 미술, 편집 분야에선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고, 조합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배급사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고 있다. 그런데 ‘소주 한잔’은 한국에서도 그런 노래가 있는 줄 잘 모르는데... (웃음) 북미에서도 GV를 진행할 때는 시간 관계상 최우식의 노래가 흐르기 직전에 소리를 꺼버리기 때문에 그쪽 관객들이 노래를 못 듣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투표한 건지 참... 아카데미의 음악 분과 회원들이 예비 후보로 뽑았을 텐데, 정작 정재일 음악감독의 OST는 예비 후보에 포함 안 되고 주제가상이라니. “이게 뭐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어리둥절했다. 배급사에선 그만큼 영화를 좋게 본 거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하더라.

 


한편으로 북미 배급사와 홍보팀이 광란의 환호 내지 충격과 환희를 드러냈던 건 미국배우조합상(SAG)의 앙상블상에 노미네이트됐을 때였다. 홍보팀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 거의 칸에서 황금종려상 받을 때만큼이나 좋아라했다. 우리는 ‘왜들 이러는 거야’ 어리둥절했는데. (웃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오스카 투표권을 가진 8천여 명 중에 평론가는 0명이라고 한다. 오스카상 투표권자의 대부분은 현역 또는 은퇴한 영화 업계 사람이라는 거지. 그들은 각자 감독 조합, 프로듀서 조합, 촬영 조합 등등에 소속돼 있는데, 그 조합들 중에서 특히나 인원수가 많은 게 SAG다. 따라서 그 SAG에서 관심을 받는 영화가 오스카 레이스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더라.


그날부터 캠페인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예산을 더 투입해서 뭘 더 한다 어쩐다 하면서. 그렇게 나중에서야 중요성을 알게 됐고 나와 배우들도 그 시상식에 참석하게 될 것 같다. 비영어권 영화가 그 앙상블상 후보에 올라간 것은 <인생은 아름다워>(1997) 이후 처음이다. 역대로 치면 <기생충>이 2번째이고. 홍보팀에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내 앞에 앉아있던 홍보담당자가 노미네이트 소식을 듣자마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말이다. (웃음)


Q: 칸 영화제에서부터 현재까지 한국영화 감독으로서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다.


레이스에 열심히 참여는 하지만 한편으로 ‘왜들 이러지?’ 하는... (웃음) 이중적, 분열적인 관점으로 보고 있다. ‘오오 좋아들 하는구나’ (다들 웃음), ‘왜 이렇게 돈을 쓰는 걸까?’ 하면서.


그리고 레이스에 같이 등판한 사람들끼리 자주 보게 된다. 행사 같은 걸 같이 도니까. (웃음) 노아 바움백, 로라 던(작은 아씨들), 라이언 존슨(나이브스 아웃), 제임스 맨골드(포드V페라리) 등 거칠게 이야기하면 그 나물에 그 밥인... (다들 웃음) 같은 나물들끼리 행사장에서 자꾸 만나서 인사하고, 경쟁 관계인지라 서로 머쓱해하고. “어디어디 가면 또 보겠네~”하면서 뻘쭘하게 이야기 나누는 게 되게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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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서 본업에 복귀하길 기다려


Q: 영화 일을 시작한 이후로 어쩌면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 느낄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처음 감독이 되고자 했을 때, 미래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해본 적 있나? 


처음 겪는 일이라서 즐겁고 신기하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외적이면서 영화적인 소동이다. 나와 강호 선배에게 있어서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이 본업은 아니지 않나. 원래 내 일은 <기생충>의 후반 작업을 마무리했던 지난 3월 말에 이미 끝났다. 그 뒤로 영화는 0.1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칸, 프랑스, 미국 등에서 소동이 벌어졌고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관여한 사람으로서 참여하고 있는데,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일일 뿐이다.


강호 선배도 새해 2월부터 한재림 감독님 영화에 출연할 예정으로, 다들 본업에 복귀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이 자리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메타적으로 하는 인터뷰라서 (웃음) 나도 즐겁고 편안하고 한국말로 얘길 하다 보니 속이 뻥 뚫리는 듯한데. (다들 웃음) 미국, 일본에서 한 차례씩 정신적 위기를 느끼기도 했다. 칸에서부터 지금껏 인터뷰 횟수가 450번을 넘어가다 보니... (다들 경악) GV도 100번이 넘어가면서 갑자기 모든 게 멍해지는 순간이 왔다. 지금은 인터뷰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거라서 정신적으로 도움이 된다. (웃음)


Q: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인터뷰의 60~70%는 질문들이 비슷하다. 뭔가 색달랐던 것은 텍사스 오스틴에서 영화 마니아들과 만났을 때였는데 질문들이 독창적이어서 인터뷰가 아주 재밌었다. 그리고 ‘사이트 앤 사운드’, ‘카예 뒤 시네마’, ‘키네마 준보’ 같은 영화 전문지와 대화하면 나도 몰랐던 걸 깨닫기도 한다. 그 외에는 대부분 비슷한 질문이 나오고, 같은 답변을 반복하게 된다. “어디서 처음 <기생충>의 아이디어를 얻었냐?” 같은 질문을 무한 반복으로 들을 때면 아찔해지더라. (다들 웃음) 반복되는 인터뷰를 계속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황폐해질 우려도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데이빗 핀처 같은 감독과도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는 게 이 일의 즐거운 부분이고 제정신을 유지하게 도와준다.


Q: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겠다.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카페에서 <기생충>의 시나리오를 20~30% 정도 썼다. 차기작 시나리오도 조금씩 쓰고 있는데 <기생충> 홍보 일정으로 진행이 더디다. 3월이 되면 본업에 복귀할 수 있을 테니 그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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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2006)


감독으로서 고통스러웠던 상황


Q: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봉준호 감독은 상업적으로 실패했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이후로 계속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들은 잘 모르는 좌절의 순간 내지 고통스러웠던 때가 있었을까. 


<괴물> 때 시각효과 CG와 관련해서 힘든 일이 많았다. <옥자> 때는 이미 경험이 쌓였고 같이 작업하고자 하는 CG 회사도 많았지만, <괴물> 때는 내가 그런 괴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면서 다녀야 하는 입장이었다. 형식적으로는 내가 의뢰주이지만, 외국의 시각효과 회사의 입장에서는 <살인의 추억>이 무슨 영화인지도 잘 몰랐으니까. 


당시 한국 회사들은 하지 못한다고 해서 미국이나 유럽 회사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보통 하는 작업의 예산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서 애를 먹었었다. 그렇다고 CG 없이 영화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영화는 이미 제작 발표돼서 배우들도 기다리는 상황이어서 정말이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국의 ‘오퍼나지’라는 회사와 만나면서 간신히 돌파할 수 있었지만 무척 힘들었었다.


<플란다스의 개>는 캐스팅을 마치고 한참 진행되려던 차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해 제작이 무산될 뻔한 적이 있었다. 나와 연출부가 울면서 사무실을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차승재 대표가 이성재라는 좋은 배우를 쓸 수 있는데 대신에 우리 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순제작비 11억 원을 9억5천만 원으로 줄이고 새 발의 피 같았던 내 연출료도 깎였다. (다들 웃음) 그렇게 이성재, 배두나, 고수희, 김뢰하를 캐스팅해서 간신히 찍었다.


영화를 접으며 짐을 쌀 때 느껴지는 특별한 기분이 있다. 감독님들은 다들 아실 거다. 영화를 오랫동안 준비하다가 책상을 치울 때 밀려오는 쓸쓸함이란. 그래도 다행히 구제가 됐는데, 그 뒤로는 내가 기획했던 영화가 엎어진 적이 없어서 운 좋게 감독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Q: <기생충> 제작 과정에서 위기는 없었나?


<기생충>은 무척 순조롭게 진행됐다. 시나리오도 내 영화들 중에서 가장 짧은 기간, 석 달 반 내지 넉 달 반 동안에 이런 카페와 밴쿠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평화롭게 썼다. 그리고 2년 전인 2017년 12월 연말에 제작사 바른손의 곽신애 대표와 송강호 선배에게 시나리오를 건넨 뒤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프리프로덕션도 4개월 동안 알차게 진행했는데, 마침 2018년 여름에 기록적인 폭염이 왔다. 하지만 운 좋게도 대부분 세트 촬영이었고, 부잣집 세트에는 냉방 장치를 해놔서 다들 부잣집 거실로 피신했다. (웃음) 거기서 에어컨 바람 쐬다 점심 먹고 다시 오후에 촬영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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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바른손과 배급사 CJ가 촬영 회차, 예산 면에서 충분한 지원을 해준 덕분에 당초에 계획했던 스케줄과 별 차이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후반 작업도 개봉 시기, 칸 영화제 일정과 큰 충돌 없이 여유 있게 끝났다. 뭔가 압박을 받거나 쫓긴 일은 전혀 없었다. 배우들 간의 팀웍도 엄청 좋았고. 나와 홍경표 촬영감독은 <설국열차>를 찍으면서 체코에서 사선을 넘은 사이였고 (웃음) 이하준 미술감독님 등 다른 스탭들과도 집중력을 갖고 즐겁게 일했다.


배우들 입장에선 비 장면에서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특히 송강호 선배는 추위에 엄청 약하다. (웃음) 비 장면은 폭염이 오기 전인 6월에 촬영했다. 기택네 가족들이 비 맞으며 밤에 이동하는 장면은 서울의 다양한 곳을 돌면서 여러 날에 걸쳐 촬영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거대한 수조 세트에서 홍수 씬까지 찍어야 해서 육체적 고달픔을 느꼈을 것 같다.


기택네 집과 그 주변 골목 세트를 큰 워터 탱크 안에 만들었는데 미술팀, 특수효과 팀이 준비를 많이 해서 별 차질 없이 촬영을 마쳤다. 촬영 때는 나도 잠수복 입고 배우들과 같이 하루 종일 물에 들어갔다. 화면상에는 더러운 물로 보이지만 진흙 머드팩 같은 걸 풀어놓은 거라서 실제로는 피부에 좋은 물이다. (다들 웃음) 어쨌든 거길 헤집고 다니며 2~3회차 정도 촬영했던 게 스탭들에겐 가장 큰 고생이었을 것 같다.


지하 공간에 매혹됐던 순간


Q: <기생충>에는 반지하와 지하 공간이 있고 <살인의 추억>에는 지하 취조실이, <괴물>에는 괴물의 은신처 등,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에는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들이 계속 등장한다. 그런 공간을 계속 세팅하는 이유는?


맞다. <기생충>은 수직적, <설국열차>는 수평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설국열차>에서도 마지막에 밑바닥을 열면 아래에 공간이 있고 거기에 꼬마애가 있다. 장편 데뷔 이전에 <지리멸렬>이라는 단편도 실제로 내가 살던 아파트의 지하실 공간에서 촬영했다. <플란다스의 개> 지하실 장면도 거기서 찍었다. 내가 왜 계속 그런 걸 찍는 걸까? (다들 웃음)


나 스스로도 한번 돌이켜 봤다. 어렸을 때 대구에서 살다가 초등학고 4학년 때 서울 잠실의 아파트로 이사 왔는데, 어느 날 친구가 탁구를 치자며 데려간 곳이 아파트 지하실이었다. 먼지가 풀풀 나는 컴컴한 곳에 탁구대가 놓여있었고 거기서 탁구를 쳤을 때의 느낌이 무척 묘했다. 그 지하 공간은 지상의 아파트 가구들과는 다르게 뻥 뚫린 공간으로 쭉 연결돼 있었다. 주민들이 내다 버린 가구, 가전제품들 중에서 아직 쓸 만한 것들을 경비아저씨들이 주어다가 긴 터널 같은 곳에 자신들만의 휴식 공간을 만들어놓고 쓰더라. <지리멸렬> <플란다스의 개>에서 그런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변희봉 선생님이 지하에 러닝머신을 가져다 놓고 운동하는 것처럼. (다들 웃음) 중산층이 버린 물건을 지하에서 받아서 또 하나의 가정집처럼 만든 것이 어린 나이에도 무척 상징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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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2000)


<기생충>에서도 근세가 지하 벙커에 살림살이를 꾸려 놨다. (웃음) 게다가 거기서 고시 공부를 했던 모양이다. 사법고시가 없어지고 로스쿨로 바뀐 지 오래인데. (다들 웃음) 그래서 더 서글프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언더그라운드>에서 전쟁이 끝난 줄 모르고 지하에 살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근세 입장에선 ‘여긴 남의 집 지하실이 아니라 고시원이야’라고 생각하면 사는 게 덜 불편했겠지. 그런 걸 영화에서 다 표현하려 했던 건 아니지만, 미술팀과 상의해서 고시 공부 책들과 근세가 좋아하는 위인들 사진을 가져다 놨다. 그걸 우리끼리는 ‘근세의 명예의 전당’이라고 불렀는데 농구선수 박찬숙, 김대중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 마라토너 이봉주, 그리고 근세가 ‘리스펙트’하는 박사장 사진 등이 붙어있다. 또 일부러 양복을 걸어놨는데, 근세는 언젠가 그걸 입고 지상에 올라가길 기대하는 거다. 슬프게도 그럴 일은 없을 텐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걸 안 찍으려 한다. 지하실도 안 찍을 생각이고. (다들 웃음)


Q: 단편영화 <지리멸렬>의 첫 번째 에피소드 첫 장면에서도 교수가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계단이 상징적으로 묘사되는 <기생충>의 기본 구조가 그때부터 발전되어 온 건 아닌가 싶다.


그 계단 씬을 왜 찍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음대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인데, 딱히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건 아니고,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에서 백일몽을 꾸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마침 그 영화를 영상자료원에서 복원을 한다고 해서 최근에 다시 봤는데 되게 이상한 영화더라. ‘왜 이런 걸 찍었지?’ 싶은... (다들 웃음)


몽롱한 분위기의 도입부가 지난 뒤에 교수가 조교를 자기 교수실로 심부름 보내놓고선, 거기에 도색잡지를 펼쳐놓은 걸 뒤늦게 깨닫고 광란의 질주를 한다. 거기서도 계단을 막 뛰어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찍을 때 계단에 대한 특별한 접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기생충>은 우리끼리 애초부터 명확하게 ‘계단 영화’라고 부를 정도였다. 송강호 선배와 이야기할 때 우스갯소리로 “이 영화를 기택의 관점에서 거칠게 압축하면 계단을 올라가려 했던 남자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끝나는 이야기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간 아빠에 대해 기우는 “계단만 올라오면 된다. 이 집을 사겠다.”고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 영화 전체에서 계단이 보이는 샷이 몇 개인지 정확히 세어보이지는 않았는데, 확인해보면 재밌을 거다. 아마도 상당히 많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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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2003)


Q: <살인의 추억>에서도 취조실 장면에서 지하를 빙 둘러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지 않나.


그 공간은 정식 취조실이 아니라 보일러실이다. 나의 모교인 잠실고등학교의 보일러실을 참고했다. 고등학교 때도 거길 내가 왜 간 거지? (다들 웃음) 교련 선생님이 뭘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켜서 그랬던 것 같다. 깊은 지하실과 거길 내려가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는 독특한 구조였다. 과거 화성연쇄살인사건 때의 자료들을 보면 지방 경찰서에 취조실이 없어서 용의자들을 여관으로 데려가거나 아니면 형사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취조하는 등의 일이 있었다. 그런 일환에서 보일러실을 택했다.


<마더>에선 계단이 집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동네 사람들이 다 내려다보이는 옥상에 시체가 마치 빨래처럼 걸려있고, 그 언덕에서 모든 집들이 시체를 내려다보는 듯한 장면이 있다. 마치 아테네의 야외극장 같은 구조의 장소인데, 비가 올 때 김혜자 선생님이 그곳과 맞닥트리면서 스토리가 새로운 국면으로 흐르게 된다.


그 장면은 부산 문현동에서 찍었는데 묘한 곳이다. 6.25 때 공동묘지였다가 피난민들이 몰려와서 주택가로 바뀌었다고 하더라. 그곳을 찾기까지 엄청나게 고생했다. 찾다 찾다 울릉도까지 갔을 정도로 연출부에서 고생 끝에 찾은 곳이다. (웃음) 울릉도에 가기 전에 제천에서 고물상 할아버지의 집으로 쓸 만한 곳을 발견해서 헛고생까진 아니었지만. 나중에 불타는 고물상 집은 원래는 버려진 옛날 정미소였다.


<옥자>는 강원도 산꼭대기에서 시작해서 회현지하상가까지 곤두박질치는 이야기여서 계단보다는 언덕이 많이 나왔다.


계단과 지하는 이제 그만


Q: <기생충>에서의 계단은, 봉준호 감독이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김기영 감독의 <육식동물> 같은 작품이나 60~70년대 한국영화 속 양옥집의 구조와 많이 비슷한 것 같다. 또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의식>에서 계급 구조를 강조하기 위해 쓰인 계단 장면들도 많이 떠오른다.


언급한 감독들을 아주 좋아한다. <의식>은 프랑스에서 1900년대 초에 있었던 파팽 자매 사건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영화다. 자매였던 하녀 둘이 갑자기 주인 가족을 잔인하게 몰살시킨 충격적인 사건이다. <기생충>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사건에 대해서도 많이 찾아봤다.


김기영 감독님의 <육식동물>은 <충녀>의 리메이크인데, <충녀>에서 지하실 장면의 충격적인 비주얼에서 받은 인상이 잔상으로 많이 남아있다.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들의 시대 배경이 보통 60~70년대인데 그 시절에는 집에 계단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자랑거리였다. 부자라서 이층 양옥집에서 산다는 뜻이니까. 요즘은 계단이 그런 부의 상징까진 아닌 것 같다. 주상복합이 더 많이 언급되는 편이고 대신에 계층 간의 사다리라는 표현이 많이 쓰인다. 어쨌든 계단, 사다리라는 개념적인 용어는 살아있기 때문에 그걸 시각화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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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단이란 것 자체가 수직, 수평면이 맞물려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 빛을 떨어트릴 때의 느낌이 좋다. 계단을 위에서 내려다 볼 때와 밑에서 올려다 볼 때 달라지는 느낌 등, 계단 자체에 드라마틱한 힘이 있는 것 같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공사 중인 건물의 계단의 옆 단면의 모습이 보였던 게 인상적이어서, <기생충>의 부잣집 계단도 일부러 단면이 보이도록 미술감독과 상의해서 만들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유령작가>에 나온 집도 많이 참고했다. ‘텅 비어있음’이 핵심인 영화여서 그런지 미니멀하게 설계된 계단이 나온다.


Q: 일상적으로 계단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굴러 떨어지는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누군가가 계단에서 구르는 장면이 나오면 장르가 호러로 바뀌는 듯하다.


듣고 보니 그런 듯하다. <기생충>에서도 문광이 계단을 내려가면서부터 지옥문이 열리니까. 


Q: 미국의 영화팬들은 <기생충>을 공포영화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느 비평가 협회에선 ‘올해의 베스트 호러 필름’으로 꼽기도 하더라. (다들 웃음) 반가운 일이라고 본다. 나는 스스로를 장르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하니까. <기생충>을 호러나 스릴러로 분류하는 것도 환영한다.


문광이 계단을 내려간 뒤 아직 사건이 터지지 않는 1~2분간의 시간이 있다. 충숙이 밖에서 기다리는데 기우는 내려가 보라고 하고 비는 쏴악 내리고 있고. 끔찍한 상황이 아직 공개되기 직전인 그 몇 분 동안을 무척 좋아한다.


2015년에 <옥자> 제작 사무실의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오른쪽 발목을 겹질려서 발목 골절, 인대 파열을 겪었다. 계단에서 굴러서 엄청 아팠는데도 헛웃음이 나왔다. 그 사고로 두 달 간 휠체어 신세를 졌다. 앞으로는 굴러 떨어지는 거 절대 안 찍을 거다. (다들 웃음) 지하실도 끝이고 계단도 끝이다. 이후 20년은 그런 거 안 찍는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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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계단 밑을 내려가면서부터 나오는 지하의 축축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대단히 매혹적인데 앞으로 더 안 찍겠다고 하니 좀 섭섭하다.


평생 그것만 하면 되겠나. (다들 웃음) 할 만큼 했으니 그만 해야지. <기생충>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은 기우가 산수경석을 들고 지하로 천천히 내려가는 순간이다. 본인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느껴서인지는 몰라도, 사람을 죽일 만한 위인도 못되는 녀석이 굳이 돌을 들고 한발 한발 내려간다.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우의 시점 샷이 나온 뒤 돌을 놓치고 만다. 그리고 돌이 먼저 계단을 내려가서 쿵 하고 떨어진다. 그리고 그 돌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오는데, 누군가를 해하려 했던 기우가 그 순간 오히려 공포의 타깃이 된다. 나는 촬영 전부터 그 장면이 <기생충>에서 가장 장르적인 순간일 거라고 예상했다. 나와 홍경표 촬영감독 모두 그 장면을 고대했던 것 같다. 기우가 목에 와이어가 걸린 채 끌려가는 장면 찍을 때 홍경표 감독님이 무척 신나했다. 최우식 배우는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다들 웃음)


만약 그 장면에서 나오는 공간이 좌우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어두운 벙커가 아니었다면, 기우가 그런 짓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 공간이었기에 기우가 내려가면서 그런 망상을 했을 것 같고 또 그것이 영화가 가진 공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또 피범벅이 된 근세가 그곳에서 미친 듯이 솟구쳐 올라온 뒤, 식칼을 든 채 햇볕이 쨍한 가든파티로 수줍어하며 나아간다. 내가 원했던 그러한 장면들을 찍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두운 지하 공간을 안 찍어도 될 것 같다.


블랙 코미디이자 불온한 스릴러


Q: 익스트림무비와 처음 인터뷰했을 때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장래에 부르주아가 될 윤주(이성재)와 서민인 현남(배두나)이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https://extmovie.com/article/51450 ).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연출한 <기생충>에서 양극단에 있는 두 가족을 만나게 한 이유가 궁금하다.


<설국열차>에서도 크리스 에반스가 기차 앞쪽으로 계속 전진해서 에드 해리스를 만나는데, 그건 SF 장르이고 서양 배우들이라서 우리가 피부로 직접적으로 느끼기엔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 <기생충>은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부터 작정을 하고서 부자와 가난한 집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실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부자 친구, 가난한 친척들의 이야기처럼 적나라하게 말이다.


<플란다스의 개>의 현남이 시간이 흘러서 <기생충>의 충숙처럼 될 수 있고, 또 시간강사였던 윤주가 IT 벤처를 차렸다면 박사장처럼 됐을 수도 있다. 그들을 마침내 만나게 하고 싶었는데, 이번엔 그 만남의 양상이 더 복잡하다. 더 가난한 사람이 나오고, 또 만남 자체가 서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초 민망한 만남이다. 가정교사, 가정부, 운전기사로서 만나는데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냄새를 맡을 정도로 접촉할 수 있는 건 사실 그 정도의 직업밖에 없다. 평소에는 양쪽의 동선이 완전히 다르니까.


그런 관계에 대해서 부자들은 무척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자기가 운전하면 되고, 자기가 직접 설거지를 해도 되지만 그러기 싫어서 남의 노동력을 돈으로 산다. 또 남에게 시키려면 선을 넘어서 자기 쪽으로 가까이 오게 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는 게 부담스럽지만 직접 하긴 싫어서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오게 했는데, 그럼에도 정신적 심리적으로는 그들과의 사이에 벽이 있기를 바란다. 때문에 영화에서 박사장이 계속 선 이야기를 하는 거다.


<기생충>을 처음 구상했을 때, 대학 동기들 중에서 특히 잘사는 동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집에 자녀의 과외 선생, 운전기사, 가정부가 있냐고. 그렇다는 대답에 “만약 그들이 한 가족이라면 기분이 어떻겠어?” 물었더니 갑자기 “아악!”하고 비명을 지르더라. (다들 웃음) 그 반응을 보고 이야기가 효과적이겠다 싶었다. 대신 일 해주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 와서 각자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사실은 한 가족인 걸 알게 되면 엄청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기생충>을 부잣집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킬 생각도 해봤다. 지금은 가난한 기택네의 관점에서 부잣집으로 침투하는 과정인데, 그걸 반대로 뒤집으면 평온한 부잣집의 일상에서 시작돼서 정체를 감춘 사람들이 하나씩 고용되어가는 식으로 불온한 스릴러나 호러가 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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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루이스 부뉴엘의 <어느 하녀의 일기>에 등장하는 하녀는 주인의 재산을 훔칠 때 그걸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당연히 가져야 되는 것처럼 여긴다. <기생충>과 관련된 인터뷰에서 종종 언급되는 조셉 로지의 영화에서도 ‘사람이 굶지 않기 위해선 훔칠 권리도 있다’라는 전복적인 대사도 나온다. <기생충>에 나오는 두 남편의 태도가 그런 사상의 사이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 사람은 박사장을 무조건적으로 존경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박사장에게 해를 끼쳤음에도 그것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다. 


<괴물>에서 이재응 배우가 하는 대사 중에서 “이건 도둑질이 아니라 서리야. 서리는 가난한 자들의 특권이야”라고 했던 게 그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기생충>에 나오는 가난한 가족들은 상당히 뻔뻔하고 또 자기 정당화에 있어서 천재적이다. “저 내년에 이 대학 갈 거거든요.” 같은 대사처럼. (웃음) 사기를 치면서도 본인들은 사기를 친다는 죄의식을 안 갖고 있다.


한편 그들은 부자에 대한 일체의 적개심을 갖고 있지 않다. 박사장네서 비싼 물건을 훔치려고 들지도 않는다.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을 받을 뿐. 한 가족이란 걸 숨긴 것과 명문대생을 사칭한 것을 빼면 그들이 아주 나쁜 짓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기택은 박사장을 죽인 뒤에도 바로 3초 만에 후회하고서 미안하다며 운다.


영화 전체가 사실은 가난한 자들끼리의 싸움에 할애돼 있다. 그게 사실 우스꽝스런 비극이자 블랙 코미디이다. 근세와 문광은 같은 불우이웃끼리 연대하자고 하지만, 기택과 충숙은 ‘너희는 지하고 우리는 반지하다’라며 그들과 분리하려 한다. 반지하에서 완전한 지하로 내려가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에 더 적대적으로 행동한 것 같다.


클라이맥스에서 기택이 박사장을 칼로 찌르는 그 순간만 빼면,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끼리 격렬하게 싸운 셈이다. 가난한 사람들, 약자들끼리의 연대가 없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그것이 우리 시대의 적나라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힘을 합치기에는 너무 복잡해진 시대가 된 거다.


Q: 현실적인 블랙 코미디로는 <플란다스의 개> 이후 거의 20년 만에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다만 결말에 있어서 <플란다스의 개>, <설국열차> 같은 영화들보다 <기생충>이 더 우울하게 다가왔다. 엔딩 직전에 판타지처럼 희망적인 장면을 보여준 뒤에 다시 반지하의 냉혹한 모습으로 마무리했는데, 20년 동안에 바뀐 현실이 더 우울하게 느껴졌기 때문인가?


그 점을 매 순간 의식하면서 영화를 만든 건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20년 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플란다스의 개>에는 IMF의 흔적이 있다. 1997년에 IMF가 터진 뒤, 98년에 시나리오를 쓰고 99년에 촬영한 영화였다. 흔히 IMF가 그 이후의 한국 사회를 규정한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20년 간 고착화된 모습의 가장 적나라하고 슬픈 풍경이 <기생충>이라고 한다면 딱히 부인하고 싶지 않다.


<플란다스의 개>에선 현남이 관리소에서 해고되긴 했지만 햇살이 쏟아지는 숲에 있고, 윤주는 숲과 햇살로부터 차단되며 끝난다. 지금 보면 너무 직접적인 연출이라서 민망하지만 (다들 웃음) <기생충>의 엔딩도 그것의 반복인 것 같다. 기택이 계단을 올라와서 마루를 가로질러 기우를 껴안으려 할 때 햇살이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일부러 그렇게 되도록 의도해서 세트를 만들었다. 이어서 카메라가 하강하면 겨울밤 반지하에 있는 기우의 모습이 보인다.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처럼 햇빛과 어둠의 충돌로 그렸음에도 답답하고 슬픈 결말이 된 건 요즘 시대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다. 굳이 불편함을 의도한 건 아닌데,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꿀이나 설탕 같은 걸 바른다면 관객들이 더 화를 낼 거라고 여겨서 솔직하게 마무리 지으려 했다.


Q: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비정상적인 모성애를 보여준 <마더>를 제외하고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기생충>에서 처음으로 현실적인 어머니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20년 만에 보통의 어머니들을 보여준 이유는?


내가 아직 영화를 7편 밖에 못 찍어서 그렇다. (다들 웃음) 되짚어 보니 엄마가 없긴 없었다. <괴물> 때는 의도적으로 엄마를 뺐다. 두 세대에 걸쳐서 엄마라는 존재가 없어야만 가족들이 멍청해질 테니까. 보통의 경우 가족 구성원 중에서 엄마가 가장 스마트하고 현실적인데, 가족들이 좌충우돌 멍청한 짓을 저지르려면 엄마가 없어야 한다. 엄마가 있었다면 그런 행동들을 안 했겠지.


<기생충>에선 넓게 보면 세 엄마가 등장한다. 문광이 마치 근세의 엄마처럼 행동하니까. 젖병으로 먹이는 장면도 그렇고. 한편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마들한테 약간씩 이상한 구석들이 있다. 연교(조여정)가 아들에게 집착을 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아들 다송을 안아준다거나 뽀뽀하는 등의 스킨십은 전혀 하질 않는다. 일부러 의도했던 부분인데, 다송에게 실제로 엄마 역할을 해줬던 건 문광이다. 때문에 문광이 해고됐을 때 다송이 외롭게 보이도록 촬영했다. 충숙은 흔히 보이는 터프한 아내 같지만, 술 취했을 때 “돈이 다리미야. 구김살을 쫙 펴줘. 나한테 돈이 있으면 더 착했어” 같은 대사를 들으면 굴절된 멘탈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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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과의 채팅에서 최후의 만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로 히치콕 감독, 마틴 스콜세지 감독, 김연아, 케빈 더브라위너 등을 꼽았더라. 그 답변이 김연아 팬 커뮤니티, 축구팬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다.


그 응답은 미리 질문지 같은 걸 받지 않고 다 즉흥적으로 했다. 케빈 더브라위너는 축구를 창의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것 같아서 좋아한다. 얼굴도 마치 벨기에 빵집 아들처럼 순박하게 생겨 마음에 들고. (웃음)


김연아 씨는 엄청난 부담을 이겨낸 사람이어서 존경한다. 2010년 동계 올림픽 때 아사다 마오 바로 다음 순서여서 부담감이 컸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빙판에 나오더라.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 자체에 잔인성이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은 그 날카로운 스케이트 신발을 신고서 서 있지도 못할 빙판 위에서 엄청난 힘과 기술을 발휘해야 하고, 또 4년 동안 준비해왔던 것을 실수 없이 단 한 번에 보여줘야 한다. 그런 김연아의 프로그램을 <마더> 프로모션 중 뉴욕의 한 호텔 방에서 봤다. 정말 놀라운 순간이었다. 19~20살의 나이에 자신에게 쏟아지던 부담을 돌파해버리고 클린을 했을 때 김연아 씨의 표정이란. 감독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배우의 미세한 표정을 보는 것이 일인데, 퍼포먼스가 끝났을 때 평소와는 다른 김연아 씨의 행동과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지구의 크기만 한 부담감을 마침내 내려놓는 순간, 스코어를 볼 필요도 없이 금메달을 확정 지은 순간의 모습이 굉장했다.


Q: 봉준호 감독도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지미 팰런의 투나잇쇼’에 출연했을 때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안 보였다.


방청객들이 있긴 했지만 녹화 방송이었다. 그리고 GV를 100번이나 했는데 긴장할 리가. (다들 웃음) 이미 출제됐던 문제 은행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통역하신 분도 나와 400회 이상 호흡을 맞춰서, 만약에 내가 말을 하다가 중단해도 그분이 알아서 마무리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Q: 아쉽지만 마지막으로, 익스트림무비에 봉준호 감독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을 포함해 팬들에게 인사 부탁한다. 


익스트림무비를 자주 들어가서 본다. 여러 정보들도 많고, 또 내가 해외에서 참석했던 행사와 관련된 글, 사진들도 보면서 ‘어디서 이런 걸 찾은 거야?’ 신기해한다. (웃음) 그런 게 커뮤니티의 힘 같다. 또 영화가 가장 존중받는 곳이지 않나.


칸 영화제 같은 곳도 무더운 날씨에 불편한 턱시도 입고 레드카펫에 설 때 ‘이게 뭐하는 걸까?’ 싶기도 하지만 (웃음) 한편으로 영화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가 열심히 만든 영화를 최초로 보면서 격식을 갖춰서 입장하고, 박수칠 때 영화가 제대로 대접받는 것을 느낀다.


요즘은 <아이리시맨>을 휴대폰으로 보다가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끊고 보고 해서 마틴 (스콜세지) 형님이 악몽을 꾸시는 것 같은데, (다들 웃음) 그런 시대에 익스트림무비처럼 영화가 존중받는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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